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이론을 더한 유연한 바톤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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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무엇을 원할 때 대신 마음읽어주기를 하면서 질문을 던집니다. 예를 들어 TV리모콘을 갖고 왔을때, 켜줘? 하고 묻고 고개를 끄덕일때까지 기다립니다. 이런 단순한 상황에서부터 복잡한 상황까지 제 마음 읽어주기는 계속 되지요. 예를 들어서 식탁에 앉으면 '배고프니?' 물으면서 식판을 슬며시 꺼내두지요. 밥을 차려주었는데 가끔 눈살을 찌푸려요. '반찬이 매운 게 없네.' 하면서 열무 김치를 꺼내줍니다. 정원이는 그제서야 숟갈을 뜨면서 한 입먹습니다. 졸릴 때는 조금 더 어렵습니다. 눈을 비빌때도 있고 무릇 그 또래의 아이는 졸려도 더 놀고 싶으니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럼 '엄마랑 같이 누울까'하고 물으며 침대로 갑니다. 졸린 경우는 제 뒤를 졸졸 따라오지요.
가끔 정원이는 이해는 가능하지만 어려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려운 행동이란 의도는 그렇지 않은데 표현기술이 적어서 타인에게 적절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장난 치면서 팔을 긁는다던가, 무심코 나오는 '앜'소리가 재밌으니 웃으면서 놀자고 합니다. 또는 뒤돌아 보고 있는데 부르질 못하니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이죠. 자신을 보라면서요. 이런 행동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럴땐 상상력과 더불어 인내심을 갖고 즉시 바른 행동으로 고쳐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불시에 당하면 저 역시 늘 한결같은 반응은 어렵습니다. 연습은 정원이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어른들도 필요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상상력이면 충분히 아이의 마음이나 의도를 읽어줄 수 있습니다. 가끔은 해독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귀를 막을 때죠. 소리에 예민할때도 있고 그러지 않을때도 있습니다. 일정할 줄 알았던 아이의 규칙은 컨디션에 따라 들쭉날쭉 합니다. 무서워서 웅크릴때도 있고 가기 싫어서 버틸 때도 있습니다. 이럴때 저는 조용히 곁에서 마음을 읽어주면서 기다려요. 뭔가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슬그머니 제 손을 잡습니다.
단 둘이 있을때는 경험에 쌓여 상상력은 자동화됩니다. 그래서 점점 최적화 맞춤이 되어가죠. 아이가 익숙하고 편한 환경을 끊임없이 미리 제공합니다. 따듯한 물의 온기 안에 있는 것처럼 아이는 울 일도 때 쓸 일도 없습니다. 미리 해주는 것은 엄마에게도 편안합니다. 할 일을 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는 아이의 성장을 계속 한 곳에 머무르게 할지도 모릅니다. 조금 어렵지만 때로는 고달프지만 엄마 외의 사람과 지내는 법을 아이도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합니다. 이 둘의 사이를 떼어놓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지요. 정원이가 역시 타인을 만날 때는 달랐어요. 아빠도 외할머니도 저만큼은 자주 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엄마랑 있을때랑 또 행동의 규칙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결국 아이를 관찰하고 함께 하는 경험의 축적만큼 상상력의 폭도 늘어납니다. 그래도 이 '추리'에 있어 상상력은 필수지요. 정원이는 현재 만 9세입니다. 3학년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발달이 비록 또래와 달리 늦더라도 눈의 높이는 여느 친구와 같아요. 아이의 몸도 마찬가지죠. 이를 생활연령이라고 합니다. 발달연령이 1-2세 사이라 할지라도 아이의 몸은 자랍니다. 그 갭에서 오는 차이가 크지요. 쉽게 말하면 중학생이 되어서 아기들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은 어색니까요. 상상력은 또 한 번 발휘됩니다. 발달에 맞으면서도 또래에 맞는 활동을 고민합니다. 상상력은 경험에 기초하고 이론에 근거를 얻습니다. 아이의 과제를 구성하는 청사진의 기초재료지요. 활동이 도달할 수 없는 좌절감이 되어선 안되기에 조금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점진적으로 그 과제의 난이도는 올라가겠지만, 이는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될 거예요. <하고 싶다는 마음>, 동기부여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마음 중 하나입니다.
상상력은 때로는 불안을 야기하기도 해요.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함, 어느 누구도 낯선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 것 같은 불신,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말 못 하는 아이는 증거력이 없으니 학대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습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대한 불안과 엄마는 싸워야 해요. 주변에서 결국 내손으로 하는게 마음이 편하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고 듣기도 했어요. 뉴스는 더 심각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죠. 문득 지금 내가 미처 못보고 지나친 시그널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상을 넘어서, 아이의 세상은 엄마와의 세상에서 벗어나 조금씩 넓혀나가야 할 것입니다. 엄마가 모든 일을 해줄 순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다시 또 저는 정원이에 대한 경험을 총동원하여 미리 아이의 행동을 예상하고 떨어져 있을 한계 시간을 계산해봅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이가 가진 가능성의 폭을 늘려가는 거죠.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정원이에게는 다양하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실무원, 공익요원이 학교에서 도움을 줍니다. 방과후에는 활동지원사, 센터의 치료사(언어/체육/수영/인지)들이 릴레이로 아이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제가 제대로 컨디션을 맞춰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이 있었어요. 그 불안은 아이도 느꼈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 정원이를 믿고, 정원이를 미리 설명하고 지켜보니 아이는 생각밖으로 잘 해냈습니다.
저하고 24시간 있을 때는 아기 같던 정원이도 용기를 냅니다. 여전히 정원이는 제 품에 쏙 안기고 업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스스로 내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정원이는 정원이의 세계를 꾸려갑니다. 차츰차츰 아이의 세계는 넓어지고 엄마의 세상도 독립적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아프기도 합니다.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어요. 울퉁불퉁한 자갈길이었지요.
요즘은 5시에 정원이가 집에 옵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정원이와 1:1 시간에 최선을 다해 아이와 마주합니다. 밀도 있게 반응하고 더 힘껏 안아줍니다. 물 속에 깊이 잠수할 때는 안정이 필요한가 보다 생각하고 로션을 문지를 때는 감각의 충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각 놀이에 빠져 있을때는 옆으로 가서 함께 놀이하죠. 아이의 세계가 보다 다채롭게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는 제가 모르는 세계에 아이를 보내고 또 기다리지요.
아이의 세계를 믿어준다는 것. 그것이 저의 용기입니다.
브런치북 <자폐를 가진 정원이의 세계> 1부는 변방의 언어로 머물던 ‘장애’가 아니라, 보통의 아이 정원이가 가진 자폐를 이야기합니다. 2부는 ‘서포트 리포토 for 정원이’로 직접 활용했던 리포트를 통한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합니다. 이어서 행정학자인 엄마의 시선으로 정책의 틈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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