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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산 Dec 12. 2019

유학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유학 대신 공부방에 갔다

Airplane, Child, emojipedia.org

초등학생에게 욕 들어가며 일하던 보습학원을 그만두고 난 후, 다른 알바를 구했어야 했지만 망설여졌다. 또 그런 욕을 들을까 봐, 또 그런 불편하고 어색한 곳으로 출퇴근해야 할까 봐. 물론 모든 초등학생들이 그렇지는 않겠고 모든 학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일을 다시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알바를 하지 않고 학업에 충실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며 휴학을 했다. 캐나다나 호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아마도 그곳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빈틈없는 계획을 세웠다면 분명 갈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난 아직 어렸었고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교 유학지원센터에 찾아가 책자를 열심히 읽어보면서 유학정보를 수집했다. 국가나 학교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알아봤는데, 어쨌든 나는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갈 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내 돈 내고 갈 만큼 모아논 돈도 없었다.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에 부모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건 마치 어린 딸이 “엄마, 나 대통령 될 거야!”라고 했을 때 엄마가 “어~그래~” 하는, 말로는 찬성하거나 동의, 혹은 허락하지만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그래서 굳이 반대하지 않고 어차피 안될 거 나는 알고 너는 모르니까 기분이라도 상하지 않게 해야지 하는, 그런 뉘앙스였다.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포기했다. 더 얘기해도 안될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끈질기게 징징대면서, 혹은 진지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더라면 유학자금을 주셨을까?

음, 그래도 안 줬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엄마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그 말로 내 유학을 말리셨을 것이다. “너는 사주가 좋아서 유학 안 가도 잘 될 팔자여.”



어쨌든 휴학도 했겠다, 일단 돈을 벌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급도 높고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본 후, 나를 선택해준 곳은 버스로 40분 정도 가야 하는 동네의 공부방이었다.

그 공부방은 어느 아파트 1층이었고, 그리 크진 않았지만 언제나 학생들로 북적였다. 대략 50여 명의 초중등학생들이 그 공부방을 다니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 비해 급여가 꽤 높았다.

너무나 저화질이지만 이런 느낌. 아래 원본 영상

https://youtu.be/lh8qcCrQEgo

2000년에 제작된 광고라고. 자료화면일뿐 관련없음.


 나를 고용한 공부방 선생님은 그 많은 학생들을 오랫동안 혼자 다 관리하셨었는데 그러다 어느 날 몸 안의 암을 발견한 것이다. 다행히 초기여서 치료가 가능했고, 병원에 갈 시간에 공부방을 봐줄 선생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니트 모자를 쓴 암환자였지만,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에너지는 건강한 사람들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넘쳤다. 그 에너지는 공부방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간략히 말해서, 애들을 엄청 팼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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