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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Feb 23. 2021

여보, 해결해달라고 말한 건 아닌데

우리에겐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 필요하다 

말이란 건 누구 한 사람과 나눠버리면 다른 사람과 다시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기 쉽지 않다. 부부가 서로 이야기 상대가 될 수 있으면 가장 '이상적'인 관계라고 여겼는데 육아 4년차 부부가 되어보니 부부의 대화는 '필수'라고 해야겠다. 긴 세월 함께 하려면 더욱 그렇다.


난 주로 엄마에게 많이 이야기한다. 다른 딸들은 피할 법할만한 고충도 이야기한다. 걱정하시니깐 되도록 자제하거나 항상 웃는 얼굴만 보여드린다거나 하는 류의 딸은 아니다. 엄마에게 말하면 남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 소재를 내뿜으로써 정해진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고 내 마음이 분배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그런 이슈가 나올 때마다 '다시 말하기 귀찮음 모드'가 된다는 것. 이런 성격 덕택에 이론적으로 남편을 대화 상대 1순위로 정해야 한다. 


자, 먼저 남편에게 뭐든 말해보자.

브런치 독자 남편분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남편은 뭐든 해결해주려는 성격의 소유자다. 


"여보, 다섯 살부터는 학습지를 한대. 그래서 나도 검색 좀 해보니깐 글쎄 한 달에 20만원이나 하나봐."

"하지마. 내가 만들어줄게" 

"뭐라는거야..."


"여보, 이런 이런 상황이 있었어. 어떻게 생각해?"

"이상해. 그만둬."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결국 내가 승질을 내고 대화의 자세와 너님의 인성에 대해 불만을 터뜨려야 비로소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줄 자세를 갖춘다. 나는 이미 지치고 화가 난 상태여서 더이상 마음 속 이야기를 조금도 꺼내고 싶지 않아진다. 반대로 나 또한 남편에게 그런 식이다.


"어떤 놈이 어쩌고 그 놈이 어쩌고 이랬는데 어쩌고."

"잘 생각해봐, 처음에 그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 오빠는 왜 그런건데?"


남편은 그저 내가 자기 편을 들어주고 함께 씩씩대 주길 바랐던 건데 난 객관적으로 뭐가 잘못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심지어 내가 상대방의 편을 들 때도 있다. 그럼 남편은 바로 마음이 상해서 삐쳐버린다. 


결혼은 결심한 이유는 사실 남편과 대화가 무지하게 잘 통해서다. 소개팅 날, 첫눈에 반하지도 이정도면 준수하다 하는 느낌도 아닌 '뭐지, 이 사람과 결혼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원래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실제보다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부부가 된 후 어쩜 이리 대화가 안통하는지 답답하지만 한편, 누구보다 더 이해한다.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고 토요일 내내 대학원 수업에 일요일에는 아침 늦게까지 잠깐이라도 눈붙일 수 없는 이 현실. 이십대라면 내 삶을 개척해나가는 열정이라하겠지만 각종 비타민, 홍삼, 한약을 먹어가며 오늘도 버티는 마흔 인생이다. 육아맘의 상황도 비슷하다. 말하면 입아프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대화하기 더욱더 귀찮아진다. 여느 부부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신혼 기간을 어느정도 가지면 부부의 합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생활 습관을 서로 맞추고 정립하고 세세한 성격도 파악하고 이해해 완벽한 부부가 되는 줄 알았다. 예전에 동상이몽이던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어느 신혼부부를 본 적있다. 아내는 뭐든 보이지 않는 곳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남편은 뭐든 보이는 곳에 올려둔다. 그래도 괜찮다는 거다. 남편이 숟가락을 서랍에 넣지 않으면 그 모양새가 불편한 아내가 직접 옮기면 된다. '아, 그렇구나. 저게 현명한 부부 생활이구나. '했다. 그땐 그랬다. 


본인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잘 사는 부부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아니다. 사람은 완벽하게 고칠 수 없지만 동거인을 위한 배려는 할 수 있는 동물이다. 원하는 바를 말하지 않고 직접 움직이는 건 신혼기에서 끝이다. 아이가 생기면 결국 폭발하거나 하나의 마음 속에서 썩어버리게 된다. 부부는 서로 대화하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비록 지금은 대화가 단답형일지라도, 내 마음을 투명하게 보여주면 상대방도 결국 자신의 마음을 훤히 비추게 된다. 서로의 마음에 씨앗을 심어 새싹이 자라고 예쁜 꽃을 피우는 걸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우린 서로에게 해결책이 아닌 공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더라도 대화의 그 순간 집중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공감력을 따지는 명제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 부부는 그래도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다. (급수습)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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