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
CEO의 착각 첫 번째는 바로 사업과 고객에 대해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고객과의 대화' 이벤트나, 제삼자로부터 전해 들은 한 두 번의 예외적인 사례로 고객을 알았다고 오해한다. 전문가들의 방법으로 하는 시장조사와 그 결과물들을 가지고 고객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잘못생각한다. 컨설턴트들이 만든 프레임으로 고객을 삐뚤게 보고 있을 뿐이다. 고객의 진짜 속마음은 많은 시간과 관심과 애정을 들여 관찰하고, 실험하고 직접 대화를 해서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스타트업 CEO는 모른다. CEO들은 이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사업 무용담을 곁들인 제품과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 주변 친구들의 찬사와 긍정의 표현은 진짜 긍정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표시다. 사실 고객의 진정한 말과 행동은 컴퓨터 서버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CEO가 확인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는 설문조사나, 돈을 들인 고객 가담회나, 포커스 인터뷰 보다 더 좋은 알짜배기 정보가 쌓여있다. CEO가 보고 듣기를 기다리며 잠자고 있는데, 정작 CEO는 밖으로만 돌며 잡음에 취해 자신의 사업을 오해하며 착각한다.
조금 성장한 스타트업의 CEO는 점점 자신이 하는 말이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말하는 경향이 생긴다. 뭐든지 말만 하면 다른 사람 혹은 조직을 통해 그 말이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 꿈 깨기 바란다. 말로 남에게 일을 시키는 버릇은 전염성이 강해 조만간 조직의 모든 중간관리자들도 따라 할 것이고, 조직에는 지시와 보고가 넘치게 될 것이다. CEO의 착각 두 번째는 자신이 하는 말이 '전능한 말'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많은 CEO들이 '살아 있고 유기적인 조직' 이야기를 자주 한다. A조직, B조직, C조직 그리고 D조직이 함께 일하며 밀접하게 의사소통하고 협력해 모든 문제에 대해 조화를 이뤄 완벽하고도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어쩌면 이렇게 묘사된 조직은 살아있고 유기적인 인간의 조직이 아니라, 로봇 혹은 ㄴ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기계의 작동을 묘사하는 것은 아닐까? 조직은 자율적인 의지와 감정을 가진 불완전하지만 주도적인 인간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조직이 커질수록 '말하고 지시하는 것'이 CEO의 주된 역할이 아니라, '듣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보조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듣는 사람이 알아 들어야 완성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타트업은 CEO의 솔선수범이라는 엔진으로 달리는 기차다. 말보다는 행동이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스타트업의 회사 분위기는 사장에서 직원까지 서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하지만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 경력이 있는 직원들이 합류하기 시작하면 스타트업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경력이 있는 직원은 직원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잘하면서도 정작 임원이나 사장 앞에서는 예의와 격식을 차린다. 말로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하고,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자리에서도 어려워한다. 상급자들은 단순한 방문인데 현장의 실무자들에게는 쓰나미와 같은 부담을 준다. 이런 조직에서 CEO들이 잘 빠지는 착각 세 번째는 '시간 쓰지 말고 간단하게 검토하라'며 업무 지시를 임원과 직원들이 진짜 자투리 시간에 간단하게 그 일을 완수할 것으로 착각한다. 이 '간단한 검토'에 '사장님 지시 사항' 딱지가 붙어서 회사의 핵심 업무를 중단시키며 조직 하부로 흘러가면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관료적으로 경직된 조직에서는 사장, 임원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 관심 표명과 같은 것들도 수집되고 해석되어 하부 조직의 의사결정에 사용된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나 사업과 고객의 필요와 모순되어도 상관없이 더 높은 우선순위로 실행된다. 그래서 실무 직원들은 자주 회사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불평한다.
CEO가 즉흥적으로 생각난 아이디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사소한 일, 다른 회사 흉내 내며 하는 일, 체면 때문에 지시하는 일, 외부지인들이 부탁한 일, 자의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합리화하며 추진하는 '비상소집 훈련'들만 제거해도 어쩌면 지금 인원의 절반으로도 회사가 더 잘 운영되지 않았을까? 부지런하기보다는 스마트함 CEO가 회사를 살린다.
초보 창업가들은 '좋은 CEO'가 되고 싶어 한다. 당연히 CEO는 선하고 정직해야 하지만,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일은 종종 옳지 못한 일이 되기도 한다. 이미 좋은 경력의 배경을 가진 창업자들은 자신의 평판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고 한다. 핵심이 아닌 일의 명분을 만들어 벌이거나 정작 해야 할 결정은 주저한다. 더 높은 인기를 얻기 위해 하는 의사 결정은 종종 얻고 싶어 했던 인기조차 놓치게 만든다. 창업자들에게 인기란 결과가 좋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창업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인기에 대해 절제해야 한다. 좋은 관계 역시 약간의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진짜 추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집중할 수 있다. 리더는 종종 생산적인 불일치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대신 순탄한 회의과정과 불만 없는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한다. 평화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조직의 의사결정에서는 암적인 존재다.
CEO는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회사를 책임감 있게 발전시킬 청지기의 임무를 받은 사람이다. 선택 때문에 오는 이해관계의 불일치와 고통 그리고 미움은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체면 때문에 실수나 실패의 위험이 있는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피하고 안전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 틀린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직원의 책임도 묻지 않는다. 친구로서는 좋은 자질일지 모르겠지만 창업자나 경영자로서는 최악의 자질이다. CEO가 줄 최고의 복지는 수영장이나 탄력 근무시간제 등과 같은 인기성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오래 고용하고 승진시킬 건강한 회사의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