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완주

까지 거의 다 왔다

by 유민재

오늘 숨도 못 쉴 정도로 바빴다. 아침에 신발을 신고 나가면서 대행사 카톡, 출근길 내내 연락, 회사 도착 후 업무만 계속.


그러다 오후 3시쯤 되었나, 창문을 열어두었는지 어디서 바람과 함께 묘한 향기가 났다. 봄즈음 내가 느끼는 새 학기의 향기고, 이 향기를 맡으면 떨리다 못해 몸서리쳐진다.


그럴 때면 항상 창문이 열린 중학교 교실에 바람이 훅들어와 커튼이 날리는 장면과, 캠퍼스에 잔디와 벚꽃이 떠오른다.


그때가 그리운 건지, 아련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숨도 못 쉬다가 몸서리를 한 번 치니 막혔던 게 뚫리는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더라.


그런데 이상하지. 서울로 오고 나서는 여름이랑 비를 기다린다. 비가 처마에서 떨어질 때. 우드드우드드 우산을 뜯듯이 빗방울이 쏟아질 때. 그럴 때 나는 겨우 숨을 쉬어. 여기도 별다른 곳이 아니구나, 여기도 비 오는 곳이구나, 여기도 별 수 없구나 생각하는 거지.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안도감인지 다른 사람들은 알까?

김금희, 《첫 여름, 완주》, 무제, 2025.


이 몸서리 처지는 향기를 맡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내가 살았던 경상도다. 그때의 기억이 노스탤지어처럼 스쳐간다. 이 기억을 오래 붙잡고 있고 싶지만, 부르르부르르 몸서리를 치면 모두 날아간다. 달리기 결승선을 넘을 때처럼 찰나다.


그래도 안도감이 든다. 이 별 수 없는 곳에서, 이 감정을 또 느꼈구나. 올 겨울도 무사히 완주했구나 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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