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큰 평수의 장점을 작은 평수에 적용해 보기
좋은 집이란 뭘까? "집은 거거익선"이란 말을 자주 보는데 클수록 좋은 걸까? 건축가 이일훈은 건축주의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은가요?"란 물음에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세요."라 답한다. 결국 사람마다 좋은 집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그럼 어떻게 좋은 집을 고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좋은 집 고르기 방법을 소개한다.
예산은 수많은 기준 속에서 가장 명확하고 현실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향후 들어올 돈에서 나가는 돈을 빼면 오롯이 주택 거래에 쓸 예산을 알 수 있다. 대출 상환금액은 혹시 소득이 없어져도 버틸 수 있는 기간만큼 남겨두자.
들어올 돈 = (현재 보유한 현금) + (매매 시점까지 생길 추가 수입) + (대출가능한 금액)
나가는 돈 = (복비) + (N개월치 대출 상환금액) + (취득세) + (인테리어비)
룸메이트와 양재에서 자취하기로 했을 때, '분담할 월세가 40만 원 이하'만 생각하고 75만 원짜리 14평 투룸을 계약했다. 그리고 나중에 같은 돈으로 대출받고 전세 계약했으면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있었다는 걸 알았다. 집 주변이 예쁘고 둘이 재미있게 지낸 집이었단 걸 위안 삼았지만 룸메와 우리의 어리석음을 자조하며 한 잔 하긴 했다.
룸메이트나 가족과 함께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이야기한다. 기록해 두면 더 좋다. 우리 집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과 최대한의 공간을 정리해 두면 집을 선택할 때 어디서 타협해도 될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최소한의 공간
- 부엌과 화장실은 필수
- 침대, 식탁, 책상 2개, 옷장 3개 놓을 공간
- 방은 최소 1개. 그래도 자는 공간은 분리하고 싶음
#최대한의 공간
- 부엌 싱크대 공간이 넉넉하길 희망
- 방 4개. 침실, 작업실, 옷방, 취미방. 만약 아이가 생기면 아이방으로 활용
예산과 공간을 정했으니, 어떤 지역이 좋을지 탐색할 차례다. 다음 2가지 정보를 알아본다.
1.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최소 평수 집의 가격
2. 예산으로 거래 가능한 최대 평수 집과 직장의 거리
나는 호갱노노를 활용했다. 【필터】로 원하는 평수를 입력하고 직장 주변 지도를 확인하면 된다. 지도 배율을 바꾸면 더 넓은 범위로 가격대를 확인할 수 있다.
판교 출퇴근자가 최소 10평대 주택을 매매할 때, 판교와 가까운 이매동은 8.4억, 30~40분 거리의 수진동은 1.3억으로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필터에 희망하는 큰 평수를 입력했을 때 직장과 얼마나 멀어지는 지도 확인해 보자.
지도에서 가까워도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있으니, 맵 어플로 출퇴근시간의 이동 시간을 꼭 확인하자. 차량이 적을 때 20분 거리가, 붐빌 땐 4~50분이 나온다. 아파트가 많은데 도로가 좁다면 출퇴근시간에 정체가 심할 확률이 높다. 대중교통도 배차간격과, 차량 선택지가 많은 지 함께 봐야 한다.
이제 내가 가진 예산으로 거래 가능한 집이 어느 정도의 가격 분포로 어디에 위치했는지 알게 되었다. 거래하고 싶은 집을 찾아보자. 참고로 매물은 네이버 부동산에 가장 많다. 매매, 전월세 모두 확인하여 살고 싶은 집 후보를 정리한다. 표로 원하는 인프라가 있는지 함께 정리하면 유용한데, 좀 귀찮으니 그냥 둘러보고 이름만 적어둬도 좋다.
후보를 정했으면 틈틈이 시간 내어 직접 가보자. 동네 부동산엔 인터넷에 등록되지 않은 매물이 더 있을 수 있다. 매물을 등록한 부동산에 연락해서 집을 보고 싶다고 미리 연락해야 한다. 같은 동네의 여러 집을 보려면 일정을 미리 맞춰둬야 한다. 같은 아파트여도 다른 부동산과 약속을 잡는 다면 1시간 간격을 둘 것을 권한다. 30분 간격으로 약속 잡았더니 빠듯했다.
매물을 직접 눈으로 봐야 보수공사가 필요한 범위, 확장여부, 결로나 곰팡이가 있는 집인지 알 수 있다. 가능하면 동네 산책도 해보자. 필요한 편의시설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본다. 신호등 바뀌는 속도나 지형 등 지도만으로 판단하기 힘든 접근성을 체감할 수 있다.
후보들을 눈으로 보고 왔으니 마음을 결정할 시간이다. 후보들과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그 변화에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 정리해 보자. 가격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당신에 삶에 가져다준다면 합리적인 지출이다. 아직 마음을 좁히기 어렵다면, 2,3번 과정으로 돌아가 선택지를 더 넓혀보자.
