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대학 강의라면, 해당 학문분야의 세계를 열어줄 수 있는 지적 자극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담당한 교과목은 교직 필수 교과목인 교육과정이고, 저는 교육과정을 '삶으로서의 교육과정'으로 보며, 수업에 참여하는 예비교사를 교육과정의 주체요, curriculum maker로 성장하게 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생각을 가진 교수자의 수업에 참여해 자신의 삶과 경험을 녹여준 예비 교사들 덕분에, 이 수업은 점점 더 쉽게 가르치거나 쉽게 배우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수업을 기획한 교수자의 의도를 충분히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첫 수업인 오리엔테이션 시간은 정말 중요합니다. 사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서 예비교사의 마음을 제 편으로 만드느냐가 한 학기 수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대목은 교사들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교사도 새 학년을 맞아 (새) 학교에서 전입 교사, 신입 교사 등 다양한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한 해의 교육을 위해 학교 철학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죠. 학교단위로 이뤄지기도 하고, (초등에서는) 학년 단위로 이뤄지기도 하고, (중등에서는) 교과 단위, 혹은 드물게 교학공 단위로 이뤄지기도 하더군요.
또 학생, 학부모와도 교사의 교육관과 학급운영 철학을 공유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를 위해 학기초에 학부모에게 '편지 쓰기'를 합니다. 또 교사들 중에는 지난해 담임반 학생들로부터 '선생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하게 해서 새 학년 담임반 학생들에게 안내하기도 하고요. 중등교사는 교과 시간을 제외하고 조종례 시간에만 만날 수 있는 담임반 아이들과의 더 깊은 교감을 위해 '쪽지 통신'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저도 첫 시간에, 비록 15주 수업이지만, 이 수업의 기획의도를 공유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구하는 싶은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심합니다.
제가 이 수업에서 예비교사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평생 가르치고 배울 예비교사에게 교육과정의 문제가 나 자신이 직면해야 할 나의 문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교육과정의 핵심 질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도록 하는 일
다양한 세계관이 경쟁하는 교육과정 영역에 대한 이해, 교육과정 개발 맥락, 다양한 현장의 교육과정 쟁점 등을 통찰하는 안목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는 일
자신을 둘러싼 교육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나와 다른 교육관을 지닌 이들과도 깊이 만나고 소통하는 성찰적 실천가로서의 기반을 닦도록 하는 일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하는 '말'로는 놓칠 수 있는 제 마음을 '글'로 전해줘서 천천히 생각할 여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고민 속에 이뤄지는 접근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사실 제 포부는 더 다양합니다만, 첫 시간에는 이걸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직 친밀감도 신뢰도 쌓이지 않았는데 그러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요.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 밝힙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에 길들여진 것에서 벗어나, 자신과 세계를 알아가는 공부에 입문하도록 안내하는 일
주어진 교육과정이 아닌, 삶으로서의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데 눈을 뜨게 하는 일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내 곁의 동료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것의 가치와 시너지를 맛보도록 돕는 일
앞으로 만나게 될 교실에 있는 다양한 학생들을 자각하고 목도하는 일
교육 현장에서 변화와 변혁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데 뜻을 품도록 하는 일
되돌아보면, 수업에서 만나는 예비교사들의 마음을 얻었느냐 혹은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학기말 강의평가에서 이런 저의 의도를 열정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교수자의 과도한 욕심과 부담으로 평가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언제나 그대로인데 말이죠...
그래도 여전히 제 입장에서는 첫 시간에 교수자의 수업 기획을 좀 더 잘 알고, 생각하는 수업, 소통하는 수업,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마음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특히 이번 학기 교대 1학년 수업의 경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입학식이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없이, 개강도 연장해서 처음 만난 터라, 교직 필수 교과목 시간이 되어서야 반 전체가 처음 만나게 될 텐데, 이때 서로를 소개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려고 합니다.
수업 오리엔테이션만 하고 말기에는 저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반의 친밀도가 조별 활동과 수업에 여러 모로 영향을 미쳐서요. 물론 학생 입장에서는 첫 시간에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는 걸 알지만 이번에는 교직과목 첫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첫 만남을 언제 가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첫 만남에서 어떤 말을 할까 이리저리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만나기를 오래 기다렸어요~
여느 해보다 긴 겨울(방학)을 무. 사. 히. 보내고,
설레는 새봄의 캠퍼스에서 만난 예비교사 여러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