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입시이야기

by IN삶


대학을 안 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아빠도 고졸인데 대기업 취직해서 우리 다섯 식구 잘만 먹여 살린다. 그런데 나는 시선이 편협해서 멀리 보지를 못했다.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번듯한 곳 취직하는 줄 알았고, 의사가 되고자 하는 겉멋에 빠져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어쩌면 중졸로 내 커리어를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검정고시생, 자퇴생이기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 ‘자퇴생’이라고 하면 흔히 드는 편견 속에서 나를 바라봐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가고 싶어 했고,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




심지어 21학년도 수능은 2주 정도 시험이 밀려 12월에 수능을 봤었기에, 수능 성적표가 나오는 일정도, 입시 일정도 모조리 연기가 되고 급하게 무엇인가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일전에 말했듯 입시가 뭔지도 모르는 나는 그런 급박한 환경 속에서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수능 성적이 나온 당일, 재수를 결심하고, 하루도 쉬지 못한 채 다시 수험생 모드로 돌입했다.


과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이렇게 살았던 것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살면 되겠지. 1년 반 놀았는데도 이 등급이 나왔으니까 1년 진짜 ‘하면’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하고자 했으면 했어야지,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건 농땡이 피우느라 안 하는 성격이란 것을 몰랐다. ‘중학교 때 대충 공부해도 전교권 성적 나왔으니까.’라는 알량한 자기 합리화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어쩌면 미루면 안 되는 선까지 미뤄버렸다.


현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첫 수능을 그렇게 부르려고 한다-때에 한번 봤다는 이유만으로 더 나태해졌고, 무엇보다 21학년도 수능과 22학년도 수능은 큰 차이가 있었다. 수학이 가형/나형에서 미적분/확률과 통계/기하로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고, 국어도 선택과목이 생기고, 과탐 부분도 많은 부분이 개편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분석하지 않고, 역시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 이번에는 인강 하나로 스터디카페를 전전하면서 공부(라 부르고 농땡이피우기)를 했다.


매일 도시락을 싸 나르는 엄마를 봐서라도 나는 그렇게 행동했으면 안 된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독서실에서 엎어져 자다가, 문제집 조금 끄적거리고,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거나 웹툰을 보는 일이 허다했으며, 그렇게 밤늦게 집으로 갔다. (그래서 내가 지금은 웹툰도, 유튜브도, ott도, 인스타그램 릴스도 안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수험생이라는 자각은 있었는지, 모의고사는 보러 다녔고, 집중할 때는 했다. 단지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쉽고 재미있는 것(이미 아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2022학년도 수능 역시 21학년도 수능과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입시 공부를 엄마가 해 주었다. 엄마가 입시 사이트 O르B에도 가입해서 열심히 글도 읽었고, 정시 입시를 어떻게 하는지 설명회도 신청해서 나만 혼자 서울 가서 듣고 왔다.(역시나 가격이 너무 부담된 것은 사실이다)


22학년도 수능은, 나의 연년생 동생의 현역 수능이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수능 공부 안 하고 수시로 이미 대학을 갔던 상황이었고, 아마 최저만 맞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하튼 수시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합격 발표가 났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들어갔으며, 여러 학교에서 추가합격 연락을 받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내 동생이 참으로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뭔갈 하지도 않았는데 나랑 비슷한 성적을 내는 것 같았고, 혼자 공부를 해 입시를 치러내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항상 내가 모르는 부분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런 동생에게 자격지심을 느꼈는지, 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권, 지거국 기준으로 입시 설명을 들은 방법으로 입시 기간 내내 원서를 어떻게 쓸지 비교하고, 또 비교하여 원서를 접수했다. 가고 싶은 학교가 마땅히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상은 너무 높았고, 현실적으로 내가 받아 온 성적은 너무도 낮았기에, 당시 나의 목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서 시간을 벌자는 마인드였다.


그렇게 나는 원서 접수 직전까지 입시 기간을 내가 뭐라도 된 듯 양 거실에 배치표와 노트북 세 대를 돌려가며 별 볼 일 없는 수능 점수로 원서 접수를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외삼촌이 연말에 우리 집에 놀러 와 준비를 도와주었으니 말 다 했다.


그 설명회 하나와, 이번 수능이 개편되며 많은 반수생의 유입, 조금 어려워진 입시판을 믿고 나는 세 장의 카드를 모두 상향으로 던졌다. 심지어 두 개는 우주 상향으로 던져버렸다. 서울에 들어오지도 못할 성적이라서, 애초에 우리가 아는 SKY 서성한 ~ 라인까지는 살펴보지도 않았고, (사실 더 밑으로도 갈 수가 없긴 했다) 미적분과 생명과학과 지구과학을 독학한 터라 이과였지만 교차지원이 보다 유리하지 않을까 하여 교차지원으로 1월 3일(으로 기억한다), 나는 세 장의 원서를 쓴다.


대학에 붙을 것이라 기대도 안 하고 있고, 집에서도 나는 여전히 숙연하게, 죄인이 된 듯 살아가야 했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영어 회화를 공부하라는 엄마의 말에 무엇에 홀린 듯 영어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입시는 끝났을지 몰라도, 인생이라는 사회에 나가기 위한 첫 발을 내딛으려 준비하려는 셈이었다.


나에게 대학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는 4년의 시간을 주는 공간이었으며, 자퇴생이 아닌 또 다른 신분을 나에게 주는 곳, 다시 학교라는 공간으로 돌아가는 곳, 나의 20대 초반, 청춘을 불태울 곳이었다.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고 생각이 많아지겠지만, 결국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을… 하는 미련이 가장 크게 남을 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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