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 그대에게 72_선택에 관하여

by 김작자


그대에게 72_김경민



우리는 살면서 늘 ‘선택’이란 것을 합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갈래의 길을, 때론 무수한 길들을 앞두지만

정작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또한 남겨졌던 길에 ‘만약’이라는 의심을 두어

후회의 성질로 책망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자신의 선택조차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가정법원을 다녀왔습니다

긴 설명 없이도 짐작은 하리라 여겨집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말씀드려보지만

이 또한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상이할 판단과

사회(유교)적 관습이 작용하는 범위가 크기에,

충분한 기간(자녀와도)을 가졌다고만 언급해봅니다

어찌 보면 나는 나의 행복을 택한 것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변명 같은 사유적 긴 말은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가족 모두가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인생은,

소설의 열린 구조(결말)와 같다고 여겨집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결말을 예견하지는 못합니다

하여 미래 또한 활짝 열려있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는 저만치 뒤쳐질 것입니다

후회의 성질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이지,

선택에 뒤따르는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닙니다


살다보면 타인의 시선을 배제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외적자아(사회적)의 행위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내적자아(내면)의 결정(자유)을 구속시키며 살아갑니다

타인(사회)은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보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자식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조건으로

자녀의 자유(선택)를 반대한다는 것은 아이로 인한,

나의 불편함(시선)의 방지 차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치를 한다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만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협력자의 입장으로서,

서로 간에 원만한 소통과 양보를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의 만족감보다는,

성취감에 따른 행복을 강요당하며 살아왔습니다

무언가를 가져(부와 권력) 부여잡는 것보다는,

본인의 만족감에 충족한 부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보편적인 사회성을 띄는 것은

사회적으로‘만’ 상용되는 선택권의 통념(한계)으로,

매우 불편(불행)한 선택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개개인의 선택들이 옳고 틀리다는,

섣부른 판정을 내릴 자격은 없습니다만

선택에는 무한한 책임이 따름을 알아야 합니다

‘선택’은 곧 살아내기 위한 ‘삶(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저의 입장을 정당화하려는 취지의 내용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위한, 넓은 의미로는 ‘선택’과 ‘책임’,

‘나’라는 존재의 장래의 행복(의미)을 되새길 수 있는,

인간의 미래지향적인 글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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