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정체성 찾기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법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by 인생 비전공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집착을 접어두기로 했다.


인문학의 핵심 질문 중 하나,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수많은 책과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한다는 은근한 압박 속에 살아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려야만 비로소 완전한 어른이 되고,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왔다. 남들은 다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몰라 헤매고 있다는 사실은 늘 마음 한구석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허지원 교수님의 칼럼은 내가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이 당연하고도 무거운 숙제를 단숨에 내려놓게 해주었다. 특히 우울할 때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지 말라는 조언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고 현실이 버거울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라는 자책으로 대개 끝이 나곤 했다. 내 세상의 중심에 나를 너무 꼿꼿하게 세워둔 나머지, 나의 슬픔과 불행, 그리고 당면한 어려움에만 과도하게 돋보기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아를 찾겠다는 명목하에, 나의 우울에 깊이 빠져 주변을 경시했던 자의식 과잉 상태였던 것 같다.


물론 삶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자아를 탐구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질문 자체를 영영 외면하는 것은 삶을 잘 살고 싶은 사람에겐 바보같은 행동이다. 다만 내가 버려야할 것은, 마음이 무너져내렸을 때 습관적으로 던지던 형식적이고 자책이 섞인 물음이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슬픔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억지스러운 자아 찾기는 이제 과감히 버려두기로 했다.


대신,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그 기나긴 여정을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보기로 했다. 정체성이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간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것이니 말이다. 억지로 마침표를 직어 나라는 사람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가두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충분히 건강해졌을 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다채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며 "아, 나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하고 미소 짓는 삶. 그것이 내가 새롭게 써 내려갈, 덜 완벽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자아 찾기의 방식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정답을 찾아 헤매느라 오늘을 놓치고 있다면, 결함 있고 평범한 오늘의 나를 그냥 껴안아주자. 우리는 굳이 정답을 내리지 않아도, 정답이 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잘 걸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허지원 교수님 칼럼 : 자의식 과잉은 아닌가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0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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