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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Jun 14. 2023

우리 잠시 시간을 갖자, 헤어지잔 말은 아니야

²⁰²³⁰⁶¹⁴ 요가일기 dαч11

daily yoga

우리 요가원은 수업 들어가기 전 매번 어플을 통해 수업을 예약하게 되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10시 50분 타임이기도 하고 요가원 선생님 모두 편안하게 해 주시는 분 들 이어서 특별히 오늘 선생님이 누군지 확인하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 48분에 겨우 도착해 데스크를 지나가는데 이전 타임에 수업을 받았던 회원이 관리 선생님한테 하는 말을 살짝 흘려듣게 되었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얼굴만 봐도 편안하고 요가하는 내내 마음이 좋아져요."


도대체 오늘 선생님이 누구길래 저리 극찬인지 살짝 설렜다. 나 역시 우리 요가원을 추천한다면 지도자의 태도, 수업을 이끌어가는 분위기를 먼저 꼽을 것이다. 허나 그런 이야기를 듣고 수업에 들어가니 선생님의 언어 하나하나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더 깊게 와닿는 듯했고 이런 내 모습이 재밌었다. 이래서 모르는 사람들의 떠도는 후기가 매출을 좌우하나 보다. 이번 3개월만 하고 수영으로 바꿀까 싶다가도 daily yoga의 의미를 온 신경으로 느끼니 요가가 왜 좋은지 내게 왜 필요한지 요가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요가가 절실하여 시작했고 이왕이면 정말 유연한 요가 준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었다. 그럼에도 굳은 몸을 마주할 때면 요가를 시작했던 본질을 잊은 채, 부질없는 소망만이 메아리로 남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잊었던 것 같다. 오늘은 'daily yoga'라는 주제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았고 내 귀를 스치는 말 한마디로 수련에 한결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당신에게 요가가 필요한 이유 


8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결기일을 핑계로 칼퇴를 한 남편은 너무 피곤해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고 나는 혼자 군만두를 굽고 얼그레이 하이볼을 만들어 넷플릭스 앞에 앉았다. 이렇게 특별한 날은 무엇을 봐야 하나.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가볍고 유쾌한 예능이면 좋겠다며 '결혼 말고 동거' 마지막 편을 켰다. 새벽 2시. 부스스 선잠에서 깬 남편과 나란히 함께 앉아 하이볼을 홀짝이며 결혼 말고 동거 속으로 들어갔다. 결기일에 결혼 말고 동거라니! 


'결혼 말고 동거'에서 24시간 붙어 있으며 일도 함께 하는 동거 커플에게 위기가 왔다.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괜한 오해와 서운함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결론은 둘은 이별하진 않았지만 동거는 마침표를 지었다. 개인 인터뷰에서 여자는 24시간 붙어 있을 땐 행복하고 즐거운데 막상 떨어져 여행을 하면 또다시 우울해지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감정들이 올라와서 힘들었다고 한다. 사랑해서 함께 하면 뭐든 즐겁고 잘 헤쳐나가는 듯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땐 당시 헤아리지 못했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자꾸만 떠오르나 보다. 


오늘 daily yoga 중에 어제 봤던 그 여자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요가를 하면 왜 힘들게 일하는 남편이 떠올라 사모님 놀이하는 기분인지, 왜 혼자 있을 엄마가 떠오르는지, 왜 내게 어울리지 않는 우울감이 손을 내미는지 이제 알았다. 난 24시간을 이틀처럼 산다. 하루의 처음은 밤 12시부터 오후 4까지이고, 하루의 두 번째는 유치원 하원 시간인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다. 전자는 프리랜서, 주부의 삶이고 후자는 엄마, 주부의 삶이다. 생각보다 첫 하루가 너무 짧아 하루종일 정신이 없다. 정해진 시간 내에 빠르게 여러 일을 처리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두 번째 하루도 마찬가지로 혼이 쏙 빠진다. 그렇기에 뇌가 오두방정 떨지 않는 시간은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요가를 하는 그날 한 시간뿐이다.  그때 그동안 꾹꾹 눌러 묵힌 감정이 연기처럼 올라온다. 난 너무 나의 모든 to do list와 24시간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제 그 동거 프로그램의 여자처럼.


나의 모든 책임감과 헤어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저 깊숙이 숨겨진 우울감을 마주하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행복과 불행이 함께 오듯 한편으로는 기뻤다. 단 한 시간이라도 햇볕 아래 축 늘어진 오징어처럼 늘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요가를 통해 동굴 속 상처를 억지로 꺼낼 의도도, 그럴 기운도 없다. 단지 정신없이 밀려 있는 교통 체증을 잠시나마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겐 (진짜 요가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요가가 필요하다. 당신의 요가는 무엇입니까.



#결혼말고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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