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을 사는 아이들
2024년 회고록을 블로그에 적은 후, 3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어 조금 자고 4시 45분쯤 일어났다. 숙모는 부엌에 있었고, 삼촌은 아직 자고 있었다.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앉아서 숙모랑 이야기하면서 김밥 싸는 것을 구경했다. 어젯밤에 사 온 삼각김밥 하나와 바나나우유로는 만족을 못한 것일까.
숙모가 싸 준 김밥 두 줄을 손에 쥐고 5시쯤 차에 타고 출발했다. 삼촌과 인생의 교훈과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5시 40분에 인천공항 1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방을 끌고 가다 보니 바퀴가 고장 난 것을 알게 되었고, 가방을 벽 구석에 붙여둔 뒤 밖에 나가 카트를 끌고 다시 들어왔다. C정도에 있었는데, J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J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꽁꽁 싸맨 친구를 찾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주먹만 한 솜망울이 끝에 달려 있는 털실모자를 쓴 내 친구는 크리스마스 요정 같았다.
1주일 만에 본 것 치고는 잔뜩 신나 있는 우리 둘. 우선 짐을 부치고 일을 하나씩 처리하자고 생각했다. 셀프체크인이 되지 않아 카운터로 가 짐을 부치고, 표를 받은 뒤에 나는 삼 일 전쯤에 온라인으로 신청해 둔 유로화를 찾으러 갔다. 내가 환전을 하러 간 사이에 친구는 마일리지 적립번호를 알아내려 다시 카운터에 갔었는데, 성공했을지 모르겠다.
바코드를 보여주면 된다고 해서 바코드를 준비하고 기다렸었는데, 여권만 보여주니 금세 환전이 되었다. 200유로를 환전했었는데, 환전신청을 했을 때보다 훨씬 더 환율이 올라간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전소 근처 출국장 쪽으로는 4, 5, 6번 출입구만 오픈해 둔 상태였는데, 한 입구당 세 줄씩 아주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두 입구로 가는 승객들의 줄이 연결이 될 정도로 사람은 정말 많았다.
시스템이 바뀌어서 오래 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1시간 만에 면세장 안으로 들어왔다. 1 터미널에서 타는 것이 아니라 1 터미널과 연결된 외딴섬 같은 곳에서 우리의 비행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각각 하나씩 부쳤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8kg의 백팩이 존재했고, 너무 무거웠건 우리는 바로 탑승구 앞쪽으로 가 대기를 하기로 한다.
비행기 대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한국 인터넷 맛을 느끼고, 엄마와 삼촌에게 연락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짐을 다시 포장하니 보딩 시간이 되어 줄을 섰다. 비행기에 거의 타자마자 둘 다 기절했었는데, 탑승한 지 30분이 되자 밥을 줬다. 닭가슴살 샐러드에 파스타였는데, 파스타는 너무 전분맛이 강해 다 남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30분 정도 쉬니 상하이에 도착했다.
수속할 때 받은 스티커를 잘 보이는 것에 붙이고, 환승구를 찾아갔다. 뒤에서 한국어가 들릴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중국인 특일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99%는 중국어로 말을 한 뒤에 영어로 물어보면 짧게 답을 해 주는 식이었다. 그래서일까 더 반가웠었다.
그리고 또다시 무거운 짐을 들고, 짐 검사를 다시 받고 다시 바로 비행기 대기장으로 갔다. 가서 조금 출출한 것 같아 아침에 숙모가 싸준 김밥을 한 줄씩 나눠먹으며 소풍 온 기분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도 거의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공항 내 카트를 찾고 짐을 실은 후에 카트를 끌며 면세점 구경(이라기보다는 공항 구경)에 나섰다.
