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3년간 장학금으로 매 학기마다 큰돈이 들어온다. 물론 의무복무 역시 3년이기에, 대학병원처럼 높은 금액은 아니더라도 3년 동안 받을 연봉 지금 조금씩 받는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새삼스럽지만 장학생으로 신청을 할 때의 이야기다. 한창 그때 연락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되리라는 보장이 없어서 무념무상으로 있었지만, 장학생을 신청했다는 나의 말 한마디에 장학금 받으면 자기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을 사라고 하는 그의 말이 기분 나쁘게 다가왔다.
물론 그는 내가 잘 되었음에 하는 말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장학생 되는 데 네가 보태 준 것 있냐’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고, 배달비 아까워 배달 음식도 잘 시켜 먹지 않는 나기에 패밀리 레스토랑은 생각하지도 못한 옵션이었기에 기분이 더 좋지 않았을 수 있다. 차라리 “오~ 되면 밥 한 끼 사”정도만 했더라면 내가 기분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을 것 같다.
심지어 나에게는 중요하게 느껴지는 중간고사 기간에, 알레르기와 생리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불러내던 것도, 오히려 나를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거절해도 된다는 것을. 내가 지치고 힘들면 확실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말에 서운해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는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내가 맞춰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여자로서, 친구로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거지, 엄마로서 관계를 이루고 싶지는 않다. 맞춰 가는 것도 적당해야지 나를 갈아 넣으며 맞출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내가 한 번 샀으니 네가 한 번 사라는 마인드는, 본인이 하고 싶은 곳에 나를 데려 가 나를 지갑처럼 사용한다는 말처럼 느껴진다. 상당히 ‘쪼잔하게’ 느껴진다. 나의 상식으로서는 본인이 불러냈으면 메인은 사는 것이 맞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상의 없이는 본인이 지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산다고 했다면 적당한 수준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지나친 지출이 있었다면 자기가 일부 보태는 것도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보다는 말 한마디로 관계를 박살 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말 한마디로 정말 부서질 관계였다면 건강하지 않았던 관계였을 수도 있다. 서로 간절하지 않았거나.
그 이후에 받았던 나를 좋아한다, 나랑 만나자 하던 그의 고백은, 낭만이 없었기에 거절했을까.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를 소중히 대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기에 거절했을까. 나는 애써 보다 성숙한 사람이 좋다고 했고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두 사람을 놓고 저울질 한 내가 천하의 몹쓸 인간이지만, 애초에 저울질할 것도 못된다는 것을 첫 만남 이후에 깨달아버려 나는 이 관계를 ‘친구’로 정의하려 했지만, 그의 고백이 그 관계조차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나의 거절 이후에 기회를 달라는 말보다 만나면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 왜 그렇게 가슴 아팠을까.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눈앞에 놓인 이 사람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여유가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보여서 안쓰러웠다.
그의 모든 행동들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순수함이 드러났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부담되었다. 좋아하지만 표현이 나와는 다른 방식인,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 그래서 조금은 두려웠을 수도 있다. 나와 한 번 자려고 만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웠다. 그러나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내게 배울 점이 많아서라면, 나는 널 좋아하는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보다 자세히 알았다면, 어쩌면 나는 네가 나의 이상형 리스트를 봤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다 파악하길 원했었다. 그걸 놓쳤더라면 만나면서 나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길 원했다.
술을 못 마시는 것을 알면서 술을 강요하거나 술을 많이 마시며 나보고 밥값을 내라고 하면 안 되었다. 같이 용돈을 받는 입장이고, 나는 알바를 하는 것을 알면 그 돈을 더 허투루 쓰자고 하면 안 되었다. 하루에 인당 7-8만 원을 사용하고 매주 만나자고 하는 것이 내겐 부담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경제관념이 맞지 않았었다. 어쩌면 나보다 어리지만 일을 하지 않고 나보다 돈이 더 많은 네가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경제관념이 맞지 않았다는 것으로 하려고 한다. 나는 이기주의적이니까.
이미 끝난 관계, 이로써 마무리하려 한다.
미안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