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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산 Dec 10. 2019

첫 회사에서 만난 A 씨와 B 씨

과자 공주와 산지직송

High-Heeled Shoe, Child, emojipedia.org

유학도 가지 못하고 돈도 모으지 못한 나의 1년 휴학이 끝났다. 내 주변의 동기나 선후배들은 휴학기간 동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해외를 다녀와서 갑자기 외국인이 되어 나타나거나 인턴과 같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이력을 한 아름 들고 복학했다. 나도 물론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사람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먼지 쌓인 구닥다리 표현에 결국 무릎을 꿇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 전 막 학기에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온라인 교육회사였는데 그곳에서 내가 한 일은 초중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회사 사무실에는 마치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1인용 책상이 30여 개 있었고 그 책상에는 캠이 달린 컴퓨터와 헤드셋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각자 맡은 5~20여 명의 학생들을 온라인 강의실로 초대하여 윈도 98 버전의 그림판 같은 전자칠판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다. 선생님의 모습만 웹캠을 통해 보이고 10명이 넘지 않는 학생들은 채팅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가끔 1:1 수업이 있었는데 지금의 페이스타임처럼 서로 얼굴을 보며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시간이 되면 약 2-30여 명의 선생님들이 동시에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사무실이 엄청나게 시끄러워진다. 나는 화상채팅을 자주 해본 적이 없어 그런 시스템이 생소했고, 초등학생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가 앞섰다.

딱 이런 느낌이었다. 출처: msyncview.co.kr

하지만 생각보다 화상영어수업은 괜찮았다. 나름의 고충은 있었지만 초등학생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매우 만족했다. 그리고 보습학원이나 공부방과는 달리 회사다 보니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소통하는 법도 배웠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6개월, 계약직으로 10개월 정도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실장님께서 학교 졸업도 했으니 정식으로 회사에 다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사실 나의 전공은 영어가 아니고 광고홍보이다. 그래서 난 당연히 내가 광고회사에 들어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광고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나 광고기획자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 아니더라.


학교 졸업도 했겠다, 지원하는 광고회사마다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는 말만 하겠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실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내 인생 첫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약 16개월 정도 다녔던 이 온라인 교육회사에서 정말 잊지 못할 사건, 아니 사람이 있다. 그것도 둘이나.

이 두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너무 강력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아마 믿지 못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부 내가 경험한 사실들이다. 꼭 믿어주길 바란다.


첫 번째 사람은 A씨이고 별명은 과자 공주이다. 과자를 정말 좋아하고 (전통 미디어가 만들어낸) '공주'가 떠오르는 원피스와 하이힐을 즐겨 신는 사람이었다. 나와 같이 화상수업 알바를 하는 대학생이었는데, 다른 어떤 선생님들보다도 목소리가 우렁찼다. 크기도 컸지만 '우렁차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사무실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깊이 있는 목소리로 "여러분 안녕하세요~ 선생님 얼굴 잘 보이면 1번, 아니면 2번~" 그럼 아마도 채팅창에는 학생들의 "1"이 마구마구 올라왔을 것이다. 과자 공주 선생님은 학생들도 잘 다루고 수업도 잘하기로 유명했다.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그 선생님을 좋아했고 A씨도 그런 인기를 즐겼던 것 같다. 유난히 과자를 즐겨먹던 선생님은 어느 날부터인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며 제대로 된 식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과자는 끊을 수 없었나 보다. 아니, 과자를 끼니로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과자 공주의 다이어트 아닌 다이어트가 이어지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시간이 되었고 수많은 선생님들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와르르!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그것도 엄청 크게. 알고 보니 A 씨가 수업 도중 의자와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A 씨를 주목했고 A 씨는 기절한듯한 모습으로 쓰러져있었다. 다른 여러 직원들이 달려갔고 두 세명이 부축해서 A 씨를 쉴 수 있는 사무실로 데려갔다. 구급차를 부르냐고 묻던 직원에게 A 씨는 울먹이며 "안돼요, 절대 안 돼요. 우리 엄마가 알면 큰일 나요." 마치 드라마 속 힘든 일만 연속으로 일어나던 주인공이 갑자기 크게 다치기까지 해서 병원에 입원하면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일어나는 바로 그 장면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A 씨가 그토록 구급차를 극구 사양했던 이유는 병원에 가면 어머니가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분명 어머니가 과자 다이어트 사실을 알게 되어 아주 크게 혼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A 씨는 대학교 졸업과 함께 이 회사를 그만두었고 남은 우리는 "과자 다이어트 기절"사건을 수차례 언급하며 A 씨를 기억했다.



두 번째 사람은 B 씨이다. B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하여 정직원이 된 경우로, 나와 한 팀으로 일하며 강좌를 기획하고 행사를 진행하고 회식을 함께했다. B 씨는 머리가 정말 길었다. 거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언제나 하이힐을 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B 씨를 친절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의 진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B 씨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점심식사를 하며 '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하나의 음식을 꼽으라고 하면 과감히 '김'을 말할 정도로 최애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B 씨가 김에 대한 일화가 있다는 것이다. 본인도 김을 너무 좋아해서 김으로 유명한 고장으로 친구와 차를 타고 무작정 떠났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그 지역의 한 김 공장에 도착했는데 문 앞에 계시던 경비 아저씨와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바로 공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공장의 책임자도 B 씨를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그 자리에서 아주 품질이 좋은 김 수십 박스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는 것이다. 김을 너무 많이 사서 차에 간신히 실어 서울로 올라왔다는 이야기였다. 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정말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직접 공장에 가서 사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을 하고 있는데 B 씨가 나를 불렀다. 새 구두를 신었는데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구두를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놀라웠다. 어떻게 만드냐는 질문에 친구 중 한 명이 수제 구두 디자이너라고 하면서 그 친구에게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마음속에서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으니 일단은 믿기로 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B 씨를 제외하고 다른 직원 세네 명과 함께 회식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B 씨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김과 구두 일화를 이야기하며 정말 신기하다고 하니 그건 신기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면서 그 직원들을 더욱 신기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B 씨가 하루는 모자를 쓰고 회사에 출근했다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이 모자가 예쁘다고 하니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자에 상표가 달려있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B 씨는 모든 식재료는 본인이 직접 원산지로 찾아가 대량으로 저렴하게 사 오고, 모든 의류와 액세서리는 본인이 직접 만든다고 했다. 또다시 마음속에서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직원들은 B 씨가 원래 허언증으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그가 하는 말에 적당히 맞장구만 쳐주라고 했다. 

B 씨가 정말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었는지, 엄청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는지 사실을 알 수 없다. A 씨에게도 과자만 먹으며 쓰러질 정도로 일해야 할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이렇게 나에게 글감을 주었다는 것만으로 그 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도 어디선가 과자보다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직접 만든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고 꽃길만 걷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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