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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원점의 밤>을 퇴고했습니다.

by 인생정원사
아플 고(苦), 이야기 담(談).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잘 수가 없는 밤에 쓴 글들. 이곳에서는 엄마도, 정원사도 아닌 오롯이 나를 기록합니다. 일기보다 투명하고, 편지보다 깊은, 푸른 물의 아픈 시간, 그 기록을 다시 불러와 브런치북 <새벽고담>에 담았습니다. 새벽의 글들을 다듬어 다시 올린다면, 고통도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까요.



1. 정상성의 자각


매일 타인과 다름을 직시하는 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예리하게 파고드는 감각이 압도했다.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자각은 때로는 피곤했다. 미지근한 몰입의 바닥에 가라앉아 흐르듯 멈춰있는 심연이 편했다. 직면의 순간은 날카로웠고 매일 새로운 상처가 옛 흉터를 가로질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괴로울 것도 없지 않을까. 나를 들여다 보려고 하면 몸의 통증이 늘 따라붙었고,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노력의 챗바퀴를 멈추고 싶었다. 희망은 감히 바랄 수 없는 그런 아픔, 주기적으로 밀려오는 힘듦을 어떻게든 선순환의 에너지로 바꾸고 싶었다. 매번 다시 찾아오는 원점 위에서 글을 썼다. 모든 노력을 멈추고 따듯한 물에 잠기듯 그저 쉬고 싶은 순간을 애써 외면했다.



2. 원점의 밤 (2025. 5. 16)


통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익숙하면서도 좀처럼 견디기는 어려운 새벽의 통증은 그렇게 지나갔다. 진통제를 먹어도 출렁이듯 손발을 휩쓰는 고통은 혓바늘이 돋아나고 묵직한 배. 4월 초에 했던 자궁 수술은 그 뒤로 쉬지 못했던 탓인지 잔여 통증이 고인 물처럼 아랫배에 남아있다. 진통제와 신경주사를 간간히 맞아가면서 하루살이처럼 살아갔다. 해가 떠 있고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밝은 낮은 통증은 잊어버린 채 지냈다. 아픔을 잊은 채 유지했던 아이를 위한 노력이 과도한 노력으로 여겨질 땐 넋을 잃고 말았다.

자폐를 가진 정원이에게 수면은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숙제였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의 날이 길어질수록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나의 정신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단약을 했던 1월의 결정이 섣불렀던 것일까? 밤이 되면 무너진 틈으로 통증이 비어져 나온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날카롭게.

아팠다. 미래의 낙관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 하루의 안녕만을 꿈꾸었다. 그 안녕 안에 '나'라는 존재를 끼워넣기 위해 애를 썼다.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아무리 버둥거려도 원점으로 돌아오는 감각이 나를 아프게 했다. 얽히고설킨 통증의 거미줄이 결국 날 옭아맸다. 거뜬히 해냈던 모든 일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글 속의 '정원사'와 현실의 '나'의 괴리가 느껴지면 유감스러워진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아픔을 연료 삼아 쓰인 글은 강하고 아름다웠다. 활자 위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모성 앞에 선 현실이 초라해지는 그런 밤이었다.

눈물은 아픔조차 씻어버리고 깊은 피로감을 남겼다. 다시 날이 밝으면 아침의 가면이 '정원이 엄마'로 살게 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가시는 이렇게 불쑥 찾아와 힘든 밤을 예고했다. 한숨을 쉬듯 진통제를 털어 넣고, 카페인을 삼키고 또 오늘 밤을 견뎌보았다. 낮에라도 쉬면 좋을 텐데 만사 긴장된 상태라 그럴 수 없으니 그저 견딜 수밖에.

다시 낙관의 태양이 떠오를 내일, 그러나 영영 오지 않을 그런 <내일>을 기다리는 밤.


3. 낭종지추(囊腫之錐)의 시간, 2025. 11


반년 후의 몸은 큰 변화는 없었다. 길고 긴 퇴고를 마치고 나니 베이커 낭종이 왔다. 오금에 물이 차는 현상이었다. 아기 주먹만 한 낭종으로 인하여 무릎을 펴기도 굽히기도 힘들었다. 유난히 염증이 많이 생겼다. 15년전쯤의 한포진부터 작년엔 겨드랑이와 올해는 목에 생긴 표피낭종. 올봄에 수술했던 자궁 폴립, 최근 오금에 생긴 낭종까지. 매일 똑같은 하루를 잘 마감하면서 아이를 고이 재웠다. 하루를 리듬있게 보내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지난 월요일밤도 같았다. 정원이를 재우고 토닥이며 옆에 새우모양으로 구부린 자세로 너무 오래 누워 있었나 보다. 억, 소리와 함께 발을 디딜 수 없었다. 5년 전 갑자기 그랬던 것처럼. 연골이 찢어졌단다.


스스로가 약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정원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적절한 타이밍으로 등을 톡톡 두드리고, 잽싸게 이동해서 적당한 자리를 잡기, 아침에 신나게 도도도 교실 앞까지 종종걸음으로 뛰기, 배변 뒤처리할 때나 아이가 이를 닦을 때 몸으로 가드 하는 버티기, 매일 4-70km의 운전 등 모든 활동이 힘과 민첩성, 지구력이 필요한 활동이었다.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 얼마나 많은 것을 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늘 골골대며 살았다. 어쩌면 약한 몸으로 위의 활동을 한결같이 매일매일 감내했기에 아픈 것일테다. 체력을 강하게 키우려고 운동도 했었는데 욕심이었을까.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내 몸을 아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내일을 꿈꾸었지만 또 원점이었다.

그러나 반년 전과 달랐던 것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목을 붙잡는 '약함'도 아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낙관은 스스로의 약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보름전 베이커 낭종, 이번 주에 연골이 찢어졌단 진단을 받았습니다. 오랜 고질병인 무릎은 계속 저의 약점으로 남네요. 연골이 파열되었어도 아이를 등교시키고 하루의 리듬을 만드는 과정은 소홀히 하지 않았음에도 결국 영향을 주었나 봅니다. 아이가 늦게 잠드는 밤이 시작되었어요. 삶의 균형을 찾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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