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나를 자라게 했다

멈춘 듯 보여도, 그 시간은 나를 길러내고 있었다.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두려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 날들이 내 안을 가장 많이 채워왔다.
겉으로는 고요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흘렀고,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고요를 두려워하기보다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멈춰 있는 듯 보였던 그날들도 결국은, 나를 자라게 하고 있었다.
성장은 언제나 분주한 결과물로 증명되는 게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바쁘게 움직였다고 해서, 마음이 자란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성취가 없어도,
그저 견디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늘 무언가를 ‘이뤄야만’, ‘시도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마음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 느린 리듬 속에서 나는 나를 관찰하고,
무언가를 포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마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하루가 필요하다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오늘의 고요함 속에 숨어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요즘, 조용한 하루를 다르게 본다.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나를 길러주는 시간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살아 있는 하루라고.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날들이 나를 키우고 있었다.

날씨조차 완벽히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삶이 매일 변화를 일으키길 바라는 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잔잔한 날이 많을수록, 어쩌면 그 삶은 더 건강한 것일지도.

맑은 날을 바라다가도, 우리는 가끔 비를 원하고 눈을 기다린다.
그 모든 날들이 모여 계절이 되듯,
아무 일도 없는 오늘 또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한 조각의 시간이다.

오늘의 고요함이 쌓여,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