그대에게 63_김경민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또는 직접적인 관계로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억울함과 오해의 감정을 달리 고찰해 본다면
모든 사건의 발현(원인)에는 ‘내’가 있습니다
가끔은,
일면식도 없던 상대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한 관심(때론 공격)은,
상황에 따라 매우 극단적인 감정을 전달해 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유해 보면,
본디 시작에는 ‘내’가 없었음(동행)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이가 ‘나’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억울한 오해’라 항변할 수 있지만,
허상으로라도 어딘가에 ‘내’가 자리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시다시피,
정념으로 인해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일의 결과가 타인에 의해 틀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의 연관성을 빠르게 숙지해야 합니다
회피와 변명은 결국 감정(관계)만 마비시킬 뿐입니다
‘시간이 약이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능소능대한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죽음(나이)에 다가가는 긴장과
삶의 오류에 대한 처방전(희망)을 가진 이질성으로,
모두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삶의 의사입니다만
시간만 믿고 숨는 것은 나락奈落의 지름길입니다
완벽한 나도, 완벽한 타인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잘나고 못한 사람은 없으며,
실수는 누구나의 것으로 관용의 성질을 띠게 됩니다
그런 유경험의 지혜로 상대방의 실수를 마주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인과법칙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남을 비방하려고 작정한 사람에게는 언급했듯,
시간이 그에 맞는 적절한 처방(벌)을 내릴 것입니다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의 중심점은 나의 것입니다
실상 우리는,
많은 인맥을 형성하려는 욕망(욕심)으로 인해 그 시초에,
‘내’가 있음을 망각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도
사람들은 무수한 추측(그대의 정체)을 할 것이나,
그 시초에는 ‘내’가 있었기에 감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