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회부적응자입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

by IN삶




2학년이 되어서도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흥미도 없었고, 학교를 자꾸 빼먹어 수업 진도도 다 따라가지 못하는, 선생님조차 포기하려 하는 어쩌면 겉멋만 든 문제아였을 것입니다. 타인에게 사랑과 관심을 구걸하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심지어는 싫어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의 입맛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칭찬받기 좋아하고,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사람들 눈치를 보고 점점 예민해지는, 저는 몸만 커버린, 한낱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저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 속에 몰아넣고 고 싶지 않아, 자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2학년이 되어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과가 가고 싶었던 저는(사실 사람들의 시선에 들기 위해서 의대를 가고 싶어 하긴 했습니다) 합반이라는 이유로 문과를 선택하여 그곳에 갔지만, 주어진 과목인(내가 타의로 인해 선택한) 문과 선택과목을 공부하는 것도 아니라 겉멋만 들어 담당 과목 선생님께


“저는 이과인데요? 수업 시간에 방해 안 할 테니까 자습하면 안 되나요?”


라는 발언을 하며, 문제집으로 자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주 다행히도 자율형 고등학교였기에,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으며, 그렇게 공부하지 않고 딴짓을 한 저는 시험을 풀 수도 없었고, 당연하게도 9등급은 항상 저의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수학만 잘하면, 과학만 잘하면, 내가 선택한 과목의 공부만 잘하면 의대에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대는 어떤 과목을 들이밀어도 다 가능한 친구들이 모인 곳이더군요. 전교 1등은 선택 과목이 아닌, 어떠한 수학 문제를 가져다줘도 ‘생각’을 하고 ‘추론’을 하여 문제를 풀어내었습니다.


그것을 몰랐던 저는, 사실 1학년 때부터 입으로만 공부한다고 했지, 실질적인 공부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없었고, 인생을 즐기지도 않았기에, 우울증에 빠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다, 결국 반사회적 집합체인 곳에 제 발로 들어가게 됩니다.


학교 공부가 아닌, ‘내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 공부를 하다 보니 다다른 것은 성에 눈을 일찍 뜨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도, 나쁜 길로 빠졌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고 참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을 팔지는 않았으며, 불법적인 부분에는 손대지 않았으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깨끗하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와 이론적인 공부, 그리고 당시 트위터라는 이름을 가졌던 X에서 활동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글만을 썼으며, 인간의 타락을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이 시간은 고등학교 자퇴 이후, 대학에 입학하고 짝꿍이 생기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각설하고, 2학년이 되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확연히 더 심해졌고, 이미 의대를 간다고 떠벌려 놓았기 때문에(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 뻔하지만)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내 인생은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매일 아프다 그러고 삶에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잔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나날들이 늘어났습니다. 하필 유대감이 가장 좋았던 엄마의 우울이라는 큰 고름이 터지며, 제게 그 잔해가 옮겨 붙게 됩니다. 집에서도 나를 반기지 않고, 학교에서도 나를 반기는 것 같지 않아 삶을 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저는, 대놓고 말합니다.


“나 학교도 싫고 집도 싫어. 둘 중에 하나는 놓게 해 줘. 집을 나가 살거나 학교를 때려치우거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역시 부모의 관심을 받고 싶었나라는 생각도 들어 참 측은해집니다. 엄마는 이틀정도 후에, 하고 싶으면 하라며 자퇴원에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학교에다 제출을 했고요.


그 이후의 일들이 가장 기억에 크게 남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크게 저의 의지가 들어갔던 일이기 때문 아닐까요.


자퇴원을 제출하고 난 후, 다음날인가 학교에 짐을 챙기러 갔습니다. 또 사람들의 관심을 수집하기 위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제가 좋아하던 선생님들을 찾아가 나 떠난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친구들에게도 인사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 종 치자마자 교실에 올라가서 짐을 싸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와서 절 불러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왜 지금 들어와 있냐며 교무실에서 혼이 나고 난 후에 집으로 귀가조치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같은 반 친구들과는 인사를 전혀 하지도 못한 채로 자퇴원을 제출하였고, 귀가조치 당하는 길에, 나를 가장 아껴 주셨던 체육선생님께서(아직도 연락을 하는 분이십니다) 눈물을 글썽이시며 나를 걱정해 주시며 1층까지 바래다주셨던 기억이 5년 후인 지금에도 가장 크게 남아있습니다.


그다음 주에 담임선생님(이었던)께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해 보는 것은 어떻냐라고 하셔서 날을 잡고 교장실에 가 내가 왜 자퇴를 하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며(겉멋) 학교의 문제는 이거다!!!! 를(아주 소극적이게) 말하고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체 왜 자퇴를 하고도 다시 학교에 돌아간 건지, (물론 관심이겠죠,)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하고 나오지 않았는지 등 의문감이 들지만, 교장선생님 덕분에 제가 많이 예민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비로소 1년 9개월이라는 저의 고등학교 시절은 끝이 났습니다. 아파서 쓰러지고, 119를 부르고, 엄마가 학교에 와서 절 업고 가고, 그런 일들이 수차례 발생했기 때문에, 저는 과거의 자신을 ‘민폐덩어리, 사회부적응자’라고 생각합니다.


방황을 다른 사람들처럼 책에 빠져있는 것과 같은 예쁜 길로 한 것도 아닙니다. 책 읽는 습관은 어릴 때부터 잡혀있어서 도서관을 자주 들리긴 했고, 책 냄새를 더 좋아했지만, 친구도 없고 놀 줄도 모르고, 물욕이나 욕망조차 없어 정말 나쁜 길로 빠지지도 않은, 그런 어중간한 방황이었습니다.


알바를 하는 것도, 집 밖에 나서는 것도 혼자 못 하던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창구인 핸드폰을 이용하여, 어둠 속에서 히키코모리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직도 전 저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하나씩 해 나가는 중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제겐 붕어빵 틀과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똑같은 것을 주입시키는 그런 틀이 있는 곳.


그러나 지금은 학교는 작은 사회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사고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며, 사회생활은 물론, 여러 가지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도파민에 절여져 있던 저이기에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치기어린 아이의 행동이었고, 약간 후회는 하지만 자퇴로 인해 나의 삶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자퇴라는 행위로 인해 배운 것이 조금은 있기에 삶을 찾은 원인이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제 글을 읽고 있는 고등학생 독자가 있다면, 저의 상황은 전혀 공감하지 못할지라도, 자퇴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자퇴를 한 후의 상황을 면밀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물론 본인 인생에 주체로서 선택하는 분들은 제 들을 읽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라, 사회 부적응자 학생이었기에, 2024년에 제가 이뤄낸 것들이 정말 놀랍습니다.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성장을 해냈으며,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 편의 이야기 동안 2년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현재까지 5년 정도의 이야기가 남았으며, 현재로 올수록 더 깨달음이 많아지고 기억나는 것들이 많아 세분화될 것입니다. 또한 중학생 때의 이야기와 미래의 이야기를 조금 더 넣으려고 큰 틀을 구상 중입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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