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되는 선서의 순간

SN 탄생의 순간

by IN삶

오늘 드디어 나선식이 끝났다.
2주 동안 준비하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지만, 막상 식을 치르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잔잔했다.
졸업한 지 시간이 꽤 지나서인지, 이런 자리 자체가 새로웠다.

그래서 학부모가 잘 오지 않는 행사임에도, 나는 엄마를 불렀다.
“졸업식은 안 와도 되는데, 이건 꼭 와줘.”
그렇게 말했었는데,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오셨다.


식이 시작되기 전, 뒤쪽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엄마를 보고
조금 떨리던 심장이 금방 진정되었다.
촛불의식과 선서를 마치고 돌아섰을 때,
엄마는 큰 꽃다발을 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학교 졸업식 이후 처음 받아본 꽃다발이었다.
그냥 꽃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건네준 ‘수고했어’라는 마음이었다.
그게 너무 커서, 그대로 눈물이 났다.

나는 친구가 없어
사진은 고작 다섯 장 정도 남겼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빨리 옷을 갈아입고 식장을 나왔다.
그게 그 순간의 나였다.
사람 속에서도, 결국 나는 나였다.

축사와 격려사를 들으며
‘간호사가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시험과 과제 속에 묻혀 잠시 잊고 있던 소명이라는 단어가
가슴 안쪽에서 다시 또렷하게 빛을 냈다.

그리고 우리가 외웠던 그 선서문.
그 문장을 입으로 내뱉는 순간,
나는 정말 이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말도 없이 무겁게 다가오니까.
그럼에도 나는 안다.
이 길은 분명히 찬란할 것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사랑받았고,
또 사랑을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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