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 장학생 이야기 1
나는 간호학생이다. 지방대 간호 학생이며, 나이는 이미 졸업을 해야 하는 나이지만 염치없게도 평균에 수렴할 것 같은 수능 성적으로 대학을 한 번 갈아치우며 의료계에 발을 딛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방 간호 대학까지 왔다. 수시를 쓸 수가 없는 몸이라, 정시로 올인했고, 마지막 수능에서 3장을 모두 간호를 쓰고, 두 군데가 붙었지만 나의 등록 기준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느냐’였다. 그 등록 기준을 1학년때는 후회했지만, 지금은 여기도 나름 괜찮겠거니 하며 다니는 중이다.
나이 차가 무색하게도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 아주 평온하게 나의 탬포대로 성적장학금을 받아 가며 교우관계도 썩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 나이에 아직도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죄송스러워 작년부터 알바를 병행하며 기숙사비는 내가 내고, 용돈 외 나머지 부분은 내가 벌어서 살고 있는 중이다.
이제 앞으로 할 이야기는 ‘공중보건 장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아무리 정보를 찾아보려 해도 비판하는 글뿐이거나,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정보뿐이거나, 유튜브에서는 단 한 명만이, 몇 년 전 영상을 올린 게 다였을 뿐이다. 내가 이번에 밀고 나간 것은,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외계층과의 격차를 줄이겠다’였고, 이는 공공간호뿐만 아니라 대학생활, 사회생활에서도 정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기록 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 번 자세히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사실 시작은 크지 않았다. 학기 초에 교수님께서 ‘몇 년 전에 너희 선배 중에 하나가 인천 쪽에 혼자 찾아보고 지원해서 합격했고, 장학금 받고 학교 다니다가 졸업해서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선배는 성적이 애매하기도 했고, 한창 그때 구직이 거의 없던 시기여서 아주 좋은 기회였다고 하셨다.
나는 사실 아주 몹쓸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장학금이 탐이 나기도 했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고, 막상 졸업하자마자 공백 없이 의료원에서 경력을 쌓은 후에 해외로 대학원을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보건복지부 공고를 기다렸고, 새로고침을 수없이 했고, 결국 그 생각이 잊혀 갈 때 즈음, 학과 카페에 공고가 올라왔다. 물론 그 공문은 인천지역 대상이었기 때문에 나는 즉시 보건복지부로 들어가, 내가 필요한 공분을 찾았고, 발견했다. 그러나 서류 제출 기간은 마감일 이틀 전이었고, 나는 허겁지겁 자료를 준비한 뒤, 학과사무실로 가서 조교님께 말씀드렸다.
“저 이거 지원하고 싶은데 공문 좀 써주세요.”
그날, 조교님과 함께 있던 교수님이
”너 제대로 알고 온 거 맞아? 3학년만 신청할 수 있는 거 아냐? “
라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보건복지부에서 공고 나온 거 확인하고 지원하려는 거고, 지원 자격은 1학년부터 가능한 걸로 압니다.”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조교님도 그 공지는 못 보신 건지, 알 필요가 없던 건진 모르겠으나 카페에 올라와 있던 공문과는 달랐기에 그분의 의무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학과장님께 직접 메일을 보내 추천서를 받고, 준비를 한 뒤에 학과사무실에 제출을 했다. 굳이 프린트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조교님이 해오래서 해 갔고, 내 피 같은 복사비를 조금 날렸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자소서를 적고, 학과장님께 추천서를 받아 제출하고, 여러 서류들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붙으면 좋은 거고, 떨어지면 하나의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소서를 적을 때, 학창 시절의 내용을 적는 게 있었다.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의 동아리 경험을 적어야 하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한창 그때 슬럼프였고, 심지어는 학교를 2학년부터는 다니지도 않았어서 적을 내용이 마땅히 없어서 당황했다. 당연히 누구나 고등학교 생활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윗분들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일 년이라도 다닌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헤집어 나의 이야기에 피가 될 것을 만들어 1번 항목을 적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기에, 괜찮았다.
그렇게 얼렁뚱땅 과사에서 공문을 보낸 것을 확인한 후, (심지어 그렇게 급하게 한 것이 학교에 제출하는 날짜였지, 도청에 제출하는 날짜는 아니었다.) 나는 편하게 중간고사를 볼 수 있었고, 일찍 제출한 만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