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춘희 패션 디자이너' 이야기
44년간 정상에 있다고 해주시는데 사실 버티기 힘듭니다. 끊임없는 경쟁이죠. 사실 옷도 영화처럼 흥행의 영역이니까요. 발표하기 6개월 전, 1년 전에 원단을 택해야 하고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이 오렌지색이 맞을지 안 맞을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결국 내가 정답을 가졌냐 안 가졌냐는 사람들의 호응도에 달려있는 거고.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남의 걸 자꾸 눈치 보지 않고 결국 제가 잘살아야죠. 내 라이프를 잘 살면, 내가 터득하는걸 남들이 원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사는 편입니다.
유행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 마음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것, 이렇게 바뀌길 바라는 것. 그러니까 내 삶을 잘살면, 내가 원하는걸 남들도 원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패션잡지는 잘 안 봐요. 나보다 잘하니까 거기 나왔을 텐데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걸 보는 게 힘들어요. 그리고 좋은 건 머리에 남아서 내 작업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보죠. 외국 가면 어쩌다 매장에 들르는데 옷을 보다 보면 가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다시 잘해봐야지. 다 내 능력 껏 하는 거예요. 뛰어넘을 거면 넘는 거고, 못 뛰어넘으면 못 넘는 거고. 내가 가진 한도 내에서 열심히 해보는 것뿐입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게 10년이 되고, 20년이 돼서 나를 만드는 거예요. 웬만큼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본인을 힘들게 하면 가는 길이 너무 힘들잖아요. 10m도 안 뛰어본 사람이 어떻게 100m 뛸걸 예상하겠어요. 한 스텝 한 스텝 올라가는 게 오히려 멀리 가기에는 빠른 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리더는 뭐가 되고 안되고를 명확히 해줘야 합니다. 제일 나쁜 게 애매모호한 태도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일할 때는 자기 정리를 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지 일의 앞뒤를 아는 거지, 혼자 일하는 거 아니고 다 협업해서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뭔가를 늘어놓고 하는 사람 제일 싫어해요. 재료 찾으려면 한두 시간인데, 무슨 일을 하겠어요?
여행하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낯선 곳에 가도 안전하다는 걸 느낀 순간부터 여행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힘들고 무서웠으면 절대 안 갔을 테죠. 처음에는 용기가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가본 것과 안 가본 것,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가 정말 크기 때문에 저는 일단 하자주의입니다.
1979년 미스지컬렉션 론칭 때와 지금을 본다면 용기가 생긴 거 같아요. 예전보다는 두려움을 덜 갖고 일하는 겁니다. 그다음은 좋은 선배가 옆에 있는 거죠. 가까이하는 분 중 저보다 나이가 5, 10년 정도 높은 분들이 있어요. 1년에 한두 번씩 함께 여행을 가는데, 늘 놀라워요. 데스밸리를 모험심으로 가보는 분들이거든요. 새벽 4시 반에는 내방을 발로 뻥차요. 빨리 나오라고 말이죠. 그 체력이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거기서는 제가 제일 귀여움 받는다니까요. 이제와 돌아보면 모든 게 사람에 대한 신의인 거 같아요. 그게 없으면 일 못해요. 그 많은 배우가 곁에 모였어도 저는 그 사람들 힘을 이용해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한적 없습니다. 그랬으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5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