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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Jun 19. 2023

당신의 오프 스위치가 궁금합니다

²⁰²³⁰⁶¹⁹ 요가일기 dαч12

요가는 시작과 끝이 같다. 양 발을 마주하고 가지런히 손을 가슴에 모아 시작했다면 끝날 때도 양 발을 마주하고 가지런히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마친다. 기타의 악보도 시작과 끝이 같다. 떴다 떴다 비행기는 A 코드로 시작해 A 코드로 끝을 맺는다. 생일축하합니다는 '생일' 구절을 먼저 노래 부르고 다음 마디에서 코드가 나오는 못 갖춘마디지만 끝은 시작과 같은 코드로 끝난다. 삶도 그러하다. 빈 손으로 세상에 와 빈 손으로 떠난다. 어쩌면 모든 행위의 본질은 시작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행위라는 선의 본질인 시작은 어떠했는지 잠시 어지러운 생각 조각을 뒤로하고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 


요가는 내게 하루의 pause 버튼이다. 쉬지 않는 생각 주머니를 잠시 꾹 눌러 얼린다. 나마스떼 하고 시작하는 순간 오프 스위치가 작동하진 않지만 서서히 단 5분이라도 높은 곳으로 붕 떠 나를 바라본 수 있게 된다. '나'라는 마을에 지어진 빽빽한 건물들이 보이고 줄지어 늘어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차도 보인다.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색색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소녀도 보인다. 다시 눈을 떠 온몸을 주욱 펴고 오른쪽으로 살포시 돌아누워 앉으면 다시 요가를 시작할 때의 나로 돌아온다.


기타를 함께 배우는 선생님이 시를 읽는 게 즐겁지 않다고 하셨다. 동감한다. 아마도 시는 사색의 여유가 있어야 그 세상을 가득 마음에 품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회사를 다니는 소위 워킹맘이든 경제적인 벌이는 아니지만 살림 외에도 여러 일을 하는 낫워킹맘이든 육아와 동시에 살림도 완벽히 해내는 전업맘이든 우리에겐 오프 스위치를 누르고 시를 감상할 여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타를 배운다. 기타를 배울 때마다 느끼는 건 기타는 요가와 같다는 것이다. 언뜻 보이기엔 요가는 하루의 오프 스위치라는 측면에서 기타보다는 시에 가까울 것 같은데 말이다. 기타 수업에서는 오로지 여섯 줄, 손동작, 코드에만 집중하니 딴생각을 하고 하루를 돌아볼 여력 따위는 전혀 없는데도 기타 수업이 끝나면 요가를 마친 기분이 든다. 


그런 맥락에서 반드시 요가가 아니더라도 시를 읽지 않아도 기타를 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오프 스위치를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내게는 요가, 기타, 책... 오프 스위치가 세 개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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