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사람이 더 어려웠던 시간들
회사에 다니다 보면 팀장 한 두 명쯤은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팀장이라는 자리는 같아도 사람은 모두 다르다.
자기 계발에만 관심 있는 팀장, 권력에 심취한 팀장, 기분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는 팀장 등등
내가 버텨온 시간은 일보다 사람이 더 버거웠던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만났던, 나를 힘들게 했던 팀장들을 한 번 정리해 봤다.
#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돼?"
내가 있는 팀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이슈가 터지는 전쟁터였다.
문제 파악 능력과 해결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인원은 늘 부족해서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일이 당연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은 관심이 없었다.
팀에서 어떤 업무들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팀장의 무능력을 알고 있던 팀원들은 그냥 스스로 판단하고 업무를 해나가고 있었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위기가 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해결되지 않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팀장을 찾아갔다.
나 : 팀장님, 문제가 있어서 A, B, C로 해봤는데 어렵습니다. 다른 방안이 있을까 싶어 보고 드립니다.
팀장 :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돼?
팀장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일이 수 차례 반복됐다.
결국 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움직여야 했고 그 무게는 점점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 '어떤 색깔이 더 예뻐?'
업력이 오래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1990년대 감성이 짙게 남아 있는 회사였다.
업무 내용이 무엇이든 보고해야 하는 내용은 무조건 자료화해야 했다.
자료 작성 서식도 정해져 있었다.
표 디자인, 폰트, 빨간색 사용 금지, 기호 사용까지 규정이 있었다.
간단한 자료는 서식에 맞추기 어렵지 않았지만, 내용이 많아지면 이야기가 달렸다.
정보를 보기 쉽게 구성하려다 보면 서식을 조금씩 벗어나게 되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호출
팀장 : 다람씨, 서식이 다 잘못됐는데? 옆에 의자 갖고 와서 앉아봐.
팀장 : 다람씨, 표 굵기가 다르잖아. 이 색깔도 아닌데.. 어떤 색깔이 더 예뻐?
(그렇게 색상 팔레트를 하나하나 클릭하며 말한다. 이건 너무 칙칙한데, 이건 너무 튄다)
자료의 핵심 내용은 보지도 않은 채, 디자인만 가지고 한 시간을 넘게 붙잡고 있었다.
자료는 마치 인테리어 소품처럼 다뤄졌다.
수정은 혼자 해도 될 텐데, 꼭 옆에 앉혀놓고 깊이 한다.
(알고 보니 보고자료 서식 규정은 그냥 팀장 혼자 만들어 가장 만만한 나에게 시킨 것)
근무시간 절반은 자료 디자인 수정하는데 보냈다. 난 디자이너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 '내가 맞아!!!'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의 회사에 입사했다.
젊은 연령대의 직원들이 많아 활기가 느껴졌고, 그간 해오던 업무라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 기대는 며칠 가지 못 했다.
가장 큰 변수는 팀장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기분에 따라 의사결정도 바뀌었다.
처음에 A 방향으로 지시를 내렸다가 진행 상황을 보고하면 '왜 A로 했냐 B로 해야지'
그래서 B로 바꿔서 보고하면 '왜 B야? A로 했어야지' "또 내 말을 이해 못 했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일주일이면 끝날 업무가 한 달이 되기 부지기수.
그러니 쓸데없이 업무가 많아졌다.
그래도 처음엔 믿고 의견을 드렸다.
나 : 팀장님, 이 부분은 이런 이유로 이렇게 진행해 보는 건 어떨까요?
팀장 : 이건 안 되는데? 그럼 이건? 저건? 아휴, 그냥 알아서 해봐
결국 내 감정만 상하게 되어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게 됐다.
다음엔 다른 방법을 써봤다.
어차피 지시는 곧 바뀔 테니, 진행을 최대한 미뤄봤다.
팀장 : 다람씨, 그 업무 어떻게 되고 있어?
나 : 아직 마무리는 안 됐어요. 지난번 말씀처럼 A로 진행하겠습니다.
팀장 : 일이 왜 이렇게 늦어. 이러면 본인 신뢰도 떨어지는 거 몰라?
계속 이러면 난 더 이상 일 안 줘.
더는 참을 수 없어 그간의 어려움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팀장 : 다람씨가 잘못이해했어. 내가 말한 워딩은 그게 아니야.
아 또 잘못이해했네. 이젠 이해했어?
이것들의 무한 반복...
그러다 보니 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보람을 느끼기 위해 출근했지만 정작 '일'은 할 수 없었다.
월급은 들어왔지만, 자기 효능감은 바닥을 쳤고 자존감도 서서히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난 최악의 상사 밑에서 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퇴사를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결국 나를 힘들게 한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고 결국 '퇴사'는 선택이 아닌 '생존'이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런 팀장 아래서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나처럼 '떠나는 용기'가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