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 보다 중요한 건.

by 삶 건축가

아티스트들이 취약한 면을 드러내기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감정, 느낌, 경험에 관해 이야기 하도록 훈련받지 못했다.

케이팝 아이돌로서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도록 훈련받았다.

-로제-


언젠가 보았던 블랙핑크 로제의 인터뷰를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지극히 평범한 나 역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진짜 모습은 감추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꾸며진 모습으로 살아온 게 당연해진 건.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대학시절, 디자인 수업의 과제로 어렵게 완성한 결과물을 손에 들고 학교에 갔다.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작품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전시한다는 교수님의 말에 놀란 난, 나의 부족함을 보여주기 싫어 제출을 포기했다. 그로 인해 날아간 점수덕에 몇달을 더 고생해야만 했다.


매우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부족함을 보이기를 극도로 힘들어하고, 실수는 곧 실패이고 약점은 감추어야 할 비밀처럼 여겼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런 마음은 여전했다. 직장에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면 주말에도 혼자 출근해 일을 했다. 그 사실을 아는 동료는 물론 없었다. 회사에서는 항상 능력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너무 벅차서 혼자 울음을 터트린 적도 많았다.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100퍼센트 솔직한 내 마음을 적지 못했다. 워낙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탓에 친한 친구들도 내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저 나는 잘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스로도 항상 무언가 억눌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자유롭고 싶었다.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다 로제의 인터뷰를 읽었다. ‘이번 솔로 앨범에서 취약함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이 이야기는 무언가 모를 울렁임을 주었다. 내 안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진 부족한 모습들, 후회 가득한 지난 순간들, 그리고 나조차도 외면했던 감정들에 대해 말이다.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했었던 가면은, 나를 오히려 고립시키고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감추고 살았던 삶을 벗어던지는 건 두려운 일이다. 여기서 내가 두려운 것은 나의 부족함을 보고 누군가가 실망할까봐 그런 것이 아니다. 아마 그 시작은 그랬을지 모르겠다. 나는 능력있는 착한 딸이고 싶었을 것이고, 좋은 친구이며, 멋진 동료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게 나의 일부로 단단히 굳어져 나 스스로 그걸 깨는 게 가장 두렵다. 나도 그 뒤에 있는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기 때문일까.


가면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조금씩 나의 취약한 면들을 받아들이고, 이를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에 대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나의 이야기를 모두가 보는 곳에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남들이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고백이겠지만, 신기하게도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돌이켜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과제를 전시해도 "아, 오늘은 좀 별로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뭐" 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면서 "밤을 꼴딱 새웠으니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위트 있게 말할 당당함도 없었다. 덜컥거리고, 삐끗하고, 때로는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이제는 힘들게 혼자 끙끙대기보다 고민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혼자 보는 일기장조차 검열하던 나는 이제 용기 내어 솔직한 날 것의 나를 마주해본다.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자유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완벽함을 추구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자책하고, 완벽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자신의 노력조차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보여주기 싫은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BTS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무대 뒤에서 노력하고 고뇌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취약한 면을 감추지 않았기에 팬들은 더 깊이 그들과 공감하고 연결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더 잘해야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취약함을 드러내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이지 않을까.


세상은 아마도 나의 허술함을 손가락질하기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도 사실 그래’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