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이 공부해야 하나요?

대한민국 사교육이 시작되는 순간

by NICK e Y
4세 선행 학습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4세와 5세는 너무 다르다. 다른 세계에서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다. 문제는 아이 자체의 변화보다는 엄마를 둘러싼 공기가 달라진다. 물론 아이의 신체, 행동, 정서 발달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엄마가 인지하는 아이의 발달보다 더 빠르게 주변 상황이 흘러간다. '교육'의 시작이다. '어릴 땐 노는 게 최고야'라는 믿음의 장벽은 서서히 틈을 보이기 시작해 '어릴 때'의 연령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가 아니었던가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노는 게 최고'의 의미가 '기본'은 하면서 노는 건데, 너무 놀리기만 하며 귀중한 시간을 버렸나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런 마음속 지진을 감내하며 내면을 다스리다가 6세가 되면 또다시 '교육'이라는 놈이 어느새 스멀스멀 다가와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수학, 과학, 명화를 골고루 접할 수 있는 영재학원을 다니고 한글의 모음, 자음 원리를 이해하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발화하기엔 일반적인 3 - 4세는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 기준으로' 빠르다.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 기준이라는 게 너무나 주관적인데, 엄마가 이 행위를 교육으로 본다면 이르고 놀이로 본다면 적절할 수 있다. (하고 많은 놀이 중에 발달이 아닌 선행을 목표로 하는 행위이지만.) 영재 이야기가 아니다. 바깥활동을 포함한 일상생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익히는 것 또한 학습이라는 범위에 들어가기에 이를 학습이라고 지칭해도 되나 싶으나, 하루의 주요 활동이 이러한 배움을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유아기의 선행 학습'이라고 하겠다.


이 유아기의 선행 학습의 차이가 나타나는 건 바로 5세 중반 무렵이다. 3 - 4세에 어린이집을 다녀와 영재학원을 가서 수학, 과학, 예술 영역을 고루 배우고 집에서는 영어 동요, 영어 동화를 들으며 밥을 먹는다. 학습지 선생님 또는 엄마와 함께 자음과 모음의 결합 예시를 배우며 한글을 익히고 정해진 영어 동화, 한글 동화를 권수 세며 매일 읽는다. 주말에는 교외로 가족 나들이에 나가서 마음껏 뛰어놀고 돌아와 계획된 학습의 양을 채운다. 대충 이렇게 꾸준히 생활한 아이는 유치원 입학 나이인 5세가 되면 읽기 훈련에 돌입하고 어느 정도의 영어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모래 놀이를 하면서도 성인들도 잘 모르는 우주의 원리, 고대 동물의 이름을 척척 설명할 수 있다. 아, 내가 우리 아이의 귀중한 시간을 통째로 아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파울!'


엄마 지금 파울이니? 홈런이니?


이상한 부모는 없다. 간혹 뉴스에서 보지만 그건 정말 비정상의 범주이고 이상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정말로 내 아이를 단 한 번도 자세히 보지 않는 부모는 없다. 사교육이든 엄마표든 의도적 방관이든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오늘 아이의 하루가 훗날 엄마가 쏘아 올린 파울이 될 것인지 홈런이 될 것인지 엄마는 걱정스럽다. (사실 이 또한 엄마가 아이의 인생의 방향을 좌지우지한다는 오만한 발상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시작해 5세 때 사립 유치원에 들어갔고 다시 다른 사립 유치원으로 한 번 옮겼다. 한글을 주입한 적은 없지만 태어나자마자 영어 책을 열심히 읽어줘서 인지 또래 친구들보다 똑 부러지게 이야기를 해서인지 4세 때 영어 거부가 왔고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영어 책 대부분을 버렸다. 또래보다 뒤집기도 천천히, 걷기도 천천히, 말도 천천히 시작했지만 곧잘 했고 기저귀는 또 빨리 뗐다. 이 모든 과정이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엄마의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아이도 어려움 없이 즐겁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만 24개월 축하 선물로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색감, 딸기 과일 모양의 속옷을 사줬다. 입으라고 사준 게 아니라 '네 취향의 디자인을 소유'해보라고 선물했다. 기저귀를 떼기 위한 전략은 아니었으나 훗날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다. 30개월 땐 간이 변기를 사서 물놀이도 하고 휴지에 물감을 칠해 똥 놀이도 했다. 그렇게 4세 반으로 올라가자마자 스스로 기저귀를 뗐다. 이 얼마나 힘이 들지 않고 자연스러운 육아였던가! 하지만 지금 6세가 되니,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떼야해! 지금 해둬야 입시 영어 공부할 시간을 아끼지! 유아 대상 수학 문제집은 또 어찌 이리 많은지! 창의력을 위해 과학도 접해야 해! 이제 피아노는 기본, 악기 하나는 더 다룰 수 있어야지! 유아 미술학원 보내서 표현력을 키워줘야 해! 이 동네 레고 학원이 하나여서 대기가 장난 아니야!... 아이고 유치원생 눈물 나게 바쁘다.


아이의 마음도
아이의 키만큼 자라고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이 보면 웃겠다. 나도 마냥 손 놓고 있는 엄마는 아니다. 아이에게는 초예민 맘이다. 초예민 맘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편견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예민 맘은 아이에게 더듬이를 세우고 아이를 바라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예민하면서도 변화를 좋아하는 엄마 유전자 덕분에 우리 딸도 세심하고 내향적인 친구로 태어났다. 우리 딸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은 본래 '불안'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하지만 유전적 기질에 따라 불안의 경계를 쉽게 넘어가면서 당연한 듯 나아가는 친구가 있는 반면, 하나씩 의심하며 경계를 허물어 성취감을 느끼는 친구가 있는 것뿐이다. 나와 우리 딸은 후자다.

