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먼저 배우세요. 그래야 오래 일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치는 것과 다르게 학원에서 일하려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별하는 방법! 이별에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사범대 4학년 교생실습을 나갔습니다. 한 달 교생실습 마지막 날, 칠판 가득 쓰인 메시지와 카드, 선물과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교생실습을 마무리했습니다. 카드에 쓰인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란 글을 보며 혼자 뿌듯하고, 짠하기도 했습니다. 꼭 이 아이들을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졸업 후, 임용 준비하며 근무했던 중학교 3년 동안 3번의 담임을 맡았습니다. 학교에서 매년 2월이 되면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고, 3월이 되면 새로운 제자들과 인사했습니다.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복도에서 오다가다 작년 제자를 만날 수 있었고, 5월 스승의 날이면 졸업시킨 녀석들이 매해 꼬박꼬박 찾아왔습니다. 용돈 아껴서 카네이션과 병 음료 한 박스를 가지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교무실에 들어오던 녀석들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그 후로 13년, 마지막 담임을 맡았던 중3 녀석들은 이제 징그럽게, 청첩장을 들고 찾아옵니다. 아이들과의 인연이 그렇게 계속되었습니다. 2월은 이별하는 시간이었고,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태영아! 기철이 오늘 왜 같이 안 왔어?"
"샘! 기철이 오늘부터 최고 학원 다닌데요."
학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언제 이별할지 모릅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2월은 없습니다. 어제까지 웃으며 봤던 아이가 오늘부터 갑자기 안 나올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 또는 문자 한 통으로 안 온다고 알려주기라도 하면, 감사한 일이죠. 대다수의 아이들과는 예상치 못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이유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연결되지 않는 전화와, 답 없는 문자에 그냥 이별 인가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버려진 유기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듯, 아이를 기다리다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보고 싶을 거라고, 새로운 곳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라고! 카톡창에 읽었다는 숫자'1'은 사라지고 답이 없으면 그런 날은 술도 못 마시면서 술 생각이 나는 날입니다.
SKY 학원으로 옮겨요! 거기 레벨이 잘 나왔어요.
동네 잘 나가는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며 자랑하듯 마하는 아이나 어머님 말에 멋쩍게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게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공부하기 싫다는 녀석, 기껏 붙잡고 가르쳐서 성적 올려줬습니다. 엄마도 좋아했고, 아이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성적이 올라 다른 학원으로 가버렸습니다. 막을 수도 없고, 보내줄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씁쓸합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그렇게 공들여 끼고 가르쳤지만, 남 좋은 일 시킨 기분이죠. 이제 공부 좀 할 만하게 변화시켰더니, 날름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녀석 성적 올라가는 거 보는 맛에 수업이 재미있었는데, 이제 난 어제 엄마랑 싸우며 억지로 학원에 등록한 아이와 전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 못 마시는 술이 생각만 납니다.
학원에서 이별은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옵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도 몇 년을 고생했던 내가, 지금은 준비 없는 이별만 가득한 학원에서 일합니다. 매일 결석하는 아이들 명단을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긴장합니다. 학원에서는 선생님이 먼저 이별을 통보할 일도 없습니다. 늘 이별 통보만 받게 됩니다. 받으면 다행이고, 연락 없이 이별당하기도 합니다. 학원에서 일하려면, 이런 준비 없는 이별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별당했지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을 받고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 서비스라서, 오고 가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알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정 붙였던 아이와 마지막 인사조차 못하는 이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까요?
시절 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습니다. 불교 용어라서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말은 들어봤을 겁니다. 그 말도 이 시절 인연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과의 법칙과 인연을 말하는 이 용어는 모든 만남은 때가 되어야 만난다고 합니다. 모든 인연이 평생 갈 수 없으며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고 말합니다.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늘 새로운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기를 바랍니다. 학생이 많으면 학원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학생이 떠나가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헤어짐에 익숙해지려면, 만남만큼 헤어짐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이 떠난다고 해서, 학원에서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원장님이 그 학생에게 거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와 인연은 거기까지일 뿐입니다. 좋은 인연이라면? 또 만날 날이 오겠죠. 실제로 그만두었다가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시고, 자괴감에 빠지지 마세요. 자신감을 잃으실 것도 없습니다.
당장 오늘 하루는 슬퍼하셔도 됩니다. 배신당한 것 같은 맘이라면 그냥 속상한 맘에 맥주 한 캔 하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러고 훌훌 털어버리세요. 그 학생과의 이별 후에도 여러분은 학원에서 계속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돌아보세요.
무엇을 돌아봐야 할까요? 한 명의 학생이 떠났다고 거부당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신 겁니다. 떠나간 한 명의 아이보다, 아직도 나를 선택하고 내게 가르침을 배우는 더 많은 아이들이 나를 기다립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선택될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인데, 왜 스스로를 문제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의 가치를 스스로 돌아보고 챙겨주세요. 여러분은 지나간 이별을 극복하고, 스스로와 남은 학생을 사랑할 권리와 자격이 있습니다. 학생과의 이별은, 사실 시간 날 때 잘 생각해 보면 예측 가능한 사건들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문제가 있어서 삐걱거렸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 학생과의 이별은 여러분의 부족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고민했고 고통받았던 무거운 짐을 내려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미처 다 베풀지 못한 사랑이 있다면 지금 함께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베풀어주세요. 그 학생들과 열렬히 사랑하시면 됩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학생에게 온전하게 사랑으로 베풀고 집중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랑도 온전한 나를 찾았을 때 가능합니다. 학원에선 학생과 미치도록 사랑하세요. 하지만 학원 밖에서는 여러분 자신을 먼저 사랑해 주세요. 가족도 챙기고, 반려동물과의 사랑, 취미생활, 운동도 챙기며 자신을 먼저 사랑하세요. 내 컨디션이 좋을 때, 아이들에게도 미소 지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나를 더 사랑하세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수업 시간엔 아이들을 사랑해 주시면 됩니다.
예측 불가능한 이별을 겪다 보면, 감정에 무감각 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오히려 더 아이들을 사랑하세요. 언제가 끝일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지금 이 순간 열렬하게 사랑하시면 됩니다. 아끼지 마세요. 이별을 슬프고 비극으로 바라보지 않고, 나를 돌아보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이벤트로 받아들이실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성공한 학원 선생님이 되실 겁니다. 여러분은 교실에서 계속 아이들을 만날 거예요. 수업은 계속됩니다. 세상이 늘 돌아가듯이요. 그러니 학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예측하지 못한 이별로 예측하지 못할 만큼 성장하는 법을 배우세요.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