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동물이 되었다
(작년 5월에 써놓은 글을 발행한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들은 기우(杞憂)로 변모한다. 과거의 실수와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낼 때도 많다. 이를 회상하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하고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회상은 반추(反芻)로 진화한다. 누렇고 끈적한 위액이 잔뜩 엉켜있는 좋지 않은 기억들을 연약한 식도로 끄집어낸다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반추동물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 익숙해지지 않더라. 그렇게 발병한 역류성 식도염은 비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와 고통을 주었다.
이 고통을 잘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 게 러닝이다. 러닝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지만, 문득 고통스러운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아프지 않다. 뭐랄까 현자가 되어 제 3자의 입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정확히 정면에서 목도(目睹)하는 기분이랄까. 마치 윤두서의 자화상처럼.
러닝으로 얻은 가장 큰 것은 내 추한 모습, 어설픈 모습, 힘든 모습. 이 것들을 고통 없이 보는 방법을 알았다는 것이다.
너무 추워져서 안 뛴지 한참 되었다. 다시 이 글들을 발행하려고 보니 뛰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너무 추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이키 런 앱을 보니 지금까지 350km를 뛰었다. 집 앞 초등학교가 180m 정도 되니 1900바퀴를 뛴 거다. 이게 수련이지. 올해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