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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가 끝났습니다

<촛불아, 어두워도 괜찮아>를 퇴고했습니다.

by 인생정원사

1. 1년 전 꿈꾸었던 것


1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첫 브런치북으로 <정원, 뜻밖의 여정>을 만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부터 쓰고 싶었어요.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왠지 꺼내기조차 버거웠어요. 결국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원래 쓰려던 이야기의 우선순위는 점점 뒤로 밀려났습니다.

망설였어요. 내가 겪은 이 일이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죠.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죠. 아이를 오롯이 담을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폐를 가진 어린이의 세계>를 만들어 아주 겉면의 이야기부터 시작했었어요.

공모전도 ‘가드닝’으로 접수했었어요. 여전히 두려웠거든요. 한창 종강과 수술, 실습, 정원이 배앓이로 힘들었던 6월, 저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사진까지 모아 겨우 제출 하한선을 맞췄어요. 7월, 서류통과하고 면접까지 거쳤습니다. 최종마감전 멘토링 기간으로 10주가 주어졌죠.


어제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10월 10일이 마감일이었어요.


정원에 자폐이야기를 더했습니다. 가드닝과 아이, 내가 돌봐야 하는 존재였어요. 그러나 두 번의 퇴고를 해도 최종 기준에 모자랐습니다. 이미 5주가 지난 시점. 그 사이 정원이는 방학이었고, 전학을 했고, 적응을 했으며, 또 아팠습니다.

글과 관계없이 생활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투고를 준비했던 원고부터 허물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흩어 놓고 다시 써야 할 하나의 원고에 집중했어요. 넣어야 할 것과 넣지 말아야 할 것을 골랐어요. 아이를 등교하고 2-3시간, 하교하고 1-2시간, 재우고 2-3시간씩 썼습니다. 다시 목차를 더 추가하고 디테일을 살리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쓰는 과정을 거쳤지요.

다시 두 번의 퇴고를 더해서 완성했어요. 지나고 보니 이번 퇴고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쓸 수 있었습니다. 트라우마에 가까웠던 과정들까지 기록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회복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죠.


첫 번째 퇴고는 길을 몰랐고,

두 번째 퇴고는 어려웠어요.

세 번째 퇴고는 육체적으로 벅찼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퇴고는 즐거웠어요.


1년 전에 내가 꿈꾸었던 그날이 이미 와 있었어요.

출간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바로 쓰는 것.

이제 아파도 외롭지는 않습니다.


https://brunch.co.kr/@life-gardener/208



2. 촛불아, 어두워도 괜찮아 (2025.2)


인생은 때로 느리지만 격렬하게 소멸을 향해 달려갑니다. 마치 촛불처럼 내 삶도 그리 태워 버려도 되지 않을까. 매 순간 노력하고 또 웃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촛불처럼 주변을 밝히고 자신은 녹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했죠. 어쩌면 지금 엄마로서의 내 삶도 비슷한 것만 같았습니다. 평소 제 목소리는 낮은 음역대를 가졌고 어두운 추리소설을 좋아하죠.

그러나 아이를 맞이할 때만큼은 기쁨의 솔 톤으로 이야기합니다. 목이 쉬어도, 아파도요. 아이는 5시에 집으로 옵니다. 현관문에서 띵동, 하는 소리가 들리면 호흡을 가다듬고 외쳐요.

“정원이 왔어요, 정원이 왔어요!”

저는 아이에 대해 8년간 아무것도 쓰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모습과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항목을 나누어 정리했지요. 그것을 치료사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글로 담을 순 없었어요.

'자폐'.

이 두 글자를 나의 내적인 고백과 연결하면 낙인이 되어 평생을 확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복지카드를 받은 지 3년이 다되었는데도 '진실로' 수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인정하지 않으면 ‘장애’라는 현실도 결국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깊이 수용되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게 현실이었어요.

이상적으로 빛은 그 어둠을 가르고 내딛는 걸음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태우는 것일까, 주변을 밝히는 것일까? 란 고민도 들었어요.


퇴고는 고통을 복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장애를 갖고 평생을 어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책감을 동반했어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했던 과정이었습니다. 동정받고 싶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이해는 받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혹은 이해까지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삶에 대한 태도를 인정해주기만 해도 고마울 것 같은 마음도 함께 뒤섞여있었죠. 그 마음을 하나하나 떼어내서 바라보았어요. 어려웠어요. 봉인해 두면 괜찮거든요.

이 모순덩어리의 마음은 툭, 수고했다고 안아주면 울 거 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이제 치열한 슬픔을 마주하고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아이와 손을 잡고 앞으로 갈 수 있었어요. 슬픔을 마주하지 못했던 노력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지난날이 되었죠. 그림자를 인정하지 못했던 촛불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요. 모릅니다. 최선을 다한다고 밝게 살 필요는 없지요.


어두우면 뭐 어떤가요?


촛불이 녹아 없어져도 이제 상관없습니다. 가엽다 여기는 시선은 그저 해석입니다. 다른 이의 해석은 제 몫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선이 나를 상처 입히거나 바꾸지만 않으면 됩니다.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내 슬픔을 바라보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뿐이었어요. 그 안에서 나만의 답을 찾는다면, 반투명한 희망이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내 것이니까요.


퇴고는 답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함이 세상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촛불이 녹아 없어져도 괜찮아요. 어두운 밤의 빛은 촛불만이 아니니까. 희미한 달빛으로 존재해도 좋지요. 아이와의 삶, 그 안에서 지킬 것은 오직 하나, 내 마음, 촛불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갈 마음이니까요.


표지사진출처: 핀터레스트 / 본문사진: 제미나이로 제작


3. 퇴고가 끝났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브런치북을 정비하려고 합니다. 돌아온 소식을 이렇게 브런치북을 통해 알립니다. 1년 동안 브런치북에 써왔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아픈 줄도 모르고 몰입했어요. 촛불이 다 탄 느낌이기도 합니다. 지금 매우 고단하고 조금 기쁘고 조금 슬픕니다. 그 과정은 다른 글로 자세히 전할게요.


잊지 않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플 고(苦), 이야기 담(談).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잘 수가 없는 밤에 쓴 글들. 이곳에서는 엄마도, 정원사도 아닌 오롯이 나를 기록합니다. 일기보다 투명하고, 편지보다 깊은, 푸른 물의 아픈 시간, 그 기록을 다시 불러와 브런치북 <새벽고담>에 담았습니다. 새벽의 글들을 다듬어 다시 올린다면, 고통도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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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