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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산 Jan 05. 2020

토익은 장사다

종로에서 토익 강의를 한다는 건 1.01

Money Bag, emojipedia.org

1백6십6만 7천7백4십 원.


2009년 6월 2일에 받은, 5월 한 달 동안 토익 강의를 해서 번 내 월급이다. 96만 원이었던 그 전달에 비하면 약 70% 상승했지만, 유수연 선생님처럼 통장에 월 1억씩 들어오지는 않았다. 


토익강사로 반년을 살아보니 이 장사, 시기와 계절에 굉장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토익은 장사다. 너무너무 장사다. 나는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 5년이 걸렸다. 토익도 교육이라고 믿고 싶었다. 수많은 장사꾼과 사기꾼, 싸움꾼, 과대광고, 허위광고, 사기, 비열하고 치졸한 경쟁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토익강사도 교육자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매달 급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실과 수강생 하나하나가 내 월급이라는 진실 앞에서 "선생님" 마인드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2009년 7월을 앞두고 학원이 분주해졌다. 토익 성수기인 7, 8월, 대학생들의 여름방학을 대비하기 위해 학원 직원들과 선생님들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종로의 거의 모든 토익 수업이 마감이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선생님이 정해지지 않은 수업인데도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학원으로 모여든 수많은 학생들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토익점수도 올려주기 위해) 강사들은 수강생들에게 스터디를 하게 했다. (사실 study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쓰이는지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학원가에서는 이미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단어이기 때문에 '스터디'라 하겠다.) 행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토익 학원의 스터디가 생소한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면, 토익학원에 가서 강좌를 수강하면 일단은 수업만 들을 수 있다. 보통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수업을 듣는데,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하고 딱 수업만 듣고 토익점수가 몇백 점 오른다면 그 사람은 다른 거 하지 말고 토익강사를 해야 한다. 토익에 소질이 있는 거다. 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강사들은 수강생들에게 엄청난 양의 숙제도 주고 스터디도 하라고 꼬신다. 스터디를 신청한 수강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 스터디공간으로 이동한다. 보통은 같은 학원 내에 있는 자습실 같은 곳으로 배정되는데, 학원에서 계급이 낮은 강사들에게는 스터디공간이 아예 배정안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스터디 공간에서는 10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조교에게 그룹 과외를 받는다. 더 많은 문제를 풀게 하고 더 많은 숙제를 준다. 간단히 말해서 하루종일 토익만 하라는 거다. 사실 수업에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더 많은 문제를 풀고 싶거나, 집에 가면 공부를 안 할거 같은 수강생들에게는 스터디가 효과적이다. 그러나 조별모임 같은 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비추천이다. 하지만 토익강사들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다. 수강생이면 누구든 스터디를 하도록 유도하고 추천하고 종용한다. 그래야 학원에 오랫동안 붙어있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수업에도 더 잘 적응해서 다음 달에도 수강 신청을 테니까. 

스터디는 수강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같은 것이다.(사실 service도 술집에서 돈 안받고 마른안주 더 주는 그 서비스가 아니지만, 그렇게 통용되고 있으니 '서비스'라 쓰겠다) 직접적으로 강사에게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그 수업의 충성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동통신사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멤버십 할인 같은 느낌이랄까.


스터디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 이것이 FACT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믿을만한 정보원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2000년대 초반에는 어느 토익학원이든 흥하던 시기였지만, 사람의 욕심에는 한계도 출구도 없는 법. 한 명의 수강생이라도 더 모시기 위해 모두가 치열하고 드럽게 경쟁했다. 어떤 방법이든 먹히기만 하면 순식간에 퍼져나가 모두가 그 방법을 사용했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네이버 파워링크, 네이버 지식인에 자작으로 질문 쓰고 답글로 학원 추천하기, 돈 주고 뉴스기사 쓰기 등 다양한 방법이 성행했고 실제로 이런 홍보 방법이 학원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그렇게 토익 장사가 잘 되던 그때, 어느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여러 달 동안 열심히 수업도 듣고 스터디도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학생은 강사를 찾아가 스터디 조교를 하고싶다고 했다. 강사는 그 학생에게 스터디를 맡겼고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자기 그 조교가 된 수강생은 그 수업의 스터디원들을 전부 데리고 바로 길 건너편에 토익학원을 차려서 그 학생들을 전부 수강시켜버렸다. 당연히 기존 학원의 수업은 환불받았을 터. 약 100여 명의 학생을 빼앗긴 강사는 분노를 금치 못하며, 이제는 토익학원 강사이자 원장이 되어버린 배신자 조교에게 너무 많은 걸 알려줬던 지난날을 후회했을 것이다. 스터디를 시켰더니 학원을 차려버린 유다 조교는 스승께 배운 전단지, 파워링크, 스폰서링크, 지식인, 뉴스 바이럴 등을 100% 활용하여 학원을 열심히 운영하고 홍보했다.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나름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2012년 이후에는 종로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아마 예전 홍보방법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트렌드는 변하는 법이니까.


2009년 7월과 8월, 토익 성수기인 만큼 그 전달에 비해 급여가 꽤 많이 올랐다. 약 250만 원 정도. 9월이 되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또다시 팀이 깨졌다. 듣기를 담당하던 분이 다른 학원으로 옮기셨고(그 이유 역시 팀 내 불화) 나는 혼자서 LC, RC를 다 맡게 되었다. 그랬더니 수강생이 너무 없었다. 2009년 10월 6일에 학원에서 받은 월급이 115,690원인 것으로 보아 9월의 수강생은 2명, 혹은 3명이었을 것이다. (숫자를 잘못 본 게 아니다. 백십만 원이 아니고 십일만 원이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학원을 그만두고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대학 강의를 연결해주는 업체는 나를 상명대학교로 보냈다. 대학 토익 강의는 시급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월급이 1억이 될 일도 없지만 11만 원일 될 일도 없었다. 그래서 2009년 10월부터는 그전에 비해 조금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내가 노력을 하든 안 하든, 수업 준비를 더 하든 덜 하든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같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하며 (그나마) 안정적인 급여를 받았다. 지루할 틈이 없던 종로의 생활이 떠올랐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11만 원 받던 바로 그 생활이.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다시 종로로 가고 싶었다. 인간은 불안정에서 안정을 찾고, 안정에서 불안정을 찾는 아이러니한 동물이니까.



2009년 11월에 YBM 종로 e4u센터에 지원했다. 9개월의 학원 경력과 2개월의 대학 경력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그리하여 2009년 12월부터 나는 토익의 메카, 종로에서 YBM이라는 커다란 이름 아래 (우선) 3개월 계약한 토익강사가 되었다. 


내가 종로 YBM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이전 학원 동료 선생님께 전하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Welcome to the ju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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