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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아 Apr 01. 2024

나의 흔적을 남기는 기록법

'장강명 소설가'이야기

1. "1년 3000시간 일하자"의 목표로 시작한 기록


2013년 기자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 뒤, 자기 통제를 위해 기록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늘 제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작가로서 긴장감을 갖기 위해 기록을 활용한 겁니다. 특히 일한 시간을 철저히 기록했어요. '1년에 2200시간 이상 일하자'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스프레드 시트를 활용해 원고를 하루에 몇 매 정도 썼는지 기록했습니다. 그 가운데 소설, 칼럼, 에세이 분량을 나눠 적었어요. 기상 시간, 체중, 운동시간, 술 마시는 횟수까지 기록하다 보니 1년에 3000시간 정도는 일하더라고요. 



2. 기록은 저에게 '자기 통제'와 '자기 객관화 도구'입니다.


기록을 통해 자기 관리의 규율이나 기강을 만들어줬습니다. 또, 업무 분량을 기록한 스프레드 시트를 보면 어떤 영역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제가 쓰고 싶은 글쓰기, 즉 소설에 치중하는 비중이 작아지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본업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신문사 칼럼을 쓰던 일도 아쉽지만 그만뒀어요. 



3. 책을 통해 생각을 확장합니다.


아이디어를 분류하고 관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행본에 들어갈 아이디어는 주로 분류를 하고 쌓아두는데, 줄잡아 폴더 수십 개는 돼요. 가령 길을 걷다가도 재미있는 생각이 들거나, 광고를 보다가 떠오른 아이디어, 아내랑 대화하다가 나온 생각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쓰일지 모르니 다 녹음하거나 메모합니다. 한구석에 쌓아뒀다가,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면 메로를 활용해 검색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며 생각을 확장합니다. 

읽은 책이나 영화는 계속 스프레드 시트로 기록합니다. 특히 책은 기록해 두면 도움이 되는데, 칼럼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도 합니다. 책 기록법은 크게 2가지예요. 엑셀 시트 하나엔 읽은 날짜, 저자, 역자 정도만 기록해 두는 책 목록을 만들고 상세내용은 폴더를 따로 만들어서 메모합니다. 일단 과학, 교양, 한국소설 같은 카테고리로 크게 폴더를 나누기도 합니다. 한국소설 안에 폴더를 또 만들어 인물에 대한 내용만 모아두기도 하고, 책에서 밑줄 친 부분은 주로 이미지 파일로 저장합니다.



4. 기자의 글쓰기와 작가의 글쓰기는 다릅니다. 


기자도 취재할 때 아이디어가 중요하긴 합니다. 기사 아이디어는 출입처에서 취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오래된 아이디어를 묵히지는 않았죠. 그런데 작가는 다릅니다. 10년 정도 묵혀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언젠간 이걸 활용해서 글을 쓰겠다고 생각 중이죠. 기록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계속 쌓아두고, 또 가끔 살펴보는 편입니다. 


구체적으로 목표가 있어서 취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때는 기자 시절 기록하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다만, 기록의 초점은 달라요. 기자일 때는 인터뷰할 때 꼭 챙겨야 하는 게 있는데, 이름과 사건이 일어난 시각, 장소 등 육하원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로서 취재할 때는 '어떻게'와 '왜'를 집중적으로 파고듭니다. 정치 소설을 쓰면서 유명 국회의원 탈당 장면을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한다고 가정해 볼까요? 만약 모델이 될 국회의원 인터뷰시간이 딱 10분만 주어진다면, 저는 10분 내내 '왜'와 '어떻게'만 물어볼 거 같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쓰기 위해서라면 10분 안에서도 육하원칙 항목들을 다 물어봐야 하고, 그만큼 '왜'와 '어떻게'는 덜 물어볼 수밖에 없겠지요. 



5. 나의 흔적을 남기는 기록법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우리의 삶은 평면도가 아니기에 여러 가지 각도와 관점에서 '나'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 있어 장강명 소설가의 기록법을 되새겨볼 만하다. 나의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에 따라 질문과 기록은 달라질 것이다. 다만, 그 질문은 나를 기록 속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6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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