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욱 TBW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야기
카피라이터는 광고 안에서 문장을 책임집니다. 좋은 각도의 문장을 갖고 와서 디테일을 끝까지 만드는 작업을 하죠. CD는 전체를 총괄하고 판단합니다. 한 선배가 "카피라이터가 피아니스트라면 CD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했던 게 생각납니다. 피아노 소리는 어떻고, 바이올린 박자는 어떤지 각 부분을 챙기고 전반적인 흐름과 연결까지 살펴야 하죠. 연주자에서 지휘자가 됐지만, 아직도 피아노 앞에 서면 두근거립니다.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싶고, 피아노 치는 게 좋아요. 하지만 제가 가장 잘해야 하는 부분은 스태프와 함께 오케스트라 전체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겁니다.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일이 되면 나도 모르게 아웃풋을 짜낼 궁리만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스퀴즈 아웃(Squeeze out)'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정작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고갈돼버려요. 반대로 많이 채워서 흘러넘치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일단 열심히 인풋을 채워 넣다 보면 언젠가 흘러넘치게 됩니다. 짜낼 시기와 기회는 분명 오니까, 그때를 위해 쌓아두는 거죠. 그렇다고 '오늘은 인풋을 위해 넷플릭스를 봐야겠다' 같이 억지로 하는 건 아닙니다. 자연스레 만나는 자극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적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놓치지 않고 관련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책을 읽어봅니다. 좋은 인풋이 될 수 있는 지인들과 시간도 자주 가지고, 그 친구들을 관찰하기도 하며 그들이 추천하는 콘텐츠는 꼭 직접 보려고 합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텍스트는 다 좋아해요. 읽는걸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곱씹기'를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문장을 보거나 떠오를 때 메모를 해둬요.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위기 상황에 훑어보죠. 그렇게 곱씹기를 하다 보면 내 근력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하는 트레이닝이랄까요.
초년생 때는 어느 정도 수준의 퀄리티를 뽑아내려면 스킬이 필요합니다. 요리로 치면 웍을 쓰는 기술, 칼질하는 기술 같은 건 꼭 알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거기에만 집착하면 한계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듭니다. 카피라이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필력과 관점 모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필사를 한다거나, 양질의 글을 읽는다거나,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건을 정리해 보는 겁니다. 그런 게 진짜 인사이트로 연결되는 근본적 힘이 돼요. 이 힘이 있어야 덜 지치고, 덜 뒤처진다고 생각합니다.
첫 회의는 '빈 머리 회의'를 합니다. 부담 없이, 제한 없이 편하게 이야기하는 회의입니다. 두 번째 회의 때부터 각자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데, 이때 아이디어 싹을 섣불리 자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빨리 좁히거나 필터링하지 않으려고 하죠. 제가 보지 못한 좋은 포인트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세 번째 회의부터 조금씩 정리합니다. 처음에는 여지를 많이 주고 나중에 정리하는 스타일입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반짝이는 문장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점전환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티클 속 유병욱 디렉터처럼 플레이어의 관점과 그 영역을 벗어나보는 관점으로 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좋은 글은 '양'에서 먼저 피어납니다.
아티클 원문 : https://www.folin.co/article/2326