나는 2개월 전 집을 위 과정대로 찾아 계약했고 만족하고 있다. 구체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이랬다.
1. 예산 정하기
카카오뱅크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숭숭해서 영끌은 하지 않았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끌어안을 수 있는 범위에서 예산을 정했다.
2. 공간 정하기
부부만의 주거효율만 생각하고 지금의 방 2개 20평 집을 구했다. 침실, 작업실이 있어 단둘이 알콩달콩 지내기 좋았다. 아이가 생기고 분리수면을 시작하며 거실을 아이방처럼 썼다. 넉넉하진 않아도 불편은 없었고, 아이가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할 때까진 여기서 살려했다. 하지만 둘째가 생기고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가 편하려면 최소한 방 3개는 있어야겠다! 방 4개가 있어 아이방 2개에 침실, 작업실까지 만들 수 있으면 더 좋다.
3. 지역 정하기
직장이 판교라 성남, 용인에서 찾았다. 나는 결혼 전에 용인에서, 남편은 성남에서 자취했다. 신혼집도 성남에 구했기 때문에 이미 친숙한 지역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분위기라 눈여겨본 단지에 알림을 설정하고, 가격이 낮아진 매물이 뜰 때마다 확인했다.
4. 후보 정하기
지역을 좁혀 시세와 인프라를 비교한 뒤, 후보를 3곳으로 좁혔다. 각 후보별로 2~3개의 매물을 본다고 부동산에 연락하고 직접 가 보았다. 육아 경험 없이 고른 신혼집과 달리, 육아에 필요한 인프라도 확인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이 가까우면 좋다.
- 주차가 편해야 한다. (부부만 살 땐 대중교통만 고려했었다.)
- 고속도로가 가까우면 좋다. (부부만 살 땐 양가 부모님도 자주 뵈러 가지 않았다.)
- 아래층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좋다. (1층, 어린이집 2층, 필로티 위층 등)
- 소아과가 도보로 가까워야 한다.
- 유모차 이동이 편하면 좋다. (지금 집은 현관이 계단으로만 되어 있어 불편했다.)
- 관리 잘 된 놀이터가 가까우면 좋다.
- 주변에 공원 등 아이와 산책할만한 곳이 많으면 좋다.
- 육아지원센터 (놀이터 + 장난감 도서관)가 가까우면 좋다.
- 신선한 식재료를 가까이서 살 수 있으면 좋다.
5. 발품 팔기
후보를 놓고 비교했을 때 우리는 교통이 좀 불편하지만 가격이 낮고 방이 많은 45평 집을 1순위로 생각했다. 교통 좋은 지역의 24평보다 6천만 원 저렴했다. 직접 가보니 더 좋았던 게, 2평 정도 보너스 텃밭도 주고 전용 현관이 있어 전원주택처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까지 출퇴근이 최소 10분, 러시아워엔 30분은 더 걸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직접 관리할 것을 상상하며 집을 둘러보니 너무 넓었다. 다른 후보의 매물들도 직접 눈으로 본 뒤, 가격과 상태가 마음에 드는 곳을 정했다.
6. 결정
이제 필요한 정보를 모았으니 비교하고 마음을 정할 차례다.
놓고 보니 교통과 인프라에 대한 대가로 공간과 추가비용을 치러야 했다. 위치, 인프라, 비용은 바꿀 수 없기에, 공간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했다. 큰 집의 장점을 작은 집에 구현할 수 있을까? 우리가 45평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2가지다. ① 방 4개를 침실, 작업실, 아이방 2개로 활용한다. ② 시각적인 개방감이 있다. 24평, 33평이 이 조건을 만족하면 45평의 매력은 더 낮아진다.
먼저, 방의 수는 베란다로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 24평, 33평 모두 광폭 베란다라서 베란다 하나를 작업실로 쓰면 방 3개를 안방, 아이방 2개로 쓰면 된다. 베란다 단열 및 전기 시공비용은 1천 정도로 예상했다.
다음으로, 개방감을 위한 확장공사 면적과 비용을 찾아봤다. 숨고 기준 공간별로 320만 ~ 630만이라 한다. 거실과 작은방 2개를 확장하면 최대 2천만 원이 들 것이다.
비교해 보니, 교통, 인프라, 공간이 만족스러운 집은 공간만 넓은 집보다 9천만 원 비쌌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아직 은행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예산 범위다. 짐이 적기 때문에 더 넓지 않아도 될 것 같아, 24평 집을 계약했다.
집을 구하는 것은, 뭔가의 이유로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다. 그 이유가 뭔지, 어떻게 충족되어야 새 집에서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앞으로 몇 년을 어떻게 살 것 같은지 남편과 얘기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이 글을 보는 분들 모두 예산 내에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골라 만족스러운 매일을 보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