나 또한 4살 중후반에 영재학원 체험, 퍼포먼스 미술 체험, 주변 학습지 조사, 음악학원에도 기웃거렸다. 사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확신이 아니라 도대체 3 - 4살에 이뤄지는 사교육은 어떤 형태인지 궁금했다. 물론 1회 체험 수업은 모두 좋았다. 다 재밌었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기질에 더욱 집중하고 조금이라도 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을 택했다. 1회 체험을 다녀올 때마다 엄청나게 고민했다. 우스갯소리로 결심만 한다면 후천적 영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지금 당장 과학 영재학원 60만 원을 끊지 않으면 아이를 망칠 것 같았고 퍼포먼스 미술학원 48만 원을 내지 않으면 아이의 창의성 뿌리를 뽑아 없애버리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말이 4살이지 사실 따지고 보면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엄마랑 눈 마주친 지 3년 채 안 됐다. 태어나자마자 학업의 길로 들어서야 하다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정말 빨리 자란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유치원에 다니며 제법 의사 표현을 잘한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줄 도 알고 이제 자전거도 탈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착각하는 걸까. 아이의 마음도 아이의 키만큼 잘 자라고 있다고.


바다는 파란색이니까 파란색만 쓸 수 있대


불과 1년 전 영재학원을 보내지 않았던 내가 틀렸을까. 유치원에 오니 친구들이 한글을 읽는다. 덧셈을 하고 수학 문제집을 푼단다. 영어 받아쓰기를 한다. 일반 유치원이 이 정도인데 영어 유치원, 놀이학교는 말할 것도 없다. 일부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만날 텐데 이거 야단 났다. 엄마도 내키지 않는 국영수 학원은 제쳐두고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에 돈을 내어주려고 지갑을 연 채 미술학원 체험을 갔다. 분명 3개월이든 6개월이든 한 번에 결제하려고 했다. 아마 수업 커리큘럼 중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고 결과물도 예쁘게 나오는 체험이었던 듯하다. 1:1 케어를 받으며 바다도 만들고 모래 놀이도 하다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가 말했다.


"응, 재밌었어. 난 무지개 색 바다를 만들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바다는 파란색이라고 파란색만 쓸 수 있대."


여섯 살 반에 올라간 우리 딸은 아직도 한글을 떼 진 못했다. 우유, 아기, 경찰차?, 가지, 여자 등 받침 없는 간단한 단어 정도는 읽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는 사랑해요 글자 쓰는 선수 같이 쓴다. 같은 반 친구들은 한글을 줄줄이 쓰는 친구도 있고 딸과 비슷한 친구도 있다. 초등학교 가기 전엔 뗄 거 같기도 한데 이러다간 못 뗄 거 같기도 하는 불안감이 살며시 올라온다. 엄마가 번역가인데 영어는 어떨까. 뭐 비슷한 수준이다. 아빠가 국문과 출신 AI 전문가인데 아빠는 나중에 AI가 불편 없이 해줄 거라고 한다. 엄마, 아빠가 이러하니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이론적으로 8세 이전에는 뇌가 학습을 할 수 있게 발달하지 않는다. 바르게 앉아서 집중하면서 푸는 문제집 속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대화하고 뛰어놀고 슈퍼 가서 물건을 사보고 자신의 옷을 골라보기도 하며 하나씩 습득해야 하는 게 옳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르고 걔 중에는 4세임에도 학습 뇌로 완벽하게 발달한 친구도 있을 터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엉덩이 붙이고 하는 놀이 학습은 적절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유아는 그런 천재들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노는 게 최고'의 의미가 '기본'은 하면서>의 기본은 한글, 수학, 과학이 아니라 정서라는 그릇이다. 정서 그릇을 그득하게 채워야 인생을 살며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릇 위에 정서가 첨벙 흔들릴 수는 있지만 몽땅 비워지진 않을 것이다. 설령 비워지더라도 다시 채우는 힘이 있기에 걱정 없다. 여느 부모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닌가. 잘 생각해 보자. 부모 또한 제 안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4살이 공부해야 하나요?
'내 아이'를 공부합니다


4살에 공부시키면 대부분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3 - 4살을 앉혀놓고 입시생같이 공부시키는 부모는 없을 테고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크게 스트레스받아 보이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밌어할지도 모른다. 학습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한글을 알려주기엔 이르다거나 파닉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학습지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 문제지도 필요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이야기하고 까르르 웃고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누며 정서 그릇을 채워나가면 좋겠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워 '홈런'친 부모가 되려다가 파울은커녕 '아웃'될 수도 있다. 정해진 공부 계획표를 진정 아이가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이를 바라보길 바란다.


영화 '아바타'에서 사랑한다고 말할 때 서로 눈을 마주하고 'I SEE YOU'라 한다. 영화 속에서 I SEE YOU라 말하는 등장인물의 눈을 통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울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마음으로 상대를 본다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육아는 아이를 통해 나를 보는 과정이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육아를 통해 또 다른 나를 찾고 진심을 다해 아이를 바라보면 좋겠다. 불과 몇 개월 전 걷지 못했던 아이가 금세 걷고 뛰어다니는 것처럼 아이와 엄마, 아빠가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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