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의 생활효율에 대한 고찰
성인이 되니 부모님의 품을 떠나 내 방식으로 지낼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다. CVA로 호주에서 1달, 워크캠프로 필리핀에서 1달,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1년, 교환근무로 미국에서 6개월, 판교로 회사 다니며 룸메와 자취한 2년, 동생과 자취한 2년. 결혼 전에 부모님 품을 벗어나 생활한 기간을 더해보니 6년 가까이 된다. 싱글로 부모님 댁에서 6년, 자취 5년 했던 시간을 토대로 결혼 전 싱글의 주거 생활을 풀어본다.
개인적으론 '자신을 이해할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금전적으로만 봤을 땐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생활환경을 주도적으로 관리해 봐야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럼 앞으로 하게 될 여러 가지 중요한 의사결정들 ㅡ 다닐 회사, 거주할 지역, 집의 크기, 동반자 결정 등을 보다 자신에게 행복한 방향으로 할 수 있다.
싱글은 생활환경을 비교적 유연하게 바꿔볼 수 있기에, 살림, 경험, 인간관계, 외모관리, 자산관리, 건강관리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시행착오를 겪으면 도움이 된다. 해봤으니 미련이 안 생기고, 겪어보고 선택한 삶에 애정이 더 생긴다. 내 경우엔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었다.
살림: 자취하면 집에선 내내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귀찮다고 다 미뤄봤는데 옷에서 냄새가 나고, 식재료 유통 기한이 지나 잔뜩 버리고, 방에 뭉텅이 먼지가 굴러 다녀서 타협점을 찾기로 했다.
경험: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아 여러 번 이직했다. 입사 3개월 만에 회사가 합병되어 붕 뜬 기간도 있었고, 언플만 잘하는 회사에 잘못 들어가 큰 지뢰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내게 의미 있는 일터가 어떤 곳인지 깨닫게 되었다.
인간관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대학과 사회생활 초기에 많은 활동을 했더니, 10년 후에 알긴 알지만 안다고 해도 되는 건가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좀 더 주변사람들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외모관리: 관심 없이 살다가, 좀 노력해 보려고 메이크업 강의도 들었다. 조금 유지하다 다시 귀찮아졌다. 지금은 질 좋은 옷 잘 입고, 필요할 땐 눈썹과 립만 그리는 것으로 타협했다.
자산관리: 멋모를 때 보험 잘못 가입한 거 더 손실 보기 전에 해지한다고 많이 날렸다. 사회생활 일찍 한 편인데 그때 번 건 밥이랑 술 사느라 다 썼다.
건강관리: 몸에 신경 안 쓰다가 극심한 허리 디스크가 왔다.
현명하게 선택했다면 겪지 않았을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내 선택이 잘못될 수 있단 걸 깨달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난 이럴 때 시야가 좁은 편이니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의 한 달 평균 집세, 식비, 관리비는 47만 원이라고 한다. 어떤 집을 구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룸 셰어로 50% 아끼는 경우도 봤다. 코리빙은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는데 평균 월 3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자료가 있어, 관리비 포함해서 대충 추정했다. 부모님이 생활에 얼마나 개입하는지, 룸메랑 얼마나 잘 맞는지, 어떤 코리빙 공간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다를 거라 걸러 봐주시면 된다.
내 경우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대화를 원하셨고, 식사는 가능하면 함께 하길 바라며, 놀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것은 걱정하셨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러시겠지만... 엄마아빠를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로, 나는 가끔 부모님께 맞춰 사는 느낌이 들었다. 다방면으로 사회적 압박이 오는 30대가 가까워지니 더욱더. 특히 결혼 얘기는 나를 위한 얘기인지 부모님의 사회적 만족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어서, 관련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점점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본가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면, 감사한 마음으로 본가에서 최대한 버텨 목돈을 만드는 게 좋긴 하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나도 6년을 본가에서 출퇴근하며 3~4천만 원(연 자취비 6~700만 원 x 6년)을 아낀 듯하다.
어쨌든 독립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혼자 살 지 여럿이 살 지 결정해야 한다. 나는 짧은 출퇴근 시간과 낮은 주거비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서 죽이 잘 맞는 대학 후배랑 같이 살았다. 양재의 월세 80만 원 집을 나눠 썼고, 회사까지는 지하철로 2 정거장이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재미있고, 신기했다. 룸메는 정도 많고 물건에 애정도 많은 맥시멀리스트였는데, 나는 기능이 없는 물건은 살 생각도 없고 쉽게 버리는 효율주의자다. 소유물의 분량도 매일 쓰는 물건의 양도 2배 정도 차이 났다. 이 생활을 해본 게, 나중에 결혼을 결정할 때 영향을 주었다. 남편은 나랑 비슷한 타입이라 집을 간소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던 것이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좋으면 자취보단 룸메나 코리빙을 추천한다. 관계를 넓히는 기쁨보다 관계에서 올 스트레스가 걱정되면 자취가 마음 편하다. 연인이 있거나 사람을 다양하게 만나는 편이면 자취를 하는 게 집에서 데이트할 수 있어 좋은데, 연인을 바란다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만나거나 소개받을 기회가 생긴다.
