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폐교된 중학교는 사립이었다. 여중-여고가 붙어있는 곳이었는데 미술선생님이 2학년 3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나한테 예고를 가라고 권하셨었는데 5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까닭에 경제적으로 무리였었다. 여름방학때 한달 가량 학원을 다니다 엄마에게는 ‘재미없다’며 그만뒀었다.
미술시간에 교과서 그림을 모작하기 시간이 있었다. 무척 열심히 그렸던 그림은 몇년동안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 벽 한가운데 붙어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오랜만에 찾아간 모교에 여전히 걸려있었으니까.
마흔이 지나 월 1만원 평생학습센터에서 수채화를 시작했다. 정원이를 돌보는 일상에서 그림은 그리는 순간 만큼은 뭔가 숨통이 트였다. 당시 센터는 살던 곳과는 도보로 10분 거리였다. 전문가용 물감 15색과 파레트를 샀다. 일주일에 하루, 2시간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면 행복했다. 그렇게 그림이 하나씩 쌓였다. 오래전 꿈을 다시 꾸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2022년 가을에 시작했던 수채화는 2024년 5월 정원이 초상화를 끝으로 멈추었다. “다음에 또 만나요”라 했던 수채화 선생님은 7월에 급성간경화로 돌아가셨다. 또 마음 붙일 곳을 잃어버렸다.
상실은 무섭다.
추첨이 될지 몰랐지만 잃어버리는게 겁나 평생학습센터 수업을 신청하지 못했다. 그 무렵, 주치의 선생님이 마음챙김 부모수업을 추천했다. 그러나 엄마들 사이에서도 정원이의 발달은 유별나게 느렸다. 공감의 대화는 어려웠다. 꿋꿋히 8주 수업을 나갔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구절을 만났다.
“네 마음을 느린 화면으로 천천히 보라.“
그때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서 한줄도 제대로 쓰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 아이에 대한 모든 기록은 발달의 표상에 머물렀단 걸 깨달았다. 감정을 쓰는 것은 모질게 아팠다. 정원이 이야기를 한편이라도 쓰면 한 달 가까이 앓았다. 아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여전히 괴로웠다.
추운 겨울, 문득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말 없는 나의 꽃들, 10년 동안 키운 다정한 식물 이야기. 목차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한주에 한편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홈페이지 메인에 소개되었다. 신기했다.
글쓰는게 조금 즐거워졌다.
봄이 왔다. 하지만 정원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았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도 그 마음에 대해 글을 썼다. 그러다 2025년 5월 글쓰기를 멈추었다.
수채화든 브런치스토리든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 나를 발견해주는 곳이 있어 좋았다. 그래서 썼다. 그럼에도 무너지는 마음은 막을 수 없었다. 소통하는 기쁨을 알았기에 브런치 외 다른 곳을 찾아 헤맸다. 그곳이 스레드였다.
한 번 쓰기 시작한 글은 이제 내 멋대로 멈출 수 없었나 보다. 작년 6월 공모전 서류에 붙었다. 접수 마지막날, 정원 이야기를 모아 냈었다. 서류 심사에 붙었다. 면접에서 아이 이야길 함께 쓰는 것이 어떻냐 심사위원은 물었다.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채 “네!”라고 대답했다.
아이 전학과 이사와 퇴고를 같이 했고 그 과정을 기록했다. 마치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새로운 하루가 이어졌다. 잊고 싶었던 기억을 모두 끄집어냈고, 분해했고, 맞추었다. 마지막 피스를 맞추었을 때 상처는 비로소 아물었다. 이제 아파도 글을 쓸 수 있었고, 아프기 않기 위해 글을 고치고 또 고쳐나갔다.
나는 상처를 마주했고, 복기하고 있다.
퇴고를 시작하면서 다시 용기를 내 수채화를 시작했다. 1년만이었다. 3개월 동안 단 한장의 그림을 그렸다. 글의 내용을 세밀하게 담았다. 퇴고를 하면서 힘든 마음은 그림을 그리면서 집중했다. 선생님도 바뀌었고, 나의 그림도 달라졌다.
완성된 그림을 최종원고에 슬쩍 넣어 제출했다.
2026년 3월 책이 출간된다. 한줄 한줄 가까스로 끄집어낸 정원이와의 역사가 담겨있다. 묵묵히 날 위로해준 식물들이 있다. 운좋게 내가 그린 그림이 출판사 눈에 들었다. 혹시몰라 마지막으로 그렸던 정원이 초상화를 필요하면 쓰라고 보냈었다. 감사하게도 표지가 됐다. 뒷면에는 멘토작가님과 주치의선생님의 추천사가 실리게 됐다.
논문과 달리, 이 작은 책 안에는 나의 삶이 담겨 있었다. 정원이에 대한 이야길 쓰고 싶었던 내 소망은 어느새 이뤄져 있었다. 기뻤다.
삶은 끈질기게 살아온 자에게 조금은 다정했다.
다시 겨울이 왔다.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정원이는 특수학교에서 계절학교에 다니고 있다. 9시에 등교했지만 정원이 마음은 아직 이불 속일 만큼 추운 날씨다. 겨우 달래 2층으로 왔는데, 결국 2층 출입문 밖으러 도망간다. 엉엉 울며 발버둥치는 아이를 바닥에 앉아 무릎위로 안고 (들어올릴 순 없으니) 등을 토닥인다. 아이가 진정할수 있도록, 아주 옛날처럼 흔들거리며, 토닥토닥. 괜찮아. 아가. 몸에 힘을 빼고 나에게 기댄다. 준비되면 가자, 괜찮아. 35kg 아이를 살짝 업는다. 겨우 100미터 거리니 괜찮다. 흔들거리며 감각통합실이 보이는 복도 앞에 내려둔다. 우리 그네 타러갈까. 진정된 아이는 총총히 뛰어가 교실 문을 연다. 등교완료. 아무도 모르겠지, 등교란것도 하나의 과제고 미션이란 걸. 무섭게 다그쳐 봤자, 시간이 단축되는건 아니니, 깊이 숨을 내쉰다. 열흘만에 조금 나아진 내 아이.
오늘은 수채화 가는 날이다. 30분 거리 운전의 친구 삼아 라디오를 켠다. 난 그림 그리는 동안은 다 잊을 수 있다. 그 두 시간은 지금도 내게 중요하다. 시큰한 허리를 문지른다. 그림이 알려준 다정함은 내안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