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난과 장애, 순응과 선택

by 인생정원사 선우


고등학교 시절을 과외나 학원 없이 보냈다. 문제집은 교사용을 받아서 풀곤 했다. 대학에 진학해 맞이했던 스무살 그 시절은 아무리 빠듯했어도 감격스러운 자유로 느껴졌다. 중학교 시절 여상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은 담임에게 기각당한 터였다. 결국 돈이 되지 않는 전공을 하면서도 자유는 달콤했다.


새내기 시절 한 달 용돈을 30만 원을 받았다. 어머니

당신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비정규직근무를 하다가 공무원으로 퇴직하셨다. 대학에 진학할 때쯤에는 학자금 대출을 무이자로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학기중에 내가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 시간은 금이었다. 돈을 아끼고 공부하는게 나았으리라.


한달 20-30만원으로 매일의 교통비, 식비, 교과서비를 충당했다. 당시 학식은 2,000원대(김밥은 1,000원), 왕복교통비는 3-4,000원이었고, 학기 초 교재비나 가끔 총회참가비, 학회 참석비, 뒤풀이비 등을 내는 걸 고려하면 거의 점심은 혼자 매점에서 1,000원짜리 김밥을 사 먹기 일쑤였다. 어렵게 받은 돈은 소중하게 쓸 수 밖에 없었다.

주거비를 아끼려고 친척집에서 멀리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했다. 버스를 두번 환승해야 하는 탓에 1교시 수업 전날은 자취하는 친구 집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방학 때는 일절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동아리 연수만 가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기 중 용돈을 충당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가난하단 걸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티가 안 났다고들 한다. 얻어먹으면 꼭 되갚아 사주곤 했으니.

당연 친구는 많지 않았다. 수강신청을 하면 옷색깔마저 맞춰 입고 등교하는 무리들 사이에서 난 아웃사이더였다. 강남사는 친구들도 많았고, 지방에서 올라간 나는 그들이 나누는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에 도통 낄 수 없었다.

대학원생이 되어서 스스로 용돈을 안 받고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고 살림은 빠듯했다. 인간관계의 물정을 몰라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하기도 했다. 구설수에 휘말려 전화로 대학원 사람에게 “거지 같은 것, 조용히 있다 꺼지란” 폭언을 듣고도 저항하지 못했다. 서툴렀고, 방어할 줄 몰랐고, 경계하지 못했던 시절.


다 지난 일이었다.


백 원 단위로 쪼개서 살았지만 스무살 후반 같은 대학원 사람으로부터 거지 같단 말을 들었다. 타인의 언어폭력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난을 직면했던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선의와 악의를 구분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만큼이나 해낸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미처 방비하지 못했다. 공부라는 알량한 재주를 뽐내 미움을 산 내 잘못, 구업을 갚는 대가라 생각했다. ‘거지’란 폭언을 상기하는 것조차 한동안 힘들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때 나의 세계는 그만큼 좁았으니까.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 같던 그 말에 대한 상처의 사슬은 정원이를 키우며 도리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기실 그 시절의 공포는 미숙한자의 어리석음일 뿐이었다. 진정한 어려움은 ‘말’이라는 타인의 폭력이 아니었다. 정원이를 낳고는 세상은 더 달라졌다. 자폐라는 아이의 장애는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의 뒷면을 알게 했다. 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1,000원의 손해에 전전긍긍하던 나는 천천히 사라졌다. 상실을 알게 되었고,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무너지고 채워지는 시간을 겪었다.


사진은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


‘가난’의 현실을 다룰 줄 모르던 20대는 ‘장애’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40대가 되었다.

그 시절의 천진함, 혹은 오만이 그립긴 하다. 하지만 난 지금 이 모든 것을 겪은 지금의 내가 좋다. 정원이는 나를 살렸고, 어쩌면 다시 태어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가난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 시절이 그렇게 원망스럽진 않았다.

가난도 장애도 운명이라면 순응하고 그 안에서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란 걸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난날의 굴곡이 지금을 받아들이는 완충장치가 됐을지도. 당시 고생담을 나누던 옛 친구들은 제각기 성취했으나, 가난함의 경험은 삶의 선택에 주기도 했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아무리 안전한 선택이더라도 헤피엔딩은 아니었다.


얼마 전, 부자가 되고 싶단 지인에게 나의 지난 시절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걸 쫓기 위해 지금 손에 쥔 것을 잊지 말라고.

당신은 충분히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돈이 있으면 당연 좋지만 말이야.

비교란 가난보다 더한 독이 되니까.


상처도 마주하는 순간 조금 아물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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