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났는데, 잔잔하게 일어난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저 초록으로 눈부신 날의 찬란한 아침 햇살과 신선한 공기를 저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가.
어떻게 고통 속에서 이제 막 사랑하게 된 사람과 마지막 키스를 나누고 죽음을 선택하는가.
어떻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부모를 불러 그 선택에 동참하게 하는가.
내 분노는 총체적으로,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윌'이 생을 포기하는 선택에 대한 분노였다.
어쩌다 '윌'의 간병인이 되고, 어쩌다 '윌'을 사랑하게 돼, 살아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루이자'에게 '윌'이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사고 전 (런던에서 잘 나가던 M & A 전문가이자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빛나던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며, 그렇게 살 수 없는 아프고 괴로운 삶은 포기하겠다고.
그의 결심은 부모도, 그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사랑한 '루이자'도 돌릴 수 없을 만큼 굳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재에 자족하며 가정형편 때문에 자신의 포부를 우선시하지 않는 '루이자'에게는, 자신의 꿈을 펼치며 최선을 다해 살라고 독려하며, 죽은 후 자신의 부를 가난한 그녀가 자유의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남겨준다. 이중잣대를 지닌 (줄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
존엄사는 인간다운 삶의 존엄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생명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내 생명은 내 것, 내 삶도 내 것이라는 의식이 전제된 것이다.
생명은 내 것인가?
삶은 내 것인가?
만일 당신이 Yes라고 답한다면, 당신이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라며 존엄사를 선택하면?
당신은 동의 할 수 있는가?
이 영화는, 작가 조조 모예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세상의 모든 작품이 뭐라 해도, 삶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것만큼 모질고 악한 행위는 없다.
내 생명은 나로부터 비롯된 내 소유가 아니다.
내 삶은 나를 위해 살라고 지어진 나만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모습이 어떠해도 전 세계에 당신을 대체할 그 어떤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하고 존엄한 생명이다. 존엄이란 생명 앞에 붙이는 용어이지,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 앞에 붙이는 용어가 아니다.
'윌'이 '루이자'에게 당부하는 유언으로 남긴 글에서 단 하나 건질 수 있는 언어가 있다.
그걸 '윌'과 같은 선택을 하고자 하는 수많은 '윌'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
"Just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