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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수업도 대면 수업과 유사한 수업으로

by 삶으로서의 교육

<디지털 디바이스에 강하지 않은, 그래서 온라인 수업도 대면 수업과 유사한 수업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한 교육자의 좌충우돌 기록>


저는 지난 겨울방학에 해외에서, COVID-19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었는데도 뉴스를 보며 문제의 본질(백신 없는데 사람 죽이는 바이러스)이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7년 만에 나간 기회였지만 자발적 격리를 하다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도 해외 뉴스를 챙겨보면서, 한국은 다른 나라 이야기로 여길 상황이었지만, 전 세계가 긴밀히 연결된 시대에, 결국 WHO에서 미루고 있을 뿐, 조만간 팬데믹 선언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개강을 앞두고 전국, 전 세계 간 이동이 원활한 캠퍼스 강의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개학을 앞둔 대학은, 1주 단위로 개강 연기를 공지했고, 2주 뒤에는 모든 대학이 개강은 하되, 온라인 수업을 하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4월이 된 지금까지 1주 혹은 2주 단위로, 대면 수업 연기에 대한 공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상황이 오래갈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연기 공지 날짜나 알림을 신경 쓰지 않고, 장기전을 대비한 다채널의 온라인 수업을 고민하고 준비하며 실행했습니다.




기술을 익히느라 정신없다가, 이내 마음의 균형을 잡고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을 온라인 수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이 수업을 했던 본래 목표와 사명을 생각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 후, 이 수업의 열매가 온라인 기술 숙련도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술에 집중하지 않고 교육과 수업과 관계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현재 갖고 있는 장비로 시작했습니다. 노트북과 마이크가 있는 이어폰이면 충분했습니다.




편집을 최대한 안 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PPT로 동영상을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방법은, 제 경우에는 원래 만들었던 ppt, 그러나 (ppt가 수업 집중하는데 방해된다는 어느 똑똑한 예비교사의 요청이 있은 뒤로) 수업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ppt와, 매 학기 버전만 업데이트하던 강의노트만, 온라인 수업 환경에 적절하게 (많이) 수정하면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ppt도 있고, 시나리오 역할의 강의노트도 있으니, 촬영만 하면 됐습니다.




촬영할 때 얼굴 보이는 문제를 잠시 고민했지만, 제가 학생이라면 교수자 얼굴을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또 학생의 참여와 상호작용이 핵심인 수업이라서, 당연히 처음부터 넣었습니다. 카메라를 학생들 눈이라고 생각하고, 동영상 찍는 내내 카메라 저편의 학생들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하며, 이야기했습니다.


(* 온라인 상에서 보니, 어느 분은, 부끄러워서라고 말씀하시며, 손가락 인형으로 입모양을 맞추며 강의 영상을 찍으셨던데요.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겸손하고 수줍은 마음이 학생들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다양하게 소통할 채널을 마련했습니다. 각 채널별로 소통의 누수 없이 안정적이고 원활할 매체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플랜 B 매체를 동시에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소통 채널 덕분에 대면 수업 때처럼, 수강정정 후 한주 안에, 이번 학기 학생들이 모두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온라인 수업 시수는 모르겠고, 그냥 대면 수업 때와 똑같이 수업해서,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제 강의노트에 지난 12년 동안 다채롭게 반응했던 학생들의 경험이 구석구석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대면 수업 때와 마찬가지로, 매주 학생들이 제출한 그들의 삶의 경험과 성찰이 담긴 글로, 한 명 한 명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또 다음 주부터는 수업 방식이 문답식 수업에서 토론 수업으로 바뀌는 시점이어서, 그에 맞게 실시간 수업으로만 진행해 보려고, 학생 참여를 극대화할 방식도 찾고, 이런저런 장치를 고안하고 디자인하면서, 대면 수업과 동일한 몰입 지점을 만들어내고자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해진다면(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이라는 방식이 수업 몰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수업 몰입에는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증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학기말에 다시금 수업 방식이 바뀌는 시점에, 그때도 대면 수업이 어렵다면(어렵다고 예상합니다), 공간을 초월한 수업 기획으로, 대면 수업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학생 부담을 덜면서도 또 다른 수업의 맛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상 중입니다. 구상만으로도 저는 벌써부터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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