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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산 Dec 10. 2019

내가 초등학생을 무서워하는 이유

정말로 무섭다

Child, emojipedia.org

내가 태어나고 지구가 태양을 대여섯 번 정도 돌았을 무렵 나는 걷고 뛰고 말하는 능력을 터득했다. 서른다섯이 아직 멀게만 느껴지던 어린 시절, 초중고대학교를 졸업하며 걷고, 뛰고, 말하는 것보다 조금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 기술들을 이용하여 '일'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격'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고용주가 정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계약서를 쓰고 고용되었던 건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동네에 있던 초중등 대상 보습학원의 영어강사였다. 근로계약서상의 기간은 6개월 이상으로 적혀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 내가 일한 기간은 1개월에서 2개월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그 학원을 그만두고 난 후 한동안 지나가는 초등학생의 눈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어머니는 각종 학습 비디오와 교재를 통해 내가 세 살이었을 때부터 영어를 들려주고 보여줬다. 그때 봤던 '세서미 스트리트' 홈비디오는 지금 봐도 기억이 날 정도다. 비디오가 늘어나도록 거의 매일 시청했다. 

세서미 스트리트 홈비디오 인트로의 쿠키몬스터 source: Muppet Wiki

그리고 윤선생님과 함께 하던 조기교육 덕분에 초중고대학교를 다니며 영어는 항상 나에게 다른 과목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는, '믿는 구석'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영어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고급 어휘를 쓰면서 한국어만큼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과목보다는 영어를 조금 더 잘하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첫 근로계약을 다른 알바보다 조금이나마 시급이 높았던 영어강사로 할 수 있었다.



스물둘이었던 나는 엄마의 비싼 외투와 구두를 신고 첫 출근을 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생소했다. 원장 선생님과 학생들의 눈에도 그런 나의 모습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중학생들과의 수업은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초등학생들과의 수업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수업시간에는 모두 일어서서 자기들끼리 노느라 바빴다. 너무 시끄러워서 원장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후다닥 자리에 앉았고 원장 선생님이 나가면 다시 또 신나는 파티 타임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정중하게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하자고 부탁했지만, 내 말투가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말투가 아니었는지 내 말을 들어주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결정적으로 학원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한 사건이 있었다. 아니, 사건이라기보다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 초등학생은 그때 당시 4학년이었고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책상 위로 올라가 마구 춤을 추며 야구 용어들로 노래를 불렀다. 그날도 역시 그 학생은 신나게 야구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고 몇 차례 내려오라고 말했지만 내 말은 듣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학생에게 다가가 팔을 잡으며 강한 어조로 내려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내 팔을 뿌리치며 "에이, ㅆㅂ!"이라고 소리쳤다. 


충격이었다. 


너무 놀랐었기 때문에 그게 "ㅆㅂ"이었는지 "ㅆㅂㄴ"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ㅆㅂㄴ!”이라고 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허공을 바라보며 세상을 향해 크게 욕을 한 것 같다. 

만약 4학년으로 불리는 40대의 어느 중년 남성이 본인이 좋아하는 프로야구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그렇게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면, 물론 너무 싫었겠지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진짜 4학년이다. 11세 소년이 무슨 한이 그렇게 쌓여서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온 그 두 글자를 어찌나 시원하게 뱉어내던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 초딩은 수업시간에 욕을 했다. 순수하고 해맑던 초등학생이라는 존재가 다혈질의 욕쟁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즉시 원장실로 가서 모든 상황을 설명했고, 그전부터 학생들에게 휘둘리던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던 원장 선생님은 "오늘 퇴근하시고, 내일부터는 안 오셔도 됩니다."라고 하며 나를 놓아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 명예퇴직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가하는 가장이라도 된 듯 나도 한 손엔 붕어빵을, 다른 한 손에는 떡볶이와 어묵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왠지 뭐라도 꼭 사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내가 사간 음식을 맛있게 드시며 그만두길 잘했다고 나를 위로하셨다.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초딩은 무섭다. 귀신이나 호러영화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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