딱히 면세용품을 살 것도 아니었고, 커피를 마실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우와 정말 넓다~’ 라거나 ‘왜 그 흔한 스타벅스 하나 없지??’(그러고는 바로 찾았다) 그러면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편의점에 갔다가 ¥1=₩200 임을 알게 되었고, 포카리 스웨트를 비롯한 몇 음료는 한국과 비슷했지만 뽀로로 음료수는 13위안이었나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체 그 기준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장 조사만 하고 아무런 획득 없이 자리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막연히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늘 한국 시간으로 오후 1시에 성적이 나오는 날이었고, 우리는 아주 미약하게 터지는 공항 인터넷을 붙잡고 성적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원래 성적 확인하던 창에서 새로고침은 되지만 새로운 창에서의 검색은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에서의 유심은 따로 없어서 공항 와이파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 과목이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조교님께 문의를 드리다가 비행기를 타니 인터넷이 끊겨 연락을 취할 방도가 없었다. 조교님은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확인해 달라고 문의 넣은 학생이 해결도 안 하고 갑자기 사라진다면??! 예의 없는 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런던에 도착해 유심을 끼우고 나면 예약메시지로 한국 시간 09:00에 맞춰 카톡을 보내 놓으려고 한다. 1학기때에 비해 성적이 0.14점 상승했다. 특히 이번에는 전공 학점이 4.3 이상이 나와 확실히 나는 전공에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번에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 2학기 때는 시험기간에도 일을 하면서 전날 벼락치기를 중간기말 모두 했다.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 했던 1학기때와는 대비되게 중간과 기말 모두 공부를 하긴 했고, 확실히 안 했던 과목은 안 한 티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2학년때는 전공이 많아지고 과목이 많아져도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다짐. 그리고 일을 병행할 수 있겠다는 것, 수업을 잘 듣고 빼먹지만 않아도 4.5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이래저래 성장하고 있는 성적을 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 그 자신감으로 기분을 채우고 숙모가 싸주신 김밥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번 여행은 아마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보딩 시작 시간은 12:45이었고 출발 시간은 13:30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13:00 정도에 줄을 섰음에도 불구하고 게이트 오픈을 하지 않았었다. 20분 전에 게이트 닫는다고 되어 있었는데, 10분이 되어도 안내방송 하나 없어 의문을 가지며 무한정 대기하기 시작했다. 13:25경에 게이트가 드디어 오픈되었고, 우리는 203, 204번째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복도 쪽이어서 늦게 탑승해도 될 줄 알았는데, 기내용 수하물을 무지무지하게 실어 우리 머리 위 선반에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 뒤 뒤 선반에 짐을 넣어두어서 아마 나갈 때 민첩하게 움직여야 할 거다.
그렇게 이륙을 하는데, 내 의자만 뒤로 넘어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자가 고장이 난 것이다. 완전 서있거나, 완전 누워 버리거나. 가 사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말해서 무언가 조치를 취하진 않았지만 아주 다행히도 뒷자리는 어린아이가 앉아 의자를 눕혀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숙면을 취하는 도중,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밥을 주더라. 쌀밥에 간장으로 양념한 고기랑 감자조림, 반찬으로는 새우가 들어 있는 감자샐러드? 그리고 후식으로 멜론, 빵과 무가염 버터, 계피맛 쿠키 하나, 땅콩 한 봉지가 함께 나왔다. 나를 보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게 조금 띠용했었지만, 뭐 영어를 잘은 못하는 것 같아서 남은 밥(중간쯤에 앉아있어서 그거 메뉴 하나 남았던 것 같다)을 주는 대로 먹었다.
향신료가 조금 강해서 속이 울렁거렸지만, 친구는 거의 먹지 않았고, 나는 멜론과 땅콩을 제외한 완밥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아까 공항에서 먹었던 김밥이 너무나 소중했고 감사했다. 적재적소에 먹을 수 있어 참 좋았다.
밥을 먹고 난 후 잠을 푹 잘 심산으로 맥주를 요구했는데, 맥주 한 캔을 다 줘서 앞에 두고 이 글을 적으며 홀짝거리며 먹다가 앞사람이 의자를 젖히는 바람에 좌석 앞 주머니와 무릎에 덮고 있건 코트, 심지어 내 손까지 다 젖었다. 승무원을 불러 휴지를 요구하고 열심히 닦아 잘 말리는 중이다.
그렇게 맥주를 쏟고 더 이상 쏟으면 사고라는 생각에 한 입에 다 털어 마셨는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쏟은 맥주의 발효향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잔잔하게 흔들리는 기체에 의한 멀미 때문일까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어지러움을 견딜 수기 없어 화장실에 갔다. 위로 비우든 아래로 비우든 비워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우고 난 후에도 계속 메슥거려 얼음을 요청했다. 얼음을 한 컵 떨어 넣어 속을 진정시킨 후에야 나는 다시 잠에 들 수 있었고, 그렇게 잠을 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깼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친구와 눈이 마주쳐 이제는 일어나야 밤에 잠을 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밀리의 서재에 다운로드하여 둔 책을 몇 장 읽다 보니 글을 쓰고 싶어 메모장을 적고 미친 듯이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천자를 썼을 때 즈음 기내에 불이 켜졌다.
