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EAR’S EVE
자다가 잠에서 두 번을 깼다. 5:45 즈음이었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침대에서 내려와 가방으로 가 약을 꺼내 하나를 털어먹고 다시 기어올라왔다. 9시에 나가기로 해서 8시쯤 일어나야 할 테지만 약 기운이 돌면서 통증을 조금 완화시킬 때까지는 어제 기절해 버려서 차마 적지 못했던 일기를 마저 적는 중이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일정이 시작되는 날이라 설렘도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지금 시작된 이 두통을 어떻게 잠재울까 가 가장 큰 미션이다. -까지 적고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8시쯤 알람을 듣고 깼다. 일어나서 시리얼에 유유를 부어 두 번 먹고, 빵에 딸기잼과 누텔라를 발라 먹었다. 누텔라는 처음 먹는 거였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아침을 먹고 첫날이라고 화장도 나름 꼼꼼하게 하고 집 밖을 나갔다.
지도를 켜고 열심히 걸어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구경하고, 빅벤과 런던아이를 구경했다. 정말 웅장하고 건물 사이 간격도 넓어 정말 신비로움을 느꼈다. 저 조각 하나하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저 높이 어떻게 건물을 올렸을까 궁금함이 많이 남았다. 성당을 구경하러 갔는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도공간이 정말 많았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성당을 가기 전에 가게에도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를 구경도 하고 길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하늘색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가기에 저게 현지인이구나~ 를 생각하는 도중 말을 거셔서 꽤나 놀랐었다. 갑자기 나와 친구의 머플러를 칭찬해 줬다. 중간에 영어를 할 줄 아냐며 다시 묻고는 우리를 보니까 본인도 따뜻해진다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스몰톡도 하시고 갔다.
런던에서의 첫 스몰톡은 참 감회가 새로웠다. 어찌 따지면 인종차별을 하고자 했으면 말조차 걸지 않았을 텐데, 그 밖에도 많은 분들이 말을 걸어주시고 왼쪽으로 걸어야 한다며 조언도 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참 따뜻함을 느꼈고,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Happy new year은, 나눔의 따뜻함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나의 하루를 즐겁게 만들었고, 먼저 나서서 다른 사람에게 Happy new year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밖으로 나와 식사를 하러 갔는데, 첫 영국에서의 식사인 만큼 많이 찾아봤던 것 같다. ENGLISH ROSE CAFE라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11:40분쯤 도착해 아침은 먹을 수 없었다. 아침이 11:30까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냥 12시까지 기다려 런치 메뉴를 먹었었는데, 샌드위치와 핫초코였다. BRIE & CRANBERRY SANDWICH와 CHRISTMAS CLUB SANDWICH를 각각 하나씩 시키고, 핫초코를 두 잔 시켰다. 치즈가 약간 비렸지만 의외로 괜찮았고, 베이컨은 조금 짰다. 그래도 함께 나옴 감자튀김까지 금상첨화였으며, 점심으로는 딱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근위병이 돌아다니는 모습도 봤고, 3층에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임을 실감 나게 했다. 아마 청와대랑 비슷한 공간이지 않을까. 철창만 해도 내 키 세 배는 족히 되어 보였고, 궁전 앞의 광장은 최근에 관심 있게 보던 백작과 공작이 나오는 판타지 웹툰을 떠올리게 했다. 저게 다 진짜 금일까 싶을 정도로 번쩍거렸고, 아름다웠다. 분수대와 광장에서 사진을 와다닥 찍었다.
사진도 열심히 찍고 내셔널 갤러리 쪽으로 갔다. 가는데 보이는 붉은 풍등들, 차이나타운임을 느꼈다. 내일 우리의 일정이었기에 다시 와서 구경하자고 다짐하고, 내셔널 갤러리 앞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먼발치에서 스윽 구경하고 무료입장이어서 줄을 서 있다가 들어갔는데, 액체류가 반입이 안된다고 해서 가지고 있건 물을 전부 배속으로 털어 넣었다. 가방 검사까지 의외로 꼼꼼하게 해, 작품 테러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의외로 정말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반고흐와 모네의 그림을 찾을 수 있었다. 좌우로 나뉘는데, 그림을 꼼꼼히 보는 나로서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고, 본인이 아는 작품이 아니면 흥미가 없는 내 친구와는 조금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미술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영상을 보고 있는데, 한국이 새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하였기에 알림이 잘 울지 않아 나의 핸드폰이 조용한 것 같았지만, 지상으로 나와도 조용하기에 나는 그저 인간관계가 몇 없는 사람임을 다시금 느꼈다.
