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다르게 살아요.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방학'입니다. 다른 회사와 다른 이 '방학'이란 시간이 주는 만족감은 정말 커요. 학교에서 근무했던 3년 기간 동안, 방학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이었습니다. 충분히 쉬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질 때쯤 개학이 왔어요. 그렇게 또 한 학기를 열심히 달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칼퇴였어요. 일반 회사에 비해서 교사는 일찍 퇴근이 가능했으니까요. 중학교에서 근무했던 저는 늦어도 5시면 교문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녁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임용시험까지 통과했다면, 학교란 곳은 일하기에 밀당이 잘 되는 곳이었습니다. 야근에 밤을 새워서 근무하는 친구들을 보면,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또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선생님이란 직업은 워라밸이 정말 환성적인 직업이었습니다.
똑같은 선생님이지만 학원에서 일한다면요? 학기 중에는 그냥 바쁩니다. 특히 시험 기간에 엄청 바빴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 전에는 미친 듯이 바쁘지만, 정작 시험이 있는 기간에는 수업도 오전 수업만 해서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원은 정 반대예요. 시험 전에도 바쁘고, 시험기간에는 미친 듯이 바빠집니다. 한 학교가 시험이 끝나면, 또 다른 학교가 시험이 시작되니까요. 시험이 끝나면? 바로 시험지를 분석해야 하고, 다음 시험 준비해야 합니다. 방학이 다가오면 한가해질까요? 방학은 특강으로 더 바쁩니다. 정규 수업 이외에 수업을 더 해야 합니다. 출근시간은 빨라지고, 퇴근시간은 더 늦어집니다. 학원 선생님의 생활은 1년 내내,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의 연속입니다. 학교 선생님처럼 방학기간에 쉬거나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은 없어요. 학원도 여름방학이 있기는 합니다. 극성수기인 7월 말 또는 8월 첫째 주에 3일에서 4일 정도예요. 그때 가야, 휴가 때문에 빠진 아이들 보강을 덜 할 수 있으니까요. 휴가는 언제나 가장 비싸고, 가장 사람 많을 때 갑니다. 제 꿈이 유럽여행을 가보는 겁니다. 학원을 은퇴하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늦잠은 잘 수 있습니다. 자녀 학교 보내느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분이 아니라면 충분히 늦잠 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늦게 퇴근합니다. 퇴근 후에 모이는 친구들 술자리나 모임은, 학원 근무 10여 년 동안 가본 적이 3번 정도입니다. 10시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 모임에 가면 이미 끝나가는 분위기예요. 친구들 결혼식도 많이 못 갔습니다. 결혼을 많이 하는 날이나 달은 날씨도 참 좋지만, 그맘 때는 늘 아이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1점이라도 올리려고 주말에도 학원에서 아이들과 보강합니다. 늘 축의금과 미안한 마음만 친구 편에 보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다들 가정을 꾸리고 바빠지면서 친구도 많이 못 봤습니다. 퇴근 후 삶?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글쎄요. 학원 선생님에게 퇴근 후 삶이란 없습니다. 퇴근 후 치맥, 또는 퇴근 후 영화 한 편, 퇴근 후 데이트는 평범한 일상이 아닙니다. 학교와 비교하면 학원 선생님의 워라밸은 형편없습니다. 그런데 왜 학원에서 일하냐고요?
그래도 가르치는 직업이 좋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지만, 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으니까, 학원에서 이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구들을 만나면, 언젠가부터 대화 주제는 취업과 결혼에서, 자녀교육과 집 장만으로 변해갔습니다. 어릴 적 팽이치기하던 그 친구들과 요새는 어느 회사 탈모제와 샴푸가 효과가 좋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퇴직 후 삶도 이야기합니다. 다들 걱정은 많지만, 뚜렷한 대책은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이런 주제들은 우리나라 대다수 40대 50대 직장인이라면 고민하기 시작하는 주제입니다. 누구 말처럼, 결국 모든 사람은 치킨집으로 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기업에 입사했던 친구도, 하던 일을 퇴사 후에 계속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 이야기를 옆에서 가만히 듣다 보면, 나이를 먹을수록 경력이 인정되고 자녀를 키우는 일이 경력단절이 아니라 스펙이 될 수 있으며, 늘 아이들에게서 젊음의 열정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직업인 선생님이 저는 좋습니다. 선생님은 와인처럼 성숙해져 가는 직업이니까요.
그러나 정말 성숙하려면, 정말 오래 하려면 포기해야 할 것들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저만 특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럴 뿐이에요. 유난 떨 필요도 없고, 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예요. 그냥 제 상황에 맞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일하기로 생각하는 분이라면, 남과 조금 다른 학원 선생님의 라이프 사이클에 잘 맞는 분위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퇴근 후의 삶, 저녁 있는 삶은 포기하세요. 대신에 여러분은 '아침 있는 삶'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있는 빵집은 늘 사람 많죠? 이런 곳들은 평일에도 사람이 꽤 많아요. 퇴근 후 시간이라 하면요. 당신이 학원 선생님이라면? 평일 오픈하는 시간에 가서 즐겨보세요. 그 복작복작했던 공간을 운이 좋으면 오롯이 혼자서 즐길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 메뉴를 점심에 시켜 먹는 게 아니라, 진짜 브런치 시간에 먹을 수 있는 특권도 당신에게 있습니다. 미술관도 즐겨보세요. 평일 10시나 11시면 오픈되는 미술관에 가보시면, 조용한 공간에서 충분히 감상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요? 조조 타임은 티켓값도 싸고, 사람도 없어요. 원하는 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전에 운동도 즐겨보세요. 자기 계발에 열정적인 직장인들이 다니는 새벽 타임 말고, 여유 있게 일어나 9시나 10시 타임 운동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사람이 적으니까 코치들도 제게 집중 잘해줍니다. 대다수 식장에서 점심은 '점심특선'이란 메뉴로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직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12시보다 딱 30분만 먼저 가보시 면요.
바쁘다 바빠를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 조금은 캐주얼한 옷을 입고 조금 느리게 즐기는 출근 전 삶! 이 삶을 누릴 줄 알아야, 당신은 한 원 맨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회사에서 에너지를 쓰고, 퇴근 후에 충전하려 가지만, 여러분은 출근 전에 충전하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쓰고 보니 학원에서 일하는 것이 참 멋지게 보이네요. 제가 이렇게 멋진 직업을 가지고, 충분히 삶을 즐기며 살고 있는지 미처 몰랐구나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출근 전 삶이 지나고 학원에 도착하는 순간! 아시죠? 오늘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