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하나 없이 서울권 22학번

두 번째, 어쩌면 첫 번째 입시의 결과

by IN삶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해 던진 원서는 합격자 발표 기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최초 합격자 발표가 나왔을 때 확인한 결과는 K대학은 30번 때의 대기번호를, D대학은 대기번호가 나오지도 않았으며, S대학은 대기번호 3번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능성이 가장 큰 S대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추합날도, 추추합 날도, 추추추합날도 2번으로 바뀌었을 뿐, 큰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학과에 대한 메리트보다는 일단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자, 학교를 다니다가 전과하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서울권 학교에 우선 집어넣었기 때문에 학과 통일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는 식품과 관련된 화학을 전공하는 과였던 것으로, 하나는 디자인을 하는 과, 하나는 관광을 전공하는 과로 원서를 넣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일이었던 1월 말이 지나고, 최종 합격자 발표일은 추가 합격자 번호를 더 이상 공개하지 않고 학교 측에서 지원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등록할 것인지를 묻는 절차인지라, 그때까지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종합격자 발표일은 학교마다 다르기에 한 학교씩 사라져 가다가 마지막 K대가 남은 시점에서, 마지막날, 오후 16:30경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저희 K대학교 입학천데요, 정시 전형 000 학생 맞으신가요? 합격하셨는데 혹시 등록하실 건가요?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하필 그 시간에 폰을 방에 두고 엄마가 끓이는 김치찌개 맛보러 갔다가 거기서 수다를 떠는 바람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 소식이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는 정말 생일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참 행복했지만, 먼저 전화를 받은 엄마는 딱히 반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 표정에서 상처를 받았다. 동생 합격증명서는 프린트해서 부엌 찬장에다 떡하니 붙여 둘 정도로 좋아하고 행복해서 눈물도 흘렸으면서, 나는 라무 반응을 해 주지 않은 것이 심지어 수고했다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서운했다. 어찌 보면 1년을 더 투자했기 때문에 대학을 갔어야 하고, 원서를 쓰는 데도 돈을 투자했기에 당연히 대학에 갔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마음을 졸였었는데, 나는 나름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온 그 결과였는데, 생각했던 만큼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 서운했던 것 같고, 마음의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논 것은 인정한다. 엄마의 그 표정을 보고 든 생각은 ‘공부한다고 나대지 말고 그냥 공부 안 한다 그러고 재미있게 놀걸’ 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무엇이 두려워서, 어떤 눈치를 봤기에 공부를 하는 척했으며 마음대로 인생을 살지 못했을까. 그렇게 3년 반을 억압하고 집 안에서만 지냈던 결과가 K대학밖에 되지 않는다니. 그래도 뭐, 나는 최선을 다했고, 문 닫고 들어간 것에 대해 만족했다.


최종합격자 발표가 금요일에 나고 동시에 학교 등록을 했다. 그다음 월요일이 수강신청 날이었으며, 소위 말하는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깔아 정보를 구하려 해도 재학생 인증이 되지 않아 글을 볼 수 없었으며, 주말 동안 어떤 사람의 도움 하나 없이 홈페이지를 뒤지고, 새내기게시판을 뒤져 수강신청 하는 법을 알아내고 혼자 수강신청을 마쳤다. 이미 학과 OT는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가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원하는 데로 행동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아직 내 세계에 갇혀있었다.


수강신청을 할 때에도 내가 대학생인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첫날 수강신청을 한 후, 기다리면 자리가 열린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기에 수강신청 1시간 후에도 계속 대기번호가 뜨자, 다른 과목으로 옮기며 시간표를 완성했다.


아무리 시간표를 맞춰보려 해도 월수금 공강에 9시부터 시작해 6시에 끝나는 미친 시간표, 중간 공강 3시간은 기본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우당탕탕 나의 학교생활은 시작하게 되었다.