살림에 있어서는 완전한 자취 경험이 유리하다. 주거 공간이나 살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주거 공간의 효율이나 살림 효율도, 이게 신경 쓰이는 사람에게만 중요할 것이다. 그럼 다음 집을 구할 때 본인이 신경 쓰이는 것만 보면 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선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동거를 결정할 때도, 자신에게 상대의 생활 습관이 미칠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1) 사용빈도와 감정, 뭐가 중요한가?
일본의 라이프 오거나이저 스즈키 나오코의『갖고 싶다 이런 키친』에 따르면,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우뇌와 좌뇌 어느 쪽이 우위인지 확인하라고 한다.
1. 양손을 깍지 껴서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가는 쪽 뇌가 정보를 인풋 할 때 우위에 있는 뇌다.
2. 팔짱을 낄 때 아래로 가는 팔 쪽 뇌가 아웃풋 할 때 우위에 있는 뇌다.
우뇌는 직감적이고, 좌뇌는 논리적 인지에 능하다. 물건에 대해서도 우뇌를 쓰는 사람은 '좋다, 싫다'의 감각을 중시하고, 좌뇌를 쓰는 사람은 사용빈도나 편의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나랑 남편에게 실험해 봤는데 솔직히 잘 안 맞는 것 같다. 좌뇌/우뇌 타입보다는 그냥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면 되는 듯하다. 내가 필요 없다고 버릴 수 있는 사람인지, 그게 아니라서 수납공간이 필요한 사람인지 아는 게,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거나 수납공간을 마련하는 것보다 먼저이다.
나는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는 게 속 시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취를 시작할 땐 별생각 없었고, 본가에서 가져온 추억 더미를 보관하기 위해 수납법을 찾아 따라 하며 뿌듯해했다. 지금은 편지나 일기는 스캔하고 폐기했고, 이를 보관하던 수납함은 처분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일찍 알았다면, 더 빨리 가뿐해지고 불필요한 수납함도 사지 않았을 것이다.
2) 퍼스널 컬러
나는 옷 쇼핑을 싫어했다. 만족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입어볼 땐 괜찮은 것 같아 비싸게 구매해 놓고, 어떻게 스타일링해야 할지 몰라 몇 번 입지 않은 옷이 꽤 많았다. 원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옷을 사면, 솔직한 친구들에게 시각적 테러 자제하란 얘기를 듣기도 했다.
대충 유행 따라 무난한 옷을 사다가, 답답해서 스타일링 책을 몇 권 보다가, '퍼스널 컬러'의 개념을 접했다. 퍼스널 컬러 진단해 주는 곳을 찾다가 『먼지나방 스토그래피』에 다녀왔다. 다른 곳보다 높은 비용이었고 다른 곳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녀와서 옷, 액세서리, 헤어, 네일 등을 고를 때 한결 수월해졌다. 시각적 테러 자제하라고 충언해 줬던 친구에게 나아졌다는 칭찬도 받았다.
외모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 퍼스널 컬러를 진단 및 상담을 추천하고 싶다. 저렴하게 해주는 곳도 있고, 좀 비싸게 받더라도 시행착오 하는 비용 아끼는 거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스스로 기준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비용들일 거 없지만, 나처럼 센스잼병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추천한다.
3) 냉장고 관리
KBS <과학카페> 제작팀이 쓴 『미니멀 키친』에 따르면, 각 가정의 냉장고에서 잊혀 버려지는 식재료가 한 달 평균 3만 원이라고 한다. 가구 당 사람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판매되는 냉장고는 점점 커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취를 하다 이사하게 되면, 냉장고에 있었지만 내 기억에선 없어졌던 식재료가 꽤 튀어나온다.
나도 여러 번 경험하며 반성했다. 룸메랑 자취할 때 냉장고가 500L 대였는데, 식재료를 꽤 버렸다. 동생과 자취할 때 양문형 800L대를 썼는데, 필요한 만큼만 채워 쓰니 냉장고가 항상 반 정도 비어있어 아까웠다. 결혼하며 400L 중반대 냉장고를 샀고, 가끔 손이 안 가서 상한 식재료를 버릴 때가 있지만 대체로 내용물을 순환시키며 잘 쓰고 있다. 냉장고 내용물을 줄줄이 꿰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관리 가능한 크기를 알아야 불필요한 공간과 지출을 막을 수 있다.
4) 가계부 정리
자신에게 맞는 가계부 정리 방식을 일찍 정해두면 좋다. 자산이 매 월 얼마나 늘어나는/줄어드는지 파악할 수 있으면 많이 간소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리를 좋아해서 몇 년에 한 번 항목별 그래프를 만들어 보는데, 결혼 전 / 결혼 후 / 육아 후 항목별 금액 변화 보는 재미가 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소득이 많아도 투자 없이 지출만 많으면 자산은 늘어나지 않는다. 1백만 원이라도 모으는 습관을 들여야 점점 더 큰 금액을 관리할 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냉장고 관리해서 매 월 식비 3만 원을 아낄 수 있다면, 1년에 36만 원, 5년이면 180만 원이 생긴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강제로 저축해 보자. 나중에 목돈이 필요할 때, 좋은 투자 기회가 있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싱글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을 알아가기 좋은 시기이다. 결혼을 희망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을 알게 될수록 인생을 더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의식주에 대한 불필요한 지출,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 그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