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오랜만에 정신과에 다녀왔다. 원래 다니던 곳이 선생님이랑도 잘 맞고 좋았는데, 너무 멀어서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아 이번에는 집 근처에 있는 곳으로 다녀왔다. 월요일 아침 10시 30분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소파에 사람이 가득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세상에 힘든 사람이 참 많구나 싶다.
초진이라 간단한 설문조사를 해야 하는데 스트레스 검사도 같이 받을 건지 물어보셨다. 비급여라 2만 원정도 한다고 해서 순간 궁금한 마음에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5분 정도 태블릿으로 간단한 설문을 하고 나서 기다리니 어떤 방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들어가니 작은 기계가 하나 있었고 의자에 앉으니 커다란 집게를 양쪽 손목과 오른쪽 발목에 끼워주셨다. 이렇게 5분 정도 움직이지 말고 말도 하면 안 된다고 해 명상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으니 검사는 끝났다. 이런 걸로 내 상태를 볼 수 있는지 스트레스라는 게 수치로 나오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대기 인원이 많아 2~3명의 사람이 진료를 받고 나서야 내 차례가 왔고 자리에 앉아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말씀드렸다.
“작년에 처음으로 양극성 장애 2형 진단을 받고 약을 먹었는데요. 괜찮아지는 것 같아 약을 먹지는 않았는데 요즘에 또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그런데 찾아보니 성인 ADHD랑 조울증이 비슷한 것 같은데 저는 ADHD 검사는 따로 하지는 않아서 왜 힘든지 정확하게 원인을 알고 고치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사례를 추가로 물어보셨고 사실 지금 내 상태를 봤을 때는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아까 진행한 스트레스 검사 결과를 보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질은 골고루 발달이 되어 있어 좋은 편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불안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고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했다. 뭘 해도 재밌지 않고 그냥 그저 그런 상태 같다며 하긴 하는데 에너지가 너무 없는 상태라 차로 따지면 연비가 안 좋은 차라 하셨다. 분명히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한데 복잡하게 얽혀있어 뭐라고 규정짓기 어렵다며 미간을 찌푸리시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 생활기록부를 떼 와서 다시 상담을 진행해보자고 하셨고 약은 처방받지 않고 돌아오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연비가 좋지 않은 차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요즘 딱히 행복한 일도 그렇다고 불행한 일도 없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가끔 힘들면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방법에 대해 검색해보고 찾아보면서 심각한 것 같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게 있었고 스스로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요즘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가 않다. 세상 만사 모든 게 귀찮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걸 누구한테 말하기엔 창피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아침에 일어나 씻고 출근하는 평범한 일상이 내게는 너무 힘들었다. 집에 오면 정말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는 날들도 많았다. 남들에게 못한다는 말도 못해서 눈앞에 있는 일은 어떻게든 잘 해내려고 아등바등 거리면서 했고 그러다 에너지가 다 고갈된 상태로 누워있으면 자책하기만 했다.
‘요즘 현대인이라면 다들 힘들고 지치는데 너만 유별나게 왜 그래’
‘세상에 나만 힘든가? 너무 엄살 부리지 마’
‘이것도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뭘 할 수 있어’
내가 이런 상태라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미디어에 비치는 책 속에서 읽은 위대한 사람처럼 나도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꾸역꾸역 살았다. 퇴사해도 얼마 안 가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하고 새로운 일을 찾고 그러다 다시 에너지가 바닥 끝까지 고갈되면 죽을 것 같아서 방으로 도망쳤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100을 넣어 200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 100을 넣으면 20밖에 나오지 않아 1000을 넣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연비가 좋지 않은 차라는 말을 들었을 때 위로가 되었다.
‘항상 남들만큼 못한다고 자책했는데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로 달리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건 내 일기니까 솔직하게 지금의 상태를 적어보자면 사는게 너무 귀찮다.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발전하고 성장해가야 하는 것도 지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언제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세상이 삶이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달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