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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앤디처럼 Sep 29. 2021

가장 오래 머무는 기억을 담아드립니다

Graygraphy

분명 내 모습인데, 생각보다 멋지게 나온 사진을 보니, 사진 욕심이 생겼다. 다른 사진작가에게 찍으면 또 다르게 나올까? 기왕 찍는 거 정말 잘 찍는 곳에서 찍어보고 싶어서 스튜디오만 계속 검색했다. '프로필 사진'이란 검색어로 검색되는 스튜디오들은 제각각의 개성이 있었지만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인지 확신이 없었다. 연주회를 준비하는 연주자의 프로필 사진, 모델이나 배우 지망생의 프로필 사진, 또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사진, 온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대다수였다. 난 연주자도, 배우 지망생도 아니고 신혼부부나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말 멋진 사진들이 많았지만, 반대로 너무 멋지고 화려해 보여서 내가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도 될지 상상이 안됐다. 


가장 오래 머무는 기억을 담아드립니다!


스튜디오 소개 문구가 이번에도 인상적이었다. 예쁘고 멋진 모델들 사진도 있었지만, 커플 또는 일반인들, 반려견과 함께 찍은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여기라면 나도 찍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예약일에 찾아간 강남 주택가의 빌라 지하에 위치한 스튜디오로 찾아갔다. 계단을 내려서 지하 스튜 디올로 들어간 순간 갑자기 2층 높이의 높은 천장이 나타나면서 공간이 확 넓어졌다. 분명 일반인 사진도 많아서, 좀 더 편안한 동네 사진관 같은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이곳은 전문 모델들이 사진 찍는 전문 스튜디오였다. 동네 사진관과 다른 압도적인 분위기에 기죽으며 걱정부터 앞섰다. 여기서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될까? 그렇게 긴장된 내게, 스튜디오의 서비스는 더욱 기를 죽였다. 안내받아 들어간 대기실 공간에서부터, 카페처럼 음료를 고르고 촬영 전 설문부터 시작했다. 원하는 사진의 취향, 왼쪽과 오른쪽 얼굴 중 선호하는 얼굴, 따뜻한 톤과 차가운 톤중 선호하는 사진 색감과 배경 등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서 긴장감은 더했다. 사진 한번 찍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울까? 결국 대다수 설문에 '상관없음'을 체크하거나 '작가 추천'을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앤디님 준비되셨으면 찍으러 가실까요?


손발이 동시에 나갈것철럼 긴장한 상태로 호라이존에 섰다. 앞에 미소 가득한 실장님이란 사진작가님이 준비 중이셨는데, 멍하게 쳐다보며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테스팅 몇 컷 찍어보고,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하는데, 몇 컷이 찍히는 동안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지난번 깅지니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때는 포즈를 잡아주셨는데, 아무런 가이드 없이 카메라 앞에 서니까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사진은 계속 찍히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웃어보실까요? 왼쪽으로 돌아보실래요? 오른쪽이요? 사진 많이 찍어보셨어요? 오늘 이거 찍고 점심은 뭐 드실 거예요?


갑자기 점심메뉴? 얼어붙은 날 녹이려고 작가님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직업이나 취미도 물어보고, 생활도 물어보고 본인 이야기도 해주시면서 대화하다 작가님과 형 동생 하기로 해버렸다. 그렇게 분위기가 풀리니가 내 표정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나 보다. 나중에 촬영된 사진을 확인해보니까, 작가님과 대화하며 찍은 마지막 무렵 사진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는 방법이 뭘까? 예전에 본 신문기사 중, 와인 3잔의 실험이 있었다. 한 사진작가가 와인을 한잔 마시고 사진 찍고, 두 잔 마시고 사진 찍어보고, 그렇게 한잔씩 와인을 마실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비교한 실험이었다.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 것도 정말 재미있는데, 그 실험의 결과는 와인 3잔을 마셨을 때 표정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결론이 났다. 와인은 안 마셨지만 작가님의 대화 덕분에 조금 좋아졌달까? 다음엔 와인 3잔을 마셔보고 사진을 찍어볼까? 


두 번째로 찍은 프로필 사진이 내 눈앞에서 보정되는 것을 보면서 신기했다. 화보를 찍으시겠다면서 정말 모델처럼 포즈와 표정을 잡아냈던 깅지니 작가님과는 다르게, 전 힘찬 작가님은 자연스러운 포즈와 편안한 표정을 찾아내서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보는 사람마다 나를 다르게 보는구나. 난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가장 많이 보이고 있을까? 사진 보정하면서 내게는 이런 표정이 좋다고, 더 많이 웃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시는데, 정작 나는 사진 속 웃는 내 모습이 어색하고 마음에 안 들었다. 웃지 못해서 억지로 웃는 느낌이었으니까. 언제쯤이면 좀 마음 놓고 편하게 웃을 수 있을까? 


아까 보니까, 사진 촬영 옵션에 연간회원권이라고 있던데요,  그건 뭐예요?


1년 동안 약속된 컷을 주기적으로 찍는 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그래이 그라피 스튜디오의 촬영상품이란다. 진짜 1년 동안 계속 사진을 찍어보면, 1년 후 사진 속에서 내 모습은 좀 더 활짝 웃고 있을까? 카메라 앞에서 그 정도로 강심장이 되면, 주변 사람들 소리도 무시하고, 자존감도 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저 그거 할게요! 연간회원권


일단 질러봤다. 뭐가 돼도 되지 않을까?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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