집 바로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한 번에 학교 앞까지는 가지만, 1시간 30분, 출근 시간에는 2시간, 심지어는 광역버스기에 좌석이 없으면 태워 주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한 정거장 정도 뒤로 가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여유롭게 학교에 출근했다. 6시 40분 차를 타면, 학교에 8시 10분쯤 도착하고, 7시 차를 타면, 학교에 9시에 도착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2022년 초는 아직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수업은 대면을 했기에, 30분 OT 들으려 학교를 갔다가 1교시가 끝나고 7교시까지 공강이 생긴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나름 서울이었기에 서울 여러 곳도 돌아다니고 학교도 돌아다니고 그랬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처음 학교에 갔던 날, OT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앞에 있던 사람이 뒤를 돌아 말을 걸어주어 친해지게 되었다. 1년을 늦게 들어온 셈이니 친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 말을 걸어 준 친구가 동갑이라서 신이 나 학교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에 한 명 꼴로 친구를 넓혀가다가, 나는 결국 사고를 치게 된다.


학교 수업이 6시에 끝나면 서울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가 0석이 되어서 가 버린다. 그래서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 뒤로 가 거기에서 줄을 서 버스를 타고 오는 요령이 생길 지경이었다. 매일 그렇게 출퇴근을 하다 보니, 동아리나 학교 활동들은 하나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와 버렸다. 기숙사도 없어 참으로 고되게 버텼다.


여하튼 사고라는 것은, 1학기 첫 봄축제가 열리던 날, 나는 대학생 로망이었던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함께 즐길 친구들을 모으기로 했다. 이제껏 내가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들을 모으다 보니 중복 약속이 생겼고, 그러다가 그날 그냥 다 같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와, 축제날 뒤풀이를 20명 정도를 모으게 되었다. 앞서 말했지만, 동아리 소속도 아니며, 학생회 소속도 아니었기에 20명이라는 숫자는 참 놀라운 숫자였다.


참고로 나의 학과는 관광계열이었지만, 5개의 학과가 하나로 합쳐진 학부제로 당시에 변경되었기 때문에 동기가 300명 정도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20명이면 적은 수라고 생각되지만, 주변인들이 봤을 때는 참 대단한 숫자인 것 같았다.


그렇게 3월과 4월에 엄청난 에너지를 끌어다 사용하는 바람에 5월에는 약간의 번아웃이 왔었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꾸역꾸역 학교는 잘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짬짬이 학교 행사 같은 것도 참여해 5만 원, 10만 원씩 소소하게 장학금도 받았고, 과제도 열심히 하며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대학생다운 시간을 보냈다 생각한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 나름 관광하면 알아주는 학교였기에 기대하는 것도 많았지만, 1학년 1학기는 어느 학교나 다 그렇듯 교양 투성이 시간표에 전공이라고는 관광학개론 하나뿐인 시간표였다. 하지만 그 전공 수업을 접하면서 흥미 있는 것들이 많았고, 의외로 여기에 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느껴졌을 정도다.


미친 통학을 하며 주말에는 쉬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는 학교 동기들과 구글미트를 켜서 함께 밤도 새우고 참 다양한 경험을 했다. 매일 축축 처지는 나의 저질 체력 때문에 학교가 끝나고 동기들이랑 술을 마신 적도, 밤새 놀아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추억은 쌓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저질체력과 더불어 틈만 나면 아파했던 나의 과거 때문일까, 8시만 넘으면 어디냐고 전화가 오고 빨리 집에 들어오라는 연락이 쌓여갔다. (사실 6시에 학교 끝나서 8시에 집 가야 되면 한창 재미있는 시간이긴 했는데) 그렇게 수 번 엄마와 불화가 있었으며, 내가 생각했던 청춘을 즐기지 못한다는 그 반항심은 점점 커져만 갔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불화 사이에서 공강 시간을 참 알차게 이용했던 게, 3시간 공강동안 주위 회사 구내식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옆 학교 학생식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주위 서울 관광지도 걸어갔다 오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서울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매일 1교시에 수업을 배치해 둔 학교와, 통학을 하기 위해선 집에서 6시 30분에는 나가야 하는 나, 그리고 에너지와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 저질체력 인간인 나이기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기 스멀스멀 ‘서울에서 자취할 거 아니면 기숙사가 있는 큰 학교로 옮기자’라는 생각이 싹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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