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발견해주는 기쁨

임솔아 작가님의 마지막 피드백, 그리고 다정한 후기

by 인생정원사 선우
이 브런치북은 출간 이후의 뒷 이야기와 퇴고과정을 교차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가 등교적응과 태풍주간으로 인하여 연재주기는 불규칙적입니다.


작업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원이 하교길과 같았다. 작년 9월 토요일 자정에도 이 길을 달렸다. 오늘처럼 그날은 캄캄했고 비도 왔다. 라디오의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달렸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마음은 충만함에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퇴고는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책은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썼지만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옮기지 않았다. 솔직함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니니까. 감정을 상기하고 복기하는 것이 혹여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퇴고과정을 통해 쓰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만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조립했다. 그 과정을 통해 지난 과거와 화해하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다.

임솔아 작가님의 마지막 피드백이 왔다.



선우님 안녕하세요. 임솔아입니다.

연휴라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정말 정성껏 원고를 고치셨더라고요.

얼마나 오래 잡고 계셨을지 원고를 보니 절로 보였어요. 문장만 손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장은 물론이고 다른 곳들도 구석구석 세심하게 보셨더라고요.

이제 곧 제출일이고, 제가 할 일은 이제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중략)

저는 선우님이 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고, 괜히 저까지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듭니다.

선우님의 책과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이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10년간 정원이와 살아내는 것이 너무 버거워 세상사에 둔해졌었다. 우리는 세상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정원이를 키우면서 많은 것을 내려두어야했다. 허전함에 누군가를 붙잡고 끝없이 이야기했다. 정원이, 그리고 남편, 동네 친구들에게.

삶은 혼자가 아님에도 지독하게 외로웠다. 이야기가 혼잣말처럼 느껴졌다. 누가 듣고 있나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걸까요. 불안함은 계속 눈앞의 온기에 집착하게 했다. 타인의 온기는 아무리 애써도 움켜쥘 수 없었다. 아지랑이 같았다.


그러나,

그러나...


마지막 피드백 메일을 받고 깨달았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귀기울이고 있구나.


눈물이 났다.


삶은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 나를 발견해주었다. 기뻤다. 글쓰기는 일종의 인정, <참 잘했어요> 도장과 같았다. 글을 쓰는 동안 고요히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에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깊은 밤을 새우고도 나누지 못할 깊은 대화였다.



앞에 보이는 길을 열심히 걷다가 갑자기 어둠만 남는다면, 주변 사람들마저 모두 사라진 것 같은 길이 놓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까? 뭘 잘못했는지 따져보기도 했다가, '왜?' 질문도 해보다가, 결국에는 어둠을 더듬으며 의지할 무언가를 발견하려 애쓰게 될 것이다. 알지 못하던 세계와의 만남은 그렇게 문득 시작되기도 한다. 새로운 빛을 발견해낸 삶의 길은 다시 보통의 길이 된다. 어쩌면, 전보다 더 애틋하고 귀해졌을 자리. <정원, 뜻밖의 여정>(2026년 1월 출간)에서 나는 홀연히 인생의 낯선 길을 마주한 한 여자가 새로운 세계를 온 마음과 힘으로 끌어안아 길을 가꾸어가는 여정을 보았다.

(중략)
작가가 느끼는 미래의 불안, 현실의 고단함 이면에는 장애 자체 외에도 주변의 서툰 인식, 촘촘하지 못한 지원 체계, 인색한 예산 투자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크고 작은 돌덩이처럼 널려 있을 것이다. 사회의 걷는 속도를 배려하여 정원을 가꾸듯이 애써 말을 골라내어 기록을 남긴 선우 작가의 노력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모르는 이들이 아직 많기에 맞닥뜨린 현실 속에서 애쓰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애써 만들어가는 보통의 길 위에 놓인 기쁨에 대해

(해산 작가님의 서평 중)


<정원, 뜻밖의 여정>이 출간된 이후 혼잣말처럼 건넨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 마음에 닿아 하나하나 남겨주는 후기가 답장처럼 느껴졌다. 지독하게 추웠던 외로움이 비로소 가시는듯 했다. 온기에 기대지 않아도ㅡ춥더라도ㅡ 혼자 있을 용기가 생겼다. 그것이 이 여정 끝에 도달한 나만의 의미였다.



요즘 자꾸 떠오르는 한 소년과 한 소년의 엄마가 있다.

고양이 눈매를 닮은 정원이와

인생의 정원에서 가장 느린 꽃을 키우는 선우 작가.

에세이집 <정원, 뜻밖의 여정> 속 주인공들이다.

이 책은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정원을 키우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공부를 좋아하고 자신의 삶에 열심이었던 한 여인.

하지만 아이를 낳은 뒤 그녀의 인생 좌표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을 위한 도서관 대신 아이를 위한 언어치료실을 오가고,

아이의 '태풍 주간'은 삶을 강타하는 진짜 태풍이 온다.

그래도 선우 작가는 아파트 베란다의 작은 정원에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꽃 정원이와 함께

꽃과 나무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람을 키우고 자연을 돌보는 시간 속에서

작가의 삶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세 가지 바람이 남았다.

정원이가 더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를.

정원이 가족에게 태풍 같은 주간이 덜 찾아오기를.

