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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 주 월요일

12월 2일

by IN삶


오늘은 기말고사가 있는 날이다. 그래서 조금 정신없긴 한데, 버스와 기차에선 시험공부를 하고, 전철에서는 글을 써 보기로 했다.


12월부터 ktx시간표가 조금 바뀌는 바람에 9호선 일반열차를 타고 갈 여유가 생겼다.


저번 주를 돌아보자면, 아주 추웠던 화요일에는 공강이 생겨서 친구들과 우동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원래 편의점을 털려고 했지만, 너무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그만, 배달을 시켜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 또한 추억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수요일은 눈이 아주 펑펑 오는 날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하얗게 변했었고, 룸메가 웬일로 집에 일찍 간다길래 방에 친구들을 불러서 코코아도 마시고 따뜻한 곳에서 인형 하나씩 껴안고 수다 떨다가 눈 구경하러도 갔다가 신나게 놀았던 하루였다.


조금 나태하게 산 것 같아서 수요일은 하루 종일 계획 잡고 로드맵 만들려고 했는데, 눈이 펑펑 내려서, 눈 처음 본 강아지처럼 미친 듯이 뛰어놀았다. 그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유럽 부럽지 않게 펑펑 내리던 눈이, 함께 있던 내 이야기들 잘 들어주고 조언을 아낌없이 하는 친구들이, 온도마저 너무 좋았기 때문이랄까.


그렇게 행복하게 지낸 후에 잠을 아주 깊게 잘 잔 것 같다. 개운하게 눈을 떴고, 하루가 상쾌했다. 그렇게 아주 상쾌한 목요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고 오랜만에 화장도 도도도독 하고 하얀 패딩을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고 하얀 눈밭으로 나갔다. 학교 강의실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그 발걸음은 학교에 입학하는 첫날과 같이 설렘이 가득했다.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행복만이 가득했다. 강의가 끝난 후, 또다시 룸메가 없는 빈 방에서-원래 다른 방 사람이 들어오면 벌점이지만 깨끗하게 사용하고 안 걸리면 그만 아니겠는가-어제의 그 친구들과 함께 모여 밥을 먹고,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수다를 재미나게 떨었다.


기차를 타러 갈 시간이 되었다. 이 시간이 너무 아쉬웠지만, 기차역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조차 무지갯빛 석양이 우릴 비추었다. 찬란한 나의 인생,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너무 즐거워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해서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기차가 오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역사 내 화장실에 가서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하루 종일 행복함이 나를 뒤덮어서일까, 오랜만에 화장을 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화장실 조명이 정말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깨끗한 거울에 비친 날 보니, 사뭇 어색했다. 학교에서 자주 보이던, 구두를 신고, 머리를 틀어 올린 항공과 친구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를 한쪽으로 넘겨 하얀 패딩이 조금 더 세련되어 보였다. 그렇게 사진을 찍다 보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었기에, 저번주와 무엇이 다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번 주는 보다 많이 웃었다. 편안했고, 나로서 삶을 살았다. 12월 29일에 보기로 했던 TOEIC시험을 취소했기에 심리적 부담감이 조금 덜어졌으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눈과 함께라서 더욱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고, 금요일에는 외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외가친척 모두가 우리 집으로 모였다. 우리 외삼촌과 엄마가 이렇게 잘 지내는 것을 보면, 난 참 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외삼촌을 보고 배운 자란 내 동생들은 얼마나 좋은 삼촌이 되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즐겁게 모여 놀 정도면 각자의 배우자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내 동생들이 나름 잘 큰 것 같아서 뿌듯해졌다.


아마 이제야 나는 그들과의 독립성을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앞길을 닦아 놓아야 하는 게 아닌, 각자가 각자만의 길이 있고, 삶이 있으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한결 더 후련했으며, 사촌동생들이 오는 날은 육아는 내 전담으로 돌아간다. 각각 12년생과 15년생인 초등학생들이라 가끔은 말을 안 듣기도, 때를 쓰기도 하지만 그 조차 내가 성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나보다 따뜻한 고사리손들을 양손에 쥐고, 집 앞 다이소에 가서 각자 가지고 놀 것들 양손 가득-그래봤자 인당 5000원 씩이지만-쥐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을 한 아름 안겨 돌아오는 길이, 추웠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경험이었다.


원래 우리 집, 내 동생들은 주로 연애한다고 바쁘셔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 육아는 온전히 나의 담당이었지만, 이번에는 둘째가 여자친구에게 휴가를 받아 와 함께 해 주었다. 우리 180cm가 훌쩍 넘는 큰 동생도 다이소를 따라왔기에 메탈 퍼즐 양손에 쥐어 데리고 왔다.


할아버지 생신이어도, 매 번 오실 때마다 용돈을 주시기에-12년생과 나까지 차등지급이 아니라 동일한 금액이라는 사실이 놀랍지만-항상 나는 내가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무엇을 사 드릴 정도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학생이기에 양쪽 모두 부담일 것이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족과의 시간을 온전히 보내시도록, 떼쓰고 심심하다고 징징거리는 꼬마들을 내가 케어하는 것뿐이다.


안 잔다고 징징거려도 내가 들어가서 같이 누워서 토닥이다 보면 금세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나는 다시 슬그머니 나와 엄마와 숙모가 하는 이야기판의 청자가 된다. 그 속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많이 배우는 것도 있을뿐더러, 동생들이 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역으로 동생들에게 반면교사로 배우는 것들이 허다하다.


그렇게 금요일, 토요일과 일요일은 모든 외가 식구들이-우리 집 막내인 예비고삼을 뺀-코엑스에 다녀왔다. 10명이 이동해야 하는 거라 차보다는 전철을 이용했지만, 할머니의 무릎 이슈로 인하여 오래 걷지 못하고 금세 다시 돌아와야 했다. 별마당 도서관을 갔다가 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사자리를 찾다 결국 kfc에 가 햄버거를 먹었지만, 그 조차 즐거웠다. 근처 봉은사도 다녀오고, 별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계획 없이 우왕좌왕하다 집으로 돌아와도, 추억을 하나 쌓았다는 자체가, 너무 좋았다.


일요일에 손님들을 모두 보낸 후, 12월 1일을 일로써 만끽했다. 일도 하고, 당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포터즈 미션도 하고, 책도 읽었다.


정말 따뜻하고 알찬 한 주였기에, 열심히 사는 이유가 이런 것이지 싶었다. 할아버지 케이크를 사 드리고, 동생들 붕어빵을 쥐어줄 수 있는 그 낙.


오늘도 학생의 본분을 다하러 가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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