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산 Dec 15. 2019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돈 벌러 공부방에 갔다.

Money With Wings, emojipedia.org

유학 대신 선택한 공부방, 그곳은 애들 잡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공부방 선생님은 항암치료 중이어서 항상 니트 모자를 쓰고 계셨지만, 그 모습은 영화 '편지' 속 박신양과는 많이 달랐다. 언제나 매서운 카리스마로 모든 학생들을 제압했다. 물론 아이들의 부모님도 선생님이 아주 무섭고 때에 따라 매를 든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그 공부방으로 자식들을 보내는 것이었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한 아이들도 공부방에만 오면 순한 양이 되어 시키는 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애초에 공부방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예습, 복습, 단어시험, 쪽지시험, 숙제는 기본이고, 그날 배운 내용으로 시험을 봐서 통과를 해야만 집에 갈 수 있었다. 애들은 집에 가기 위해 죽기 살기로 열심히 공부했다. 실제로 학생들 중 학교 성적이 정말 안 좋았는데 공부방에 다니고 성적이 쑥쑥 오른 사례가 많았다. 그러니 그 동네의 많은 부모님들이 애들은 잡지만 성적은 책임지는 그 공부방으로 학생들을 보낼 수밖에.


공부방 출근 첫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나를 '본인보다 더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에 나는 매우 놀랐지만 선생님이 말한 대로 무섭게 보이기 위해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나를 정말 무서운 사람으로 여겼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그들은 매우 조용했다. 이 전 보습학원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나는 여기서 가능한 오래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업무는 우선, 이른 오후 선생님께서 병원에 가실 때 공부방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는 초등학교 1~3학년의 학생들이 오는데, 알아서 착착 자기 교재를 꺼내서 공부하고 채점하고 나에게 검사를 받았다. 뛰어다니거나 책상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일이 너무나 수월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교과서 위주의 문법, 독해 수업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쯤에서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영어문법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영어는 언제나 '세서미 스트리트'였기 때문에 영어는 말하기와 듣기가 전부고 문법과 독해는 굳이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말하기, 듣기를 잘하면 자연스레 문법도, 독해도 잘될 거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영어 문법과 독해 시간은 나에게 곤욕이었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내내 딴짓만 했었다. 수능 시험에서는 운이 좋아 외국어영역 1등급이었지만,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대충 감으로 찍어서 맞춘 문제들이 훨씬 많았다. 이를 테면, 나는 영어 문장 속에 ‘to'가 왜 자꾸 나오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to 부정사 관련 문제를 풀 땐 무조건 느낌으로 풀었다. 왠지 'to'를 많이 본 것 같으니 그냥 찍자는 식이었다. 그런 나에게 중학교 영어 교과서는 너무 어려웠다. 문장은 짧았지만 형식이나 구성, 어순, 품사 등은 너무나 생소했기에 기초부터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또 잠깐.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 토익 RC, 특히 문법 때문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중학교 교과서로 다시 공부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 당시 나는 공부방 수업을 준비한 것 외 에는 다른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 만으로 토익 RC 점수가 200점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역시 문법은 기초가 중요하다. 


행여나 공부방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어떻게 그렇게 조용하고 말 잘 듣게 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하여 '공부방 선생님의 애들 잡는 법'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내가 공부방에서 일했을 때가 2006년이었으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이것을 염두하며 읽기를 바란다.)


무서운 공부방 선생님도 괴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조용할 수 있었던 건 공부방에서 그 위 학년의 언니, 오빠, 누나, 형들이 절대 떠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늘 보았기 때문이다. 그 위 학년인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은 자주 혼내지는 않았지만 아주 가끔 30cm 자와 같은 것으로 손바닥을 맞곤 했다. 학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온 중요한 시즌에 숙제를 제대로 안 한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매를 들었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그들이 조용했던 가장 큰 이유는 중학생 언니, 오빠, 누나, 형들이 혼나는 모습을 너무나 자주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선생님이 가장 자주, 그것도 심하게 혼내는 학년은 중학교 1~3학년이었다. 중학생들이 공부방의 메인 타깃이기도 했고, 선생님의 중학생 딸이 공부방에 다니고 있어서 특별히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 딸은 공부방에서도 학교에서도 언제나 1등이었다. 그만큼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어머니인 선생님은 딸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중학생들의 매는 1m 정도의 나무로 된 지휘봉이었다. 그것으로 엉덩이나 허벅지를 때렸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매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학생을 다 때리지는 않았고 1등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을 다 때렸다. 단어시험이나 쪽지시험, 학교 성적 등이 몇 대를 맞는지의 기준이 되었다.

중학교 남학생들 중에는 매를 들어도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이 한 둘 있었다. 게다가 그런 학생들은 선생님보다 덩치도 컸기 때문에 매를 드는 선생님의 손을 잡아서 뿌리치는 등 심하게 반항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선생님의 비장의 무기가 등장했다. 바로 '1:1 면담'이었다. 공부방 안에 있는 작은 방으로 학생과 단 둘이 들어가 30분 정도 개인 면담을 했다. 그러고 나면 어떤 학생이든지 마법처럼 말을 잘 듣는 학생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의 1:1 면담의 비법은 바로 눈물이었다.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않냐고, 이 아픈 선생님이 너무 속상하다고, 제발 내 말 좀 들으라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그토록 무서웠던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학생은 매우 놀랬을 것이고, 반항심은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한다. 그 선생님, 정말 대단한 분이다.


나는 이것이 절대 올바른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만의 각자 성향이 있고 그것을 찾아 잘 맞춰가는 게 부모님과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부모님과 선생님의 역할은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학생, 부모, 선생님 모두가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게 교육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나는 휴학기간 내내 그 공부방에서 일했고, 열심히 돈을 모은다고 모았지만 유학 자금으로 하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결국 그 돈은 다음 학기 학비와 기숙사비로 쓰였다.


작가의 이전글 유학을 가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