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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론의 시대, ‘그럴 수도 있지’라 쓰다

by 인생정원사
자, 나를 따르시오!

세상은 ‘나는 이런 장점이 있고, 저런 특기가 있으며, 그런 어려움들을 겪고 요런 비법으로 성공했다’라며 당당히 말한다. 그런데 그 비결은 유료랍니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으면 내 강의를 들으세요, 혹은 책 사세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게 쉽게 달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Hook

세상은 자신의 장점을 미끼 삼아 '무엇인가'를 낚아 올리는 시대다.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고 팬덤을 이뤄 소통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누구나 개인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 가르치는 것이 돈이 되는 시대가 왔다. 단돈 1만 원만 입금하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커피값도 오천 원을 훌쩍 넘는 요즘, 타인의 노하우를 만원에 얻는 것이 저렴하게 느껴진다. 과거에는 공간을 대여해서 모집했기에 오프라인 수강생 인원을 모으기도 기본 비용을 감수하기도 어려움이 있었다. 최근에는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집안에서 줌 강의를 한다. 물론 양질의 강의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리지만 그것은 강의하는 사람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가끔 비싼 강의를 들어도 책 한 권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평면적이고 관념적일 경우도 많았다. ‘매일 쓰세요.’, 혹은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쓰세요.’ 누구나 다 아는 맞는 말을 꺼냐면서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당장 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혹은 '나'를 팔고 싶은 것일까?


출처: 핀터레스트


Hold

세상은 빼곡한 비법으로 채워진 백과사전과 같았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자폐 아이를 키우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해답이 팔리는 시장에서, 특히 돌봄의 장은 더 큰 유혹을 받았다. 느린 아이를 어떻게든 빠르게 키우는 갖은 비법이 돌아다녔다. 그 활자 안에는 한 땀 한 땀 가르쳐야 하는 느린 시간은 없었다. 예를 들어 정원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운동화 뒤굼치를 손가락으로 넣어 발을 밀어넣어 신는 법, 빨대를 꽂아 요구르트를 먹는 법,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고 팔을 걷고 손을 씻는 법들을 하나하나 쪼개어 가르쳐야 한다. 기본을 말하는 이론서는 먼지만 뒤집어쓰고 기적적인 사례로 한방에 좋아지는 비법을 소개하는 영상의 조회수만 높았다.

그런 시대에서 내 글의 자격이 있을까란 의문이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자폐를 극복하지 않았다. 투쟁을 해서 학교를 세우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두 번의 전학을 거쳤기에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없고, ‘어느 한 순간’ 놀랍게 말문이 틔이지 않았다. 음악이나 미술 등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는 정원이를 키우면서 가진 '그래야만 해'라 강요하지 않고 껴안아 줄 마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수용하는 경험만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겪고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빈 공간'만이 있었다. 수용이란 때로는 보이지 않는 여백이다.


Hug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일상은 평화롭다가도 전쟁으로 돌변했다. 마냥 느긋하지도 한결같이 싸워서 이겨내지도 못했다. 위대한 엄마, 대단한 사람, 장한 어머니는 아니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흔들리고 아픈 그대로의 인간으로서 고통을 직면했다. 그 과정에서의 아픔을 고스란히 말하고 싶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힘들었고, 많은 부분을 애썼지만 실패하기도 하는 삶, 그 자체 말이다. 대단한 교훈이 없어, 여전히 우리의 삶을 써도 될지 그 자격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기록으로 남겨 되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라며 쓰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 강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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