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나를 학습시킨다

오늘도 나는 나를 학습시킨다

by IN삶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났다.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면서, 마음이 묘하게 들떴다.
이제 해야 할 것은 과제뿐인데, 이상하게 공부보다는 다른 일들이 나를 자꾸 부른다.
어제저녁, 갑자기 뉴스레터를 발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앉아 기획을 하고, 디자인을 만들고, 문구를 정리했다.
시험공부는 하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환연’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공부도, 과제도, 다 잠시 뒤로 미뤘다.


오늘 아침, 쪽지시험이 있다는 걸 시험 1시간 전에 알았다.
3시간 전부터 급히 책을 펼쳤고, 널싱스킬과 교재를 붙잡았다.
겨우, 정말 겨우 풀어보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공부를 안 했던 적은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객관식이라 다행이었다. 찍을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실습 시간에 공부했던 개념들이 나와서, 몸에 익은 감각으로 풀었다.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


이상하게도 실습 시험이 끝난 이후부터는 기분이 가벼웠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나는 괜히 신나 있었고,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 대신 유튜브 편집을 했다.
시간을 흘려보내며,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했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나 자신에게 조금 너그러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공부보다 중요한 건, 결국 수업을 제대로 듣는 일이라는 걸.
복습보다, 지금 이 순간의 집중이 훨씬 더 크다는 걸.
그건 삶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을 더 잘 살아내는 일.
그게 진짜 공부고, 진짜 인생이지 않을까.


인생에는 요령이 없다.
그저 하면, 내 것이 된다.
나는 배운 것을 잘 잊지 않는 사람이다.
그건 내 능력이고, 내 재능이다.
그런데 왜 그 재능을 온전히 쓰지 못하고 있을까.
왜 나를 먼저 드러내지 못할까.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누군가의 ‘기회’를 부러워했다.
교수님이 먼저 제안해서 연구에 들어간 내 동생.
그 아이는 확실히 특출 났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만한 재능이 있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직 나를 다 알지 못한다는 걸.
내 안의 가능성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고, 나는 그걸 깨우는 중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매일의 글을 남기며, 나를 학습시키는 일.
AI에게 내 글을 학습시켜서, 나 자신을 되묻기 위한 준비를 한다.
“나는 어떤 생각을 자주 하나요?”
“내가 가진 재능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내 기록이 나에게 대답해 줄 거라 믿는다.


요즘은 유튜브를 매일 찍으려고 한다.
아직 구독자는 한 명도 없지만, 그조차 나의 현실이니까 괜찮다.
영상 속에는 나의 표정과 분위기, 말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는다.
짧은 문장으로 담지 못하는 감정들이, 프레임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하나씩, 1,000개의 영상을 찍겠다고 다짐했다.
조회 수보다 중요한 건, 나의 흔적이 쌓이는 일이다.


너무 각 잡고 찍지 않으려 한다.
편하게 말하고, 웃고, 때로는 어색하게 멈추기도 한다.
그게 진짜 나니까.
영상을 찍다 보면 나의 표정, 나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걸 느낀다.
그 변화가 느리더라도, 결국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뉴스레터.
어제 블로그에 수요조사를 올렸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단 한 명만 있어도 시작하려 했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응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구글폼을 만들고, 콘셉트를 정리하고, 마감 문구까지 완성했다.
이제 홍보만 남았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더라도, 나는 스스로 두드릴 것이다.
두드린 만큼 세상은 열릴 테니까.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이유는, 그만큼의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내 전장으로 나가려 한다.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사람이라는 걸.


영상을 찍으며 깨닫는다.
나는 사실 나의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거창한 기획은 있을지 몰라도,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말하는 건 어색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을 쓰다 보면 그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짧은 시간, 짧은 글로는 나를 다 담을 수 없다는 걸 이제 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들여 기록한다.
조금은 느리고, 때로는 두서없지만, 그 안에 진짜 내가 있다.
기차 안에서 타이핑을 치며, 문장을 완성해 가는 지금 이 순간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올해 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달라졌다.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훨씬 나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수업을 잘 들으면 복습 시간이 줄어드는 것처럼,
현실에 집중하다 보면 걱정의 시간도 줄어든다.
결국 삶도 같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때, 그 순간이 나를 앞으로 데려다준다.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기록들이 언젠가 모여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꾸준히,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는 지금,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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