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의 무지는, 때로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간다.
오늘 할머니 생신이어서 급하게 시골을 내려왔다. 1시간 전에 새마을호를 예매해서 지연 도착해서 미친 듯 뛰고 생전 처음 타 보는 입석이라 재미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잘 도착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엄마, 삼촌, 사촌 동생과 밥을 먹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지고 ‘경련’을 일으켰다.
처음에 졸리다고 하품을 해서 그냥 졸린 줄만 알았는데, 앞으로 꼬꾸라지듯 쓰러져서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히시고 엄마가 끌어안으니 눈이 뒤집히고 벌벌 떠시며 경련을 일으키셨다.
정말 무서웠다. 내 소중한 사람이 직접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목격하니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원인도 모르고 과거력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련을 일으킨 사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단추를 풀고 가방을 벗기고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 주는 것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행히도 엄마가 할머니를 끌어안고 있어서 이차적인 부상은 막을 수 있었다.
정신 차리라며 할아버지는 다그쳤고, 엄마는 놀라서 눈물을 글썽였다. 사촌 동생은 놀란 듯 보였지만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았고.
조금 지나자 숨을 쉬고 다시 피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눈의 초점이 맞춰줬을 때 물을 권했고, 물을 충분히 마시게 했다. 의식을 찾아 차에 잠시 모시기로 했다.
밥을 다 먹었을 때쯤 (10분 후) 스스로 걸어 들어와서 우리를 찾을 정도로 할머니는 괜찮아지셨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화장실 갈 때 문을 조금 열어 두라는 것을 알려드렸다. 뇌혈관이 터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과 함께.
그러고 생일 파티를 하고 대화를 한 후 삼촌과 사촌 동생은 하룻밤을 자고 올라오고 엄마와 나는 ktx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삼촌이 기차역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셨고 오는 길에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한테 할머니가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면 119에 신고하라고 교육해달라고 삼촌한테 말했다. 나조차도 아무것도 못 하겠는데, 응급이 아니더라도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말을 꺼냈다.
엄마가 이걸 듣더니 자기도 말을 할 거라고 했다. 내가 말을 한 거라면서.
지금은 그 집에서 내가 하는 말이 가장 권위 있는 말이라고 한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생명과 직결된 전공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 내 의견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질 줄 몰랐다.
정말 의료인의 무지는 살인이 맞다.
아직 나는 대학생일 뿐이지만 조만간 면허를 따고 의료인이 된다면, 훨씬 더 나은 응급처치를, 훨씬 더 나은 정보를 알려드릴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정말 내가 전공을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나라도 더 알아야 더 큰 위험을 막을 수 있고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게. 책임이 느껴졌다.
아직은 배움의 길 위에 있는 학생이지만,
언젠가 면허를 얻고 의료인이 된다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정확하게, 따뜻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내가 하나라도 더 알아야, 누군가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