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번째 선택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by IN삶




2019년 9월 26일, 자퇴원을 내고 난 후의 일입니다.


자퇴원을 내기 위해서, 자퇴를 하기 위해서 인생의 틀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목표는 아직까지 ‘의대’였기에(관심을 받고 싶음도 물론 있었지만,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아야 했으며, 수능을 봐야 했습니다.


자퇴 이후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에 응시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저는 자퇴를 하자마자 중학교 수준만 되어도 검정고시를 패스할 수 있겠다는 생각 하에 검정고시가 아닌 수능 공부를 준비했습니다.


관리형 독서실도 다녔고, 스터디카페를 전전하여 공부를 했습니다.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공부는 하지 않았고, 스터디 카페에 가서 공부하다가 자고, 자고, 먹고, 자고, 그리고 집에 와서는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자는 생활이 시작이었습니다.


트위터 안에서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러 곳에서 모은 정보들을 조합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재미있었기에 그 속에서 저는 저만의 세상을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여주기 식으로 앉아있기만 하고, 플래너에 색칠공부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 한 것이겠죠.


자퇴는 제 기억 속에 있는, 의지가 있는 인생 첫 번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을 지금은 후회하지만, 당시에는 몰랐었죠. 그 외에 학밖청(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딱히 더 이상 적을 게 없습니다.


저는 자퇴 후 1년 3개월 정도 동안 시교육청에서 6월 모의고사와 9월 모의고사 접수를 해서 모의고사도 보고, 2021학년도 수능을 보러 갔습니다.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보통 2-5등급 사이의 성적이 나왔음에도, ‘우상향 그래프’를 외치며 같은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의대를 왜 그렇게 쉽게 봤을까. 어쩌다 나온 2등급이 나의 성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요. 자만에 빠져서 현실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비교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동생들보다는 좋은 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켰을 뿐입니다. (집에서 눈치를 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 망상 중 하나입니다.)


함께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니 의욕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눈치 보지 않고 잘 수 있었고, 거짓을 말해도 진실을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이것들이 독재(독학재수)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사회부적응자인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친구도 없었고, 정보를 들을 곳이 아무 곳도 없어서, 수능 성적표가 나온 첫날, 유명한 인강 사이트인 M사에서 입시 배치표에 성적을 돌려보고, 저 멀리 지방에 있는 A대학교가 안정이라는 것을 보고 재수를 즉시 결심하게 됩니다.


(배치표는 입시 기간 내내, 그리고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 정확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원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도움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21학년도 수능이 평균 3.5-4 사이로 기억하는데,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잘 나온 수능 성적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정보와 인맥의 중요성을 그때,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좋은 교재들을 많이 사용한 것도 아니었지만, 공부를(과장 조금 더 보태서) 아예 하지 않았지만 그 정도 성적이 나왔음에 감사합니다.


다시 수능을 준비하면서도, 수능을 망하면 제 인생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 세상에 눈을 뜨지 않은 것이죠.


수능이 인생의 종점이 아닙니다. 시작도 아니고 이는 대학을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입시(정시)는 수능 성적이 나온 이후가 시작입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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