또 밥 먹는구나. 이번에는 중간부터 밥을 주어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치킨 뭐시기랑 랍스터 국수(파스타겠지)라고 해서 치킨을 먹었다. 닭볶음덮밥을 먹고 난 후, 찬으로 나온 고기 한 덩이를 집어먹고, 팥 향이 나는 차? 푸딩? 뭔지 모르겠는 무언가도 맛을 보고, 또다시 계피향 쿠키와 빵을-이번에는 두 조각 먹었다- 먹고 다시 불이 꺼졌다. 이번에는 밥에 향신료 향이 덜해 역함이 조금 덜했지만, 역시나 나는 완밥했다. 그리고 옆 라인의 앞에 앉은 분이 채식주의자였던 것 같다. 영어가 잘 안 되는 승무원 대신 뒷자리에 앉아있던 고객이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입이 터졌는지 옆에 앉은 다른 서양인에게 미친 듯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표현이 너무 재미있어서 적어본다.
“편식쟁이네~”
어쩜 채식주의자를 편식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역시 사고의 전환. 재미있다. 이래야 내 친구지.
만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고, 친해진지 겨우 6개월 조금 넘었을까? 그렇지만 벌써 두 번의 국내 여행을 가고 24일간의 해외여행을 함께 가는 중이다. 이 친구와 나는 사정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그래도 이해해 주고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이 느껴지는 친구다. 오빠 둘 있는 막내딸이라 그럴지는 몰라도, 남동생 둘 있는 첫째인 나로서는 항상 색다른 자극이 된다. 이번 여행에서 싸우지 않고 잘 다녀오기를, 그리고 나를 더 찾을 수 있고 이 순간만은 나의 동반자인 친구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추억을 하나 더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아마 좀 전의 그 메슥거림은 향신료 때문인 것 같은 게, 지금 또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 이 친구의 반응이 너무 웃겼다.
“그거 고산병이야~ 이 나약한 자식”
“아닠ㅋㅋㅋ산이 아니잖아요”
“아까 약사님이 뭐라 그랬어, 3000m 이상은 약을 먹어야 한댔잖아~ 그리고 지금 어딘가 산 위에 있을걸?”
그리고 우리 둘은 열심히 지금 우리의 고도를 찾아보았다.
’ 10365m’
“에이~ 고산병 걸릴 만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로가 장난인 걸 알기에 웃고 넘길 수 있었다.
이 순간 하나도 추억이 될 수 있기에 열심히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대충 3시간 반 뒤면 런던에 도착한다. 숙소에 도착하게 되면 아마 런던 시간으로 19:30 즈음 예상한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05:00에 집에서 출발해 지금 한국 시간은 00:10 경이니 거의 19시간을 하늘에서 보낸 것과 다름없다. 24시간 만에 보는 침대라니. 참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정리되자 나는 뒤로 가 내 짐을 빼서 발 밑에다 놓았다. 나갈 때 동선을 고려한 위치였고, 지금 다리가 띵띵 부은 기분이 들어 발을 어디에 올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지구를 거꾸로 도는 중이라 하루가 아닌 1.5일이 되는 중이라서 조금 나눠서 올려야 할 것 같다. 호흡이 너무 길면 나도 다음날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읽는 사람도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월 30일은 1-1, 1-2로 구분할 것이다. 한국-비행기에서의 이야기가 1-1, 런던에서의 이야기가 1-2. 아직 비행기에서의 여정이 끝나지 않아 어디까지 적힐지는 모르겠으나, 제목도 미정이기에 계속 적어보겠다. 비행기 안에서 할 게 없어서 뭘 들고 오긴 했지만 의외로 조명이 너무 밝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으니 글을 읽고 쓰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오히려 좋아.
중국인이 마냥 시끄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중국인은 내가 알던 그 중국인이 아닌 기분이 든다. 물론 런던으로 여행까지 갈 정도면 그만한 교양과 돈이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승무원도 그렇고 영어를 잘 못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힘들지만 적어도 요구하면 해 주려고 하고 무뚝뚝하게 생기신 승무원도 요구한 것을 해결해 주시면서 밝게 웃는 것을 보니 역시 인상이 다가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중국어가 나긋나긋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와 나는 복도를 사이에 끼우고 양쪽에 앉아 여행을 하는 중인데, 내 옆에는 중국인이 앉아있다. 이 분 역시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친절하신 분 같다. 의외로 나는 편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작은 문화충격을 받을 때마다 신선함을 느끼고 나의 세상은 좁았음을 느낀다.
내가 활자와 매체로 배우던 세상과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세상을 맞서는 데 두려워할 이유는 없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 외에는 경계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고 체험해 보는 것이니 이게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