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이번 주는 학교를 안 가는 주다. 저번 주 목요일에는 개교기념일이라고 학교도 안 가서 월요일에 갔다가 수요일에 집에 왔다. 그리고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다음 주까지 집에 있는다. 보강 기간인데 학교가 셔틀버스를 없애버려서 학교를 못 가는 상황이라 교수들이 전부 온라인 강의로 돌린 것이다.
여하튼, 학교에서 별다를 일은 없었다. 그리고 5일에는 오랜만에 친구랑 건대에서 놀았다. 건대는 처음 갔던 곳이지만,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던 그녀에게는 많이 익숙한 곳이었기에, 밤늦게까지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재미있게 놀았다. 친구와 둘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아쉽게도 금요일 오전 일찍 내가 일을 해야 해서 11시쯤 파했지만, 금요일 역시 일을 하고, 영화를 보고, 하루를 즐긴 것 같다. 다다음주가 시험 기간인데 아직도 정신 안 차린 건지 원. 하기 싫음 반, 미래의 나를 믿는 것 반이다.
그리고 7일에는 일만 하고, 8일에는 엄마가 종강한다고 시험 치러 가는 거 아침 일찍 따라갔다가 여의도 더현대 가서 구경하고 왔다. 낮 12시 전에 1만보를 넘게 걸어 다닌 미친 기록을 세우고, 집에 와서 늘어지게 잠만 잤던 기억이 난다.
저번 주는 매일 재미있게 살다가 나태하게도 살았던 것 같다. 시험이 7일 남은 시점에서,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앞에 해부학 책이 있지만, 글은 써야 하니까 쓰고 있는 중이다.
저번 주에 깨달은 가장 큰 것을 하나 적어두고 오늘은 그만 마무리해 보려 한다.
얼마 전에 봤던 유튜브 댓글을 캡처해 둔 것은, “일어난 어떤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이다.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생각들은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걱정’, ‘과한 생각’ 이거다.
심지어 그게 내 인생에 하등 도움 되는 것이 아니다. 1-2등급도 아닌데 입시 설명회 다니는 꼴과 비슷하다. 행복이 뭐냐니, 사랑이 뭐냐니 하는 것들이다. 나는 이렇게 내 인생을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기 때문에 나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지만, 이것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지 아는 사람인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
왜.
불안하고 두렵다. 내가 무너지면 아무도 날 안 봐줄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관심에 목마를까. 왜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사람들 눈치만 보는, (쓸데없는 곳에선 눈치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부끄러울 지경이지만, 고치지 않는다. 그냥 하면 되는데. 그냥 책상에 앉으면 되고, 그냥 신발 신고 나가면 되는데, 부딪히지 않는다. 두렵다. 이렇게 살다 간 뭐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하는데. 강제성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약속은 지키려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약속이라는 것조차 지키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ST가 되고 싶은데, 절대 안 되려나.) 이성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방안은 일단 하나씩 해 보면 된다. 시험 기간이니, 사용 가능한 시간을 남기고, 시험공부를 하나씩 해 나가면 되고, 알람을 맞춰놓고 알람이 울리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올해 초, 새롭게 만나게 된 많은 분들이 나에게 그랬다. “IN삶님은 실행력이 엄청나신 분이에요.”
개뿔. (아 그분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약간의 반항이었고, 살기 싫어 도피한 곳이었을 뿐이고, 내가 잘하는 언어유희로 그럴싸하게 나를 가스라이팅 했을 뿐이다. (그 가스라이팅에 넘어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좋아라 했으니 나는 두 번 당한 셈이다.)
그저 그뿐이다.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이 했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 말이 나를 화나게 하지만, 나는 그 분노를 나에게 붙인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어떨 때는 해결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포기해 버린다. 내가 증오하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나를 엄청나게 성장시킨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수긍해 버린다. (지조 없는 여성일세.)
내가 하고 싶은 데로 그냥 하면 되는데, 선뜻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두렵다. 내가 이것을 해도 되는지. 그리고 귀찮고, 하기 싫고, 재미없다. 인생이 재미가 없다.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면서 방탕하게 살 자신도 없다. 방탕하게 살아봤다는 사람이 오히려 부러울 따름이다. 적어도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니까. 나는 왜.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냥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질문이 떠오르면 메모장에나 끄적여 글을 쓰고, 잠시 묵혀뒀다가 뭔갈 이루고 나서 다시 살펴보자. 나는 당장 오늘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나, 내가 해야만 하는 일 하나, 내가 하기 싫은 일 하나. 이 세 개를 매일 해 보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찾는다는 의미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작업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일 수도 있고, 내가 하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일일 수도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사회에게 도태되지 않게, 스스로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려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는 동시에 자유를 주는 행위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짐과 동시에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참을성과 일단 하자는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한 장치이다.
이 밖에도 찾고자 하면 많을 것이다. 세분화하여 나눌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루틴이 잡히지 않을까. 하나씩 만들어놓고 쌓아나가다 보면, 한심하고 별 볼 일 없던 나 자신이 뭔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