그리고 선우 작가가 더 멋진 작가로 우뚝 서기를.

삶은 도서관을 쓴 인자(포도송이 x 인자의 브런치스토리) 작가는 나와 같은 길을 다르게 걷고 있는 분이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가셨고 책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여정 위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바로 활자 위에서. 지금 나는 태풍 주간을 또 건너는 중이었지만... 안부를 담아 전한 글은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휘청이는 시간에 작은 온기를 더해주었다.


1년 반 전,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정원이 이야기를 꺼낼 때면 목소리가 떨린다고. 갓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때는 아이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에 대한 기억을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헌신적인 사랑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불안한 마음에 작은 온기에 의지를 했다. 그래서 어딘가에 속해 있다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지금도 아이에 대한 책이 나왔음에도 두려움은 여전히 있다. 이 치열한 삶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며 누군가에게 비판받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식물을 키우듯 느린 아이를 키우며 작가는 힘들었던 하루를 불평하지 않고 무사히 보낸 오늘을 다행이라 여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불안한 미래 앞에 좌절하기 보다는 고요한 눈길로 내일을 낙관합니다.

그 모든 긍정의 몸짓은 아이를 향한 저자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어서 읽는 내내 뭉클했어요.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지만 나는 내 아이를, 온전히 아이의 입장에서 헤아리고 아이편에 서서 생각하려던 때가 있었는지 뒤돌아 보게 했습니다. 화분을 벗어나 노지에 뿌리내린 작가님의 상록수처럼 정원사님과 꼬마 가드너님도 세상에 단단히 뿌리 내리며 지내시기를 애독자로서 소망합니다.

캐서린의 뜰 작가님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catherinegarden




책장을 덮고 나면 비로소 내 사람이라는 정원을 가만히 들여다 보게 된다.

우리는 늘 화려하게 만개한 꽃의 시절만을 '성공'이라 부르곤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지평의 삶을 이야기한다. 지금 삶의 한 가운데에서 잠시 길을 잃었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며 힘든 시간을 건너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이 조용히 닿기를 바란다. 당신의 정원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다정하게 알려준다. 책장을 덮고도 여운이 오래 남는 책.

빛날애 작가님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itnala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떠올랐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게 꽃을 보듯이 그렇게 평온하고 잠잠할 수 있는 삶일까. 일반의 시선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 그렇지만 이 책의 작가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누구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

언젠가 내가 만날 수 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을 좀 더 이해하고 따스한 연대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 뜻밖의 선물로 받았다. 책을 통해 내 삶과 시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이것이야 말로 독서의 진짜 유익이 아닐까 한다. 또한 자녀를 키우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틈틈이 식물들과 정원을 돌보는 작가의 사색은 실로 깊고 깊어서, 많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깊은 단잠 한번 이루지 못하는 작가의 삶이 안쓰럽다가도, 아이와 즐기는 소풍이나 드라이브 같은 소소한 일상에 베어있는 충만한 기쁨에 여러 번 뭉클했다. 앞으로 자녀를 키워가는 긴 여정에 넘치는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기를.

다독임 작가님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dadokdadok



저자는 자식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다. 높은 아파트의 베란다를 일구다가 정원이 딸린 1층 아파트를 구했다. 그곳에는 오렌지빛 치즈냥이가 찾아오고 아침 햇살과 물빛 공기가 창을 두드린다. 저자의 아이이자 어린 조수인 정원이도 빼놓을 수 없다. 조막만 한 손으로 호미질하고 잡초를 뜯어 둔덕을 쌓는다.

정원이의 시간은 또래보다 느리게 흐른다. 저자는 묵묵히 그 광경을 기록한다. 벚꽃잎이 떨어지고 눈이 내려 쌓일 때까지 그리고 다시 새순이 돋을 때까지의 과정이 반복된다. 전체 이야기가 한 권의 그림책을 보는 것 같았다. 인상 깊은 장면이 눈꺼풀 뒤쪽에서 몇 번이고 재생했다. 깊은 밤, 거실에 앉아 한 장, 한 장 아껴 읽었다.

정원 딸린 주택에서 살아보는 로망이 있었다. 작가의 책은 이런 내 마음을 대신 충족시켜 주었다. 처음 들어보는 식물의 이름도, 성장도, 토분도, 분갈이도 함께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가끔 흐려지는 눈앞을 손등으로 닦았다. 슬프지만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정원사의 여정에 초대해 줘서 감사했다. 저자의 바람처럼 모두가 자신의 정원에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유영해 작가님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39dreamer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함께 글쓰기 시작한 동료들은 마음을 다해 글을 남겨주었다. 한 줄 한 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기에 부럽기도 했다. 상실을 되새기면서 나눠주는 따뜻함이 좋아 함께 머물렀고 안녕을 고했다. 우리, 이제 글에서 만나도 괜찮을 거 같아요. 날것의 삶보다 글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안녕, 우리 또 만나요.



교보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115446​




예스 24

https://m.yes24.com/goods/detail/176076358​




알라딘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385140859&start=mosearch_auto​




아이의 수만큼 자폐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각기 다른 빛의 스펙트럼만큼 다채로운

우리의 이야기가 더 멀리 더 깊이 닿길 소망하며,

2026년 3월 정원사 선우 璇雨 올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