각설하고, 25년에는 더 성장하면 되겠지. 그리고 많은 사람보다는 나를 기억해 주는 몇몇 사람들에게 감사하려고 한다. 화장실도 다녀왔다가-화장실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가 갈 수 있을 때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해가 다 져버렸다. 3시가 겨우 넘은 시간으로 기억한다. 초저녁 날씨였고, 영국은 해가 정말 빨리 진다는 사실 또한 발견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가방을 검사했고, 가방 속에 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급속도로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새해 전야제라고 무슨 행사를 하는지 사람들이 많았고, 관리인 같은 분들이 사람들을 착석시키고 있었다.
예배드릴 게 아니니 빠르게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 역시 웅장했다. 하얀 외벽이 병원 같았지만, 어떻게 보자면 성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주욱 이동하여 런던브리지를 건너 강 남쪽으로 갔다. 그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으리으리한 성당과 박물관을 본 후, 강변을 따라 걸어가려는데 정수기 같은 것이 보였다. 아리수 느낌일까. 약간의 시음을 한 후, 텅 비었던 내 물병 안으로 생명수를 집어넣어 한 병을 다 마셨다. 그렇게 우리는 강을 따라 내려가는 도중, 점점 길이 막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바리케이드가 쳐져있었으며, 경찰과 형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있었다. 특히 북쪽으로 넘어가려 할 때마다 우리는 장애를 겪였는데, 결국 돌고 돌아 몇 번의 다리에 가서 실패를 겪은 후, 숙소로 가는 가장 서쪽의 다리가 열려 있는지 경찰에게 물어봤다. 열려있다는 답이 돌아왔고, 우리는 그 다리를 가기 위해 또 비잉 돌아 다리에 도착했다.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리 위에 서 있었고, 통제구역 쪽에서는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만이 입장을 해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런던아이의 세로뷰였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폭죽은 보지 못했다. 7시 반쯤 다리에 도착했기에, 우리는 거진 5시간 정도를 다리 위에서 기다렸다. 그냥 갤러리까지 1만 8 천보를, 그 이후에 약 1만 8 천보 정도를 걸었으니, 대충 4 만보정도 걸었기에 발에서는 불이 날 듯 힘들었고, 지쳤다. 11 시에 점심으로 샌드위치 하나 먹은 게 마지막 식사여서, 춥고 지치고 행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리 위에서 졸고, 인터넷도 되지 않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다운로드해둔 책도 읽고, 가방에서 장바구니를 꺼내 무릎을 덮어 추위를 방어하기도 했다. 11시 반쯤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고, 우리의 자리가 점점 위협받는 것이 느껴져 서서 30분을 버티니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뒤쪽에서는 인도에서 온 듯한 분들이 시끄럽게 술을 마시며 우리를 밀며 비집고 들어왔지만, 버텼다. 자리를 사수했다. 빅벤 쪽에서 터질 줄 알았지만 런던아이 쪽에서 터져 멋진 뷰는 보지 못했고, 기대했던 카운트다운 역시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스태프 분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늘 스톰이 오고 있어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행사가 취소가 될 뻔했다고 했고, 다른 곳에서는 이미 취소가 되었다고 했다. 버틴 것만큼 멋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해를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그렇게 20여분 간 폭죽을 터트리는 것을 본 후, 사진 찍는 외국인들 사이로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빠져나가 숙소로 향했다. 5시간 찬바람을 맞아 많이 지쳤고 힘들고 추웠다. 숙소로 가는 길에도 가족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 연인과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보였다. 지나가다가 Happy new year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또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먼저 스몰톡을 하고 싶었지만, 경계심이 너무 강한 친구가 있기에 자제했다. 하지만 이제는 옆에 있는 친구가 이상한 애로 볼지라도, 나는 그런 사람이기에, 이제는 하고 싶으면 그냥 해 보려고 한다.
속소로 돌아와 이미 자정이 넘어 버렸기에 씻지도 못한 채로 양치만 간단히 한 후 침대로 들어갔다. 이불속에서 얼어있는 몸을 녹였고, 보조배터리의 충전 중의 발열로 이불